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위험평가 ‘은행 소관’ 이라더니...금융위 ‘선 넘네’

조아라 기자
입력 2021.08.18 06:00
정부가 실시한 가상자산 거래소 현장컨설팅을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현장 컨설팅이 사전 위험평가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위험평가는 은행의 사적 영역이라고 명확히 선을 긋던 정부가 특정금융법(이하 특금법) 상 신고수리를 앞두고 불필요한 심사 결과를 내놨다는 평가다. 은행이 실명확인 입출금 서비스(이하 실명계좌) 확인서 발급을 위한 위험평가를 진행하는 가운데, 정부가 법적 근거 없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 발표, 모두 은행연합회 위험평가 항목

17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가 현장 컨설팅을 바탕으로 사실상 사전 심사를 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컨설팅 결과 발표 내용 대부분이 은행의 위험평가 항목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위는 하루 전인 16일 가상자산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현장컨설팅 결과, 신고수리 요건을 충족하는 사업자가 없다고 밝혔다. 또 이들 취약사항은 신고 접수시까 보완할 것을 사업자에 요구했다.

금융위는 특금법 이행 준비 상황이 전반적으로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각 거래소에 자금세탁방지 전담인력이 없거나 부족하고, 자금세탁 의심거래를 분석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하는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고 봤다.

또 거래소들의 내부통제 수준도 미흡한데다 상장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상화폐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가상화폐지갑(콜드월렛) 보안 체계나 이용자 자산 보호를 위한 손해배상 등의 구제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곳도 있다고 평가했다.

서류 등 준비사항 점검 목적이던 현장컨설팅, 신고수리 사전심사로 둔갑

이 같은 평가 내용은 대부분 최근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위험평가 항목에 해당한다. 은행연합회는 올해 4월 ‘가상자산사업자 자금세탁 위험평가 방안’에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위험평가 항목 지침을 안내했다. 은행마다 위험평가 항목과 심사 기준이 달라 공통의 지침서를 마련하자는 목적이다.

은행연합회의 위험평가는 고유위험과 통제위험 평가로 나뉜다. 상장 시스템과 보안 위협 등은 고유위험 항목으로 분류된다. 전담인력과 의심거래 보고 등은 통제위험 항목에 해당한다. 모두 은행이 심사할 내용이란 얘기다.

문제는 당초 정부가 위험평가를 두고 철저히 은행의 영역이라고 선을 그은 것과 상반된 모습이라는 점이다. 앞서 금융위는 7월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은행은 특금법에 따라 가상자산 사업자에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자금세탁위험 평가를 실시, 실명계좌 개설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장 컨설팅 목적은 신고수리를 돕는 데 있다. 당초 금융위는 유선 상담 창구를 연 이후 필요 서류나 신고서류 문의가 대다수를 이뤄 현장 컨설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특히 사업자 신고를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정보보호관리체계(ISMS)나 IT시스템 등을 점검한다는 목적을 강조했다. 업계도 현장 컨설팅이 신고수리의 절차적인 면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위가 언론을 통해 "사업자 신고를 위해 준비사항을 확인하고 취약점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라며 "서류 작성 등 기본적인 것들이 준비되지 않은 채 신고하면 시간이 오래걸릴 수 있다"고 밝힌 데에도 현장 컨설팅의 목적이 잘 드러난다.

결국 현장컨설팅이 신고수리를 위한 절차적 보완 사항을 안내하는 목적이 아닌, 정부가 자체 기준으로 실명계좌 발급을 위한 위험평가를 실시한 셈이 된다. 정부의 현장 컨설팅을 마친 가상자산 사업자들은 별도로 은행의 위험평가 실사를 받고 있다. 정부가 아닌 은행이 위험평가 보완 내용을 사업자에게 안내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특금법, 금융위의 신고수리 거부 사유 명시…금융위 발표 ‘모호’

일각에서는 금융위의 이번 발표 내용이 법률상 근거와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특금법은 신고수리를 거부할 수 있는 사유로 ▲정보보호관리체계인증(ISMS)을 획득하지 못했거나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했거나 ▲법률이 정한바에 따라 임직원이 일정한 범죄에 연루된 경우 ▲신고말소 후 5년 이내인 경우에 한한다.

반대로 이를 모두 갖출 경우 정부가 신고수리를 거부할 명분을 찾기 쉽지 않다. 나머지는 모두 은행이 심사하고 판단할 영역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사업자들이 신고수리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화인 금융감독원 블록체인발전포럼 자문위원은 "특금법은 정부의 신고수리 거부 사유로 4가지를 명시했다"며 "이번 금융위 발표는 법률 권한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는 정부가 책임은 지지 않고 규제만 강화하겠다는 것이다"라며 "정부는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히 한데다가 시장과 이용자에게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을 내비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전 심사 기준 공개 요구도…은행 실명계좌 확인서 발급에 부정적인 영향

전문가들은 금융위가 현장 컨설팅 결과의 기준이 된 가이드라인을 공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은행과 업계가 정부에 위험평가 가이드라인 마련을 꾸준히 요구했던 만큼, 이번 현장 컨설팅을 계기로 정부가 세운 기준을 공개해 자금세탁위험과 시장 혼란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중 고려대학교 특임교수는 "이번 금융위 발표에서 심각한 결함이 발견된다"며 "자금세탁방지 현황이 미흡하다면 어떤 기준을 근거로 어떻게 미흡한지, 미흡 여부를 재평가할 계획인지, 9월 24일까지 이러한 보완 사항이 해결될 수 있는 지 모두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모든 사업자가 자금세탁방지가 미흡하다면 왜 4대 가상자산 거래소만 실명계좌를 발급받고 나머지는 발급받지 못하고 있는 지 의문점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은행이 실시하는 실명계좌 위험평가 과정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넣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금융위의 이번 발표는 은행으로 하여금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하지 말라는 시그널을 준 것과 마찬가지다"라며 "금융위는 신고수리 요건은 특금법에 명시됐으며 실명계좌 위험평가는 은행의 사적 영역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 놓고 명확한 법적인 근거 없이 모호하게 자금세탁방지 현황을 발표해 시장을 위축시키고 신고수리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고 비판했다.

국내 시중은행에서 자금세탁방지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는 "가상자산 사업자 위험평가는 은행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지만 정부가 현장 컨설팅을 실시하고 컨설팅 결과 보완 사안을 알린다는 이유로 기준 미달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며 "금융위는 금융정보분석원(FIU) 자금세탁방지 업무규정에 따라 자금세탁방지 수준을 점검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가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다시 한번 드러낸 결과다"라고 설명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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