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은 역사책방과 공동으로 대선후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후보들의 정치력이나 이미지보다는 정책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 대선후보 중 정책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과 첫 인터뷰를 했습니다. [편집자 주]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대선후보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합리성'를 내세웠다. 윤 의원은 "데이터와 논리에 기반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실제 데이터에 기반해 합리적인 정책을 실행했던 독일 메르켈 총리가 롤 모델"이라며 '한국의 메르켈'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젠더갈등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심각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모든 계층이 미래와 경제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며 "'젊은 남성들의 생각이 잘못 됐다', '페미가 문제다'라는 식으로 남녀와 세대·계층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화해시키고 봉합시킬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 윤희숙 의원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선 후보로서 본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예를 들면 윤석열 후보는 '공정', 이재명 후보는 '추진력'인 것 같다.

"정체성이 너무 많긴 한데 '미래지향적인 합리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선레이스에서 합리성의 핵심은 근거에 기반해 정책을 만든다는 점이다. 데이터와 논리에 기반해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후보들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다른 후보들은 현실성이 없거나 우리 사회의 미래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내고 있지 않나.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독일 메르켈 총리는 데이터에 기반해 합리적인 정책을 폈다."

-한국의 메르켈이 되겠다?

"롤 모델이다. 메르켈은 정치적인 쇼를 하지 않고 실용적 근거에 기반해 정책을 하는 등 장점이 많은 정치인이다. 쇼 일변도의 우리나라 정치에 필요한 요소다."

-우리 정치는 너무 포퓰리즘적이다. 메르켈 모델은 우리나라에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국민들의 지도자에 대한 기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점점 더 논리와 합리성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생겨날 것으로 생각한다. 10년 전이라면 나같은 50대 초반의 여성 전문가가 대선 후보로 나온 것, 그리고 2%의 지지율을 기록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2%의 지지율은 너무 낮다.

"나라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큰 변화를 보여줄 것이다.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이고 다른 후보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최재형 후보가 '국민의 삶을 왜 국가가 책임지느냐'고 발언했을 때 내가 페이스북에 그에 동조하는 주장을 하니까 최 후보가 거기에 덧붙여서 추가 입장을 냈다.(두 사람은 그 후 8월16일 함께 유튜브 긴급대담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올바른 이야기를 계속 하면 확장성을 가진다. 현재 지지율이 잘 안 오르지만 그런 점에서 시작이라는 의미가 크다."

-정치가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 대선 출마선언에서 말한 대로 투자하고 혁신하는 경제만으로 가능할까.

"젊은이들의 근본적인 절망 요인은 정치권에서 합리적인 결정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래가 보이지 않고 불안하다는 것이다.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합리적이고 근본적인 개혁의 길은 멀어보이기 때문이다."

-노동, 연금 등 개혁에는 기득권의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국민들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는지 알려주는 정치인들의 논의가 많아져야 국민들이 개혁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 국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정치인도 중요하고, 전문가들과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올바른 정책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안 된다?

"여론을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 등 소프트웨어적인 것들이 개혁을 추동하는 데 중요하다. 국민들의 정서를 이끌어내야 하고 필요성을 느끼게 해야 한다. 언론과 전문가들의 많은 논의도 필요하다."

-지금 시점에서 그게 가능할까. IMF 때처럼 국가적 위기의식도 없다.

"시대가 숙성했다. 세대간 갈등요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기득권이 공고하던 세대가 이제는 자녀들의 노동 문제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10년 전에 비하면 개혁을 위한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심각하다. 젠더 갈등에 세대 갈등에, 정치권도 지지세력들 사이에 종로 벽화 등 도를 넘는 행동들이 나타나고 있다. 양쪽 극단에 있는 사람들이 큰 목소리는 내기 때문으로 보인다.

"먼저 젠더 갈등은 아주 극단적인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직접적으로 갈등에 노출되지 않은 중도 성향의 젊은이들도 각각의 극단적 주장에 동의하는 정서를 갖고 있다. 특히 젠더 갈등은 비단 성별 갈등 뿐 아니라 세대갈등, 계층갈등까지 포함돼 있다."

-세대갈등, 계층갈등이라 함은?

"페미니즘에 대해 40대, 50대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힘든 상황에서 애쓴다' 정도로 생각한다. 20대 남성들은 페미니즘을 '거악(巨惡)'으로 본다. 남성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불필요하게 남녀갈등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10대 남성들은 더 심하다고 한다. 50대와 10대·20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세대 간 관점 차이에 대해 짚어보면, 우리나라가 너무 빠르게 발전·변화를 거듭하다보니 세대 간 정서·기억 간에 큰 간극이 생겼다. 20대 남자들이 페미니즘과 젠더갈등에서 느끼는 박탈감을 그 이상의 선배들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계층갈등의 의미는.

"젠더 갈등은 경제적 계층에 따라 달리 작용한다. 미래와 전망이 비교적 안정적인 사람은 남녀간에 별로 갈등하지 않는다. 충분히 살 만하니까 갈등이 적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한다. 반면 경제적으로 어렵고 취업도 잘 안 되면 남성, 여성 모두 젠더 갈등에 더 많이 노출된다. 좋은 일자리를 두고 세대 내 경쟁이 치열하다. 미래가 불안하고 현재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없다. 결국 젠더 갈등은 성별 갈등 외 세대·계층간 갈등이 포괄적으로 합쳐진 문제다."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1차적인 해결책은 성별에 국한해 이야기를 푸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이 미래와 경제에서 장미빛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젊은 남성들의 생각이 잘못 됐다', '페미가 문제다'라는 식으로 남녀와 세대·계층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화해시키고 봉합시킬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는 높은 수준의 정치 과제지만, 젠더갈등은 그만큼 성숙하게 접근해야하는 문제다."

-정치 상황을 보면 극단적 지지층들이 너무 큰 목소리를 낸다.

"원래 정치 지지층들은 목소리가 크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 심각한 것 같다. 정치문화가 '너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으로 극단화됐다. 586 운동권 정치인들이 이렇게 상황을 악화시킨 것 아닌가. 정치권도 더이상 민주국가인 현대와 어울리지 않는 정치세력은 퇴장해야 한다. 예전에 타협이라는 단어가 독재와의 타협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우리는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극단적 성향은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는 합의와 소통·타협이라는 대전제로 완성된다. 이런 단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세력이 권력을 쥐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담=정재형 취재본부장, 이민우 기자 mino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