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반도체 굴기 中, 韓 발목 끝까지 잡나

이광영 기자
입력 2021.08.10 06:00
반도체 굴기가 붕괴할 조짐을 보이는 중국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발목을 의도적으로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이 미국과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있어, 중국이 SK하이닉스의 인수합병(M&A) 작업에 보복성 태클을 걸 수 있다는 목소리다.

9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 ‘칭화유니그룹(淸華紫光)’은 20조원이 넘는 대규모 부채를 이겨내지 못하고 파산 구조조정 절차를 밟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낸 중국 기업으로,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은 바 있다.

SK하이닉스 이천 M16 조감도 / SK하이닉스
칭화유니그룹은 앞서 수조원대 자금을 투입해 충칭 양장(兩江)신구에 D램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짓고 2021년부터 양산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공개한 적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 구체적 진전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자국 중심 공급망을 구축하는 미국에 대항해 반도체 자립에 나서려던 중국의 계획은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5년 ‘중국 제조 2025’ 전략을 발표하며 반도체 자급률을 2020년 40%, 2025년 7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화웨이와 SMIC에 이어 칭화유니그룹까지 수출 제재 리스트에 올려야 한다는 미국 정치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중국의 한국 반도체 기업 추격은 더욱 힘겨워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처럼 벼랑끝에 몰린 중국이 한국 반도체의 앞길을 막아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10월 인텔의 낸드플래시 메모리 및 SSD 사업 부문(중국 다롄 공장)을 10조원쯤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인수 절차를 밟는 중이다. 올해 초에는 미국에 현지법인 ‘SK하이닉스 낸드 솔루션’을 설립했다.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를 위해서는 관련 8개국의 심사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 심사 대상 8개국 중 7개국(미국·EU·한국·대만·브라질·영국·싱가포르)이 승인했고 중국만 남은 상태다.

인텔 중국 다롄 공장 전경 / 인텔
중국은 반도체 기업 M&A에 대한 심사를 고의로 지연해 무산시킨 사례가 적잖다. 3월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일본 반도체 기업 고쿠사이일렉트릭이 체결한 22억달러(2조5000억원) 규모의 M&A는 9개월 심사 지연 끝에 무산됐다.

퀄컴의 네덜란드 반도체 회사 NXP의 인수도 중국의 심사 지연으로 2018년 7월 무산됐다. 퀄컴은 투자자 보상 차원에서 300억달러(34조원)의 자사주 매입을 추진했고, 20억달러의 위약금도 물었다.

올해 미국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업체 ARM 인수를 놓고도 중국 당국의 심사가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중국당국은 중국계 사모펀드운용사의 매그나칩반도체 인수는 승인 신청 한달쯤만에 승인을 내줬다. 매그나칩은 SK하이닉스 시스템반도체 사업부에서 분사돼 미국계 자본에 매각됐고, 3월 중국계 사모펀드운용사 와이즈로드캐피탈과 매각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SK하이닉스는 주요국 승인 심사를 연내 마무리한다는 목표로 김앤장(K&C)을 비롯해 글로벌 로펌 중 인수합병 분야 강자로 꼽히는 미국 스캐든압스슬레이트미거앤드플롬과 중국 현지 팡다 파트너스 등을 법률자문사로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 인수가 독점 우려가 적다는 점에서 중국의 승인도 순조로울 것으로 관측한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는 독과점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아 중국 외에도 다수 반독점 당국이 반대하는 사안이었지만 인텔 낸드 부문 인수는 반대 목소리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중국이 반대할 명분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낸드 시장 4위 SK하이닉스와 5위 인텔의 합산 시장점유율은 20% 수준으로 1위 삼성전자(33.5%)에 미치지 못한다. 이번 인수가 한국기업 SK하이닉스의 주도로 이뤄진다는 점도 미국 기업이 추진한 과거 M&A와 결이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SK하이닉스 법률 자문은 중국 규제당국에 중국 현지에서 고용과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장쑤성 우시에 대규모 D램 공장을 건설했고,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IC의 충북 청주 팹 파운드리 설비를 우시 공장으로 이전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와 관련해 하반기 중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SK하이닉스는 7월 27일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인텔 낸드 사업 인수에 마지막으로 남은 승인 절차는 중국으로, 현재 파이널 리뷰 단계로 넘어가 있는 상태다"라며 "하반기 적절한 시점에 중국으로부터 필요한 승인을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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