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시행된 특정금융법(이하 특금법)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특금법 상 사업자 신고·수리 유예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신고 접수를 진행한 곳이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실명계좌 요건을 삭제해야 한다는 강령론도 제기된다.

9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특금법 개정안 시행이 5개월 가까이 지났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신고수리 절차는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 모습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특금법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명계좌를 발급받아야 신고수리가 가능하도록 한 현 제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이미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4대 거래소도 생존이 어렵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실명계좌 발급 여부는 가상자산 시장의 최대 화두다. 거래소의 최대 허들이 실명계좌 발급여부이기 때문이다. 9월까지 실명계좌 발급을 받지 못한 거래소는 더 이상 영업이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실명계좌 개시 요건을 은행에 맡기면서 규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을 두고 특금법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은행마다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위험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은행도 있어, 사실상 ‘은행허가제’가 실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가상자산 전문은행을 도입하는 내용의 특금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거래소가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발급 심사를 공정하게 받을 수 있도록 전문은행을 설치하자는 것이다. 특금법이 공정한 신고수리 절차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의 개정안은 유예기간을 6개월 연장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특금법 시행과정에서 미비점을 발견, 이를 바로잡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경우 특금법 유예 기간은 내년 3월 24일까지 늘어난다.

윤창현 의원실 관계자는 "예를 들어 한 사업자가 동일한 신용등급을 가지고 있는데 은행마다 심사 결과를 정반대로 내놓는다면 이 과정을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며 "현 특금법은 은행이 상황에 따라 자금세탁위험을 무한대로 수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도 실명계좌 요건을 문제 삼고 있다. 조 의원은 실명계좌를 신고 항목에서 제외했다. 금융당국이 실명계좌가 없다는 이유로 신고를 거절할 수 없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대신 사업자가 신고수리를 받은 후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아 금융거래를 하도록 했다. 신고 유예기간도 6개월 더 늘였다 .

조 의원은 "신고기한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아 가상자산 거래소 줄폐업과 상당 규모의 이용자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나 금융당국은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소극적 대응으로 은행들이 실명계좌 발급에 부담을 느끼며 거래소 신고절차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특금법의 입법 취지상 실명계좌는 투명한 거래 여부를 살피는 수단일 뿐 거래소 신고수리 요건이 될 수 없다"며 "실명계좌를 받기 어렵게 하고 거래소 신고조차 어렵게 하는 과도한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도 실명계좌가 자금세탁방지 요건으로 규정된 데 대해 재검토를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의 자금세탁방지 전문가는 "정부가 은행에 사업자 심사를 맡겨 책임 공방이 이는 것은 한국이 가진 독특한 규제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정지열 한국자금세탁방지 전문가 협회장은 "실명계좌를 자금세탁방지용도로 사용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한 만큼 기술 중립적인 내용을 요건으로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