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에서 빅테크의 사업 확장을 구조적으로 견제하려는 조짐이 본격화되고 있다. 영국 경쟁당국인 CMA(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는 1년 전 페이스북이 지피를 인수한 것을 두고 시장 경쟁을 제한한다는 중간 결론을 내놨다. 이로 인해 페이스북은 2020년에 인수한 이미지 공유 플랫폼 지피(GIPHY)를 뱉어내야 할 위기다. 앞서 미국은 FTC가 페이스북의 왓츠앱, 인수타그램 인수에 재평가를 내놨다.

지피(GIPHY) 화면 갈무리
지피(GIPHY) 화면 갈무리
12일(현지시각)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반독점 경쟁당국인 CMA는 페이스북의 지피 인수가 광고 시장 경쟁을 제한한다는 내용의 예비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CMA의 결정은 올해 1월부터 시작된 페이스북 반독점 혐의 조사 이후 발표한 중간 결론이다. CMA는 "10월 발표되는 최종 보고서에서 같은 결론이 나면 페이스북이 지피를 매각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지피는 한국계 미국인인 알렉스 정이 2013년 제이스 쿡과 공동 설립한 이미지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페이스북은 2020년 5월 4억달러(4700억원쯤)를 들여 지피를 인수했다.
지피는 사용자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이미지(GIF)를 대량 보유하고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다. 움직이는 사진을 의미하는 ‘움짤' 사진 검색으로 유명하다. 트위터, 스냅챗, 틱톡 같은 소셜미디어에서는 이용자들이 지피와 연동해서 다수 ‘움짤'을 이용하고 있다. 지피는 페이스북뿐 아니라 주요 플랫폼에서 게시물과 댓글에서 필수 요소로 이용되고 있다.

CMA는 지피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업계에 악영향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향후 다른 소셜미디어 플랫폼이 지피의 데이터를 이용하려고 할때 페이스북이 이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틱톡과 트위터, 스냅챗 등 지피의 주요 고객사가 지피 데이터를 계속 이용하려 할 때 페이스북이 더 많은 사용자 데이터를 제공하라고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봤다. 주요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의 의존도를 비춰볼 때, 페이스북이 향후에는 자신들의 소셜미디어 영향력을 강화하는데만 지피를 이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CMA는 지피가 페이스북 인수 이전부터 영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로의 광고 서비스 확장을 고민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만약 페이스북이 지피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최대의 경쟁자가 됐을 것이라고 봤다. 이는 페이스북이 사전에 이를 인지하고 지피를 흡수해 경쟁을 제한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페이스북은 이에 대해 "증거로 뒷받침되는 결과가 아닌 조사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미 일어난 일이 아닌, 일어날 일을 가정해서 페이스북의 인수 결정을 되돌리려는 경쟁당국 행보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인수된 지피는 외신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업계는 미국에 이어 유럽서도 빅테크 견제하는 규제 논의가 강경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 동안 유지하던 유럽의 입장이 미국을 따라간다는 해석이다. 앞서 유럽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관점에서 빅테크 규제를 논의해왔다. 다만 빅테크의 사업 확장을 구조적으로 막기 위한 규제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반면 미국 하원은 앞서 지난 6월 말 빅테크의 스타트업 인수가 시장 경쟁을 침해하지 않는지 기업 스스로 입증하게 하는 내용이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2020년 12월에는 FTC는 페이스북의 왓츠앱, 인스타그램 인수가 시장 경쟁을 제한했다고 보고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은 주요 플랫폼 기업의 스타트업 인수 심사를 강화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플랫폼 기업이 인수하려는 기업의 종합 평가를 강화할 조짐이다. 공정위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 특성을 반영한 기업결합 심사기준 개정 검토에 들어갔다. 이는 지난해 11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신산업 분야에서 선도 주자가 진입장벽을 구축하기 위해 성장 잠재력이 있는 신생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킬러인수'의 부작용을 살펴보겠다고 한 데 따른 후속 작업으로 보인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