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웹툰이 해외 독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면서, 웹툰을 불법 번역해 공유하는 해외 사이트가 늘고 있다. ‘밤토끼'를 모방한 해외 불법 사이트도 등장했다.

직접 피해자는 작가다. 하지만 이들은 해외 불법 유통에 직접 항의하는 방법 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고 억울함을 토로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해외 독자들로부터 ‘사이버 불링(온라인 학대)’ 공격을 받는 등 피해 사례만 쌓이고 있다. 플랫폼은 몸을 사리고 정부도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는 만큼 해결책이 시급해 보인다.

레진 웹툰 작가들이 해외 불법 번역 문제를 제기하면서 받은 답변 / 서울웹툰작가노동조합 제공
레진 웹툰 작가들이 해외 불법 번역 문제를 제기하면서 받은 답변 / 서울웹툰작가노동조합 제공
K웹툰 불법 번역 우후죽순 생겨나

5일 서울웹툰작가노동조합에 따르면 해외에서 한국 웹툰을 ‘불법 번역'해 유통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주로 스페인,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한국 웹툰이 인기를 얻은 국가에서 발생한다.

가장 흔한 사례는 개인 번역가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텔레그램 등을 통해 웹툰 불법 번역본을 공유한다.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웹툰방'을 운영하면서 운영자가 웹툰을 번역해 회차별로 올려주는 도용 방식도 있다. 신고를 해서 없애도 대화방을 다시 만들면서 불법이 무한 증식된다.

가장 큰 문제는 전문적으로 국내 웹툰을 무단 번역해 사이트 전체를 채우는 불법 사이트다. 해외판 ‘밤토끼'가 우후죽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밤토끼는 2018년 경찰이 검거한 최대 불법 웹툰 유통 사이트다. 콘텐츠를 무단 복제해 이용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도박, 음란물 광고를 붙여 수익을 냈다.

레진코믹스에 작품을 연재 중인 YD 작가는 "망가고라는 해외 불법 사이트를 비롯해 몇 곳의 불법 사이트를 상대로 웹툰 유통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며 "일부가 이를 수용하자 작품 매출이 3배 정도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불법 사이트에서 작품이 사라지자 이를 이용하던 독자들이 레진코믹스로 몰려 제대로 돈을 지불하고 작품을 감상해 매출이 늘어난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작가 개개인이 불법 유통 감시… ‘온라인 테러’에 2차 피해 심각

YD 작가의 경우는 그나마 일부를 해결한 사례다. 대다수의 작가는 많은 피해를 호소한다. 그나마 작가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작가 개개인이 불법 업로드 SNS 계정을 찾아 경고하거나, 사이트에 웹툰을 내리라고 압박하는 형태 뿐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들은 또 다른 피해를 당한다. 해외 독자들로부터 ‘사이버 불링'을 당하는 등 정신적 피해가 상당하다. 일부 불법 사이트 문제를 해결한 YD작가 역시 해외 독자들로부터 여전히 온라인 테러를 당하고 있다. A 웹툰 작가 역시 ‘베트남 불법 번역가를 고소하겠다'는 내용의 트위터를 올린 뒤 베트남 독자들로부터 트위터 계정 해킹 시도와 살해 협박을 포함한 ‘사이버 불링’을 당했다.

이 같은 문제는 한국 웹툰 작가들이 대부분 경험한 것으로 작가들은 각종 욕설 메시지와 신상 공개 협박이 빈번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작가는 "문제를 제기한 후 ‘창녀'라는 메시지는 이제 익숙해질 정도로 받았다"며 "우울감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저작권 개념 자체가 없어 작가들의 경고가 무색하기만 하다. 불법으로 번역 공개하는 이들은 오히려 한국 웹툰을 홍보해주고 있다는 다소 황당한 답변을 내놓는다. 한 작가는 "불법으로 웹툰을 공유한 이들은 웹툰의 ‘홍보’를 돕는 것이라고 이를 정당화 한다"며 "대학생 등 젊은 이용자들이 취미삼아 불법적으로 웹툰을 유통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플랫폼은 뒷짐, 정부도 골머리

한국 웹툰 작가들은 웹툰을 유통하는 플랫폼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작가들이 직접 단속하고 나선 이유다.

한 웹툰 작가는 "저작권 의식 제고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은 웹툰 플랫폼이다"라며 "하지만 이들 플랫폼은 ‘불법 유통이 문제'라는 캠페인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불법 웹툰을 소비하는 독자가 언젠가 잠재적 유입이 가능한 대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적극 나서지 않는듯하다"고 꼬집었다.

일부 작가는 정부 역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마땅히 신고를 할 수 있는 수단 확인이 어려울 뿐 아니라 관련 부처에 신고를 하더라도 답변이 원활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 작가는 "베트남에서 유통되는 불법 웹툰 문제에 도움을 구하기 위해 문체부 산하 한국저작권보호원 베트남 지부에 도움을 요청했다"며 "하지만 기다리라는 안내를 받은 이후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답답해 했다. 작가들은 "해외에서 불법 사이트는 꾸준히 증식하는 데 이를 해외 독자들이 국내에 마땅히 신고할 수 있는 수단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 역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해당 문제를 소관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인터폴과 협약에 나서는 등 노력을 기울이지만 빠른 해결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한다. 담당 수사 인력의 부족과 복잡하게 운영되는 현지 사정 때문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베트남 언어로 운영되는 불법사이트를 발견해도, 서버는 프랑스에 운영자는 스페인에 있는 등 상황이 복잡하다"며 "20명 미만의 담당 수사 인력으로 복잡한 해외 공조를 하기에는 속도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저작권보호원에서는 저작권 침해 신고 사이트를 통해서 저작권 침해 신고를 받고 있다. 지속적으로 신고센터를 홍보하기 위해 노력도 하겠다"며 "또 한국저작권보호원의 중국, 필리핀, 베트남, 태국 등 현지 사무소에서 어떤 식으로든 작가 요구에 피드백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