월트디즈니가 자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인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진출을 앞두고 콘텐츠 폐쇄 전략을 확대한다. 웨이브, 왓챠에 이어 KT시즌에서도 자사 콘텐츠 다수를 공급 중단하며 경쟁을 예고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OTT 업계가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투자 확대 등의 사업 전략뿐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KT시즌이 디즈니 콘텐츠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안내하는 내용 / KT시즌 홈페이지
KT시즌이 디즈니 콘텐츠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안내하는 내용 / KT시즌 홈페이지
디즈니, 정책 변경 이유로 KT시즌에서 콘텐츠 공급 중단

4일 OTT 업계에 따르면, 9월부터 KT시즌에서 어벤져스 등 마블 시리즈와 유명 해외 드라마인 워킹데드 시리즈를 볼 수 없게 됐다. KT시즌에서 월트디즈니와 그 계열사인 폭스 관련 영화, 드라마 등의 콘텐츠 서비스를 종료하기 때문이다.

KT시즌은 3일 ‘디즈니 제공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 종료 안내’라는 제목으로 공지사항을 올려 이같은 소식을 알렸다. KT시즌 측은 "디즈니 제공 VOD 일부가 해당 권리사의 ‘국내 VOD 제공 정책 변경 및 종료 요청’에 따라 8월 31일 자로 서비스 종료됨을 안내한다"고 설명했다.

KT시즌은 어벤져스 등의 마블 시리즈와 겨울왕국, 엑스맨, 킹스맨, 보헤미안 랩소디, 곡성 등 유명 영화의 VOD 서비스를 종료한다. 디즈니·폭스 채널에서 방영되는 키즈 콘텐츠와 워킹데드 시즌 1~10 등의 해외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디즈니와 폭스가 제공하는 크리미널 마인드와 로스트 등의 미국 드라마도 서비스 종료 대상에 포함했다.

KT시즌 관계자는 "이번 건은 콘텐츠 계약 종료에 따른 서비스 중단과는 다르다"며 "CP(콘텐츠제공사업자, 디즈니)사가 내부 정책 변경으로 서비스 종료를 요청했기에 중단한다"고 말했다.

앞서 KT시즌은 3월 디즈니 요청으로 디즈니 채널에서 제공하던 무료 VOD와 패키지 상품에 포함됐던 일부 유료 콘텐츠 제공을 중단한 바 있다.

디즈니플러스 로고 / 월트디즈니
디즈니플러스 로고 / 월트디즈니
OTT 사업에 역량 집중하는 디즈니…밥 차펙 CEO "2021년 100개 채널 폐쇄 예정"

KT시즌과 유사한 사례는 최근 국내 OTT 업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웨이브와 왓챠 역시 올해 각각 디즈니와의 계약 종료 후 연장을 하지 않아 디즈니 관련 콘텐츠 서비스를 중단했다.

OTT 업계 한 관계자는 "디즈니가 국내 유통사 전체를 대상으로 국내 VOD 정책을 일괄적으로 변경했다"며 "KT시즌에서 공지한 것처럼 타 OTT에서도 동일하게 콘텐츠 제공이 종료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케이블TV와 IPTV 등 유료방송 업계 상황도 같다. 유료방송 업계에선 디즈니가 국내 유료방송 플랫폼에 제공하던 디즈니·디즈니주니어 채널 송출을 10월부터 중단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디즈니가 국내서 잇따라 콘텐츠 공급 중단에 나서는 배경에는 자사 OTT인 디즈니플러스 국내 진출이 있다. 디즈니플러스가 곧 서비스를 시작하는 만큼 콘텐츠 경쟁력을 갖추고자 타사에 제공하던 자사 콘텐츠를 제한하는 폐쇄 전략을 펼친다는 게 OTT 업계 해석이다.

실제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 사업을 글로벌 단위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영국과 동남아시아 지역 등에 자사 채널을 폐쇄했다. 홍콩에선 10월부터 채널 폐쇄에 나선다. 앞으로도 이같은 콘텐츠 폐쇄 전략을 확대하겠다는 게 디즈니의 계획이다.

밥 차펙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5월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체이스가 개최한 콘퍼런스 자리에서 "2020년에 30개 채널을 폐쇄했다. 2021년에는 100개 채널을 폐쇄할 예정이다"며 "(폐쇄된 채널의) 콘텐츠 대다수를 디즈니플러스로 옮기려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OTT포럼이 7월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OTT 대토론회 모습 / IT조선 DB
한국OTT포럼이 7월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OTT 대토론회 모습 / IT조선 DB
고민 깊은 국내 OTT 업계…"국가 단위 정책 지원 필요"

디즈니가 OTT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사이 국내 OTT 업계의 고민은 깊어간다. 시가총액만 340조원 규모에 달하는 글로벌 공룡 사업자가 콘텐츠 경쟁력을 무기로 국내 진출을 목전에 둔 상황이지만 해법 모색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웨이브는 사업 경쟁력을 갖추고자 2025년까지 5년간 1조원 규모의 콘텐츠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KT도 2023년까지 4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원천 지식재산권(IP)과 콘텐츠를 확보할 계획이다. 글로벌 OTT 1위 사업자인 넷플릭스는 국내에서 올해만 5500억원의 콘텐츠 투자에 나선다.

OTT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OTT 업계가 경쟁력을 강화해 자생하려면 결국 콘텐츠가 답이다"며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재원이 필요한데, 해외 OTT 플랫폼과 비교하면 비용이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재원을 어디서 조달할 것이냐에 대한 답을 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OTT 전담 기구를 통해 OTT 산업 진흥 정책을 꾀하고, 현재 발생하고 있는 부처 간 중복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7월 열린 OTT 정책 대토론회에서 "전망이 틀리길 바라지만,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유튜브 등 글로벌 사업자가 주도하는 OTT 시장이 대두할 수 있다"며 "국내 이용자는 OTT 노마드처럼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향후 OTT가 미래 미디어 산업을 견인하면서 유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와 고용 유발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가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차원의 정책 조화와 범부처 협업 구조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OTT 업계에 따르면, 디즈니는 연내 디즈니플러스를 국내에 선보인다. 9월 출시설도 돌았지만 그보다는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