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대 대상 코로나19 백신접종 사전예약이 순항 중이다. 7월 사전예약 시스템에서 오류가 발생했던 것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일이다. 대기업이 참여한 덕에 안정적인 시스템이 구축됐다는 공치사도 등장한다. 질병관리청이 LG CNS에 손을 내민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예약시스템 불통 책임을 중소기업에 떠넘기는 논리도 등장한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 IT업체가 백신 예약 시스템을 만들어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지적을 받아야 할 곳은 허술하게 준비했던 정부인데, 화살이 애꿎은 기업으로 향한다.

LG CNS와 KT, 네이버 등 IT 대기업이 예약시스템 개선 과정에 기여를 한 것은 맞지만, 이들만 공을 세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스템 개선을 주도적으로 한 것은 ‘민관협력 시스템 개선TF’였고, 여기에는 대기업뿐 아니라 베스핀글로벌, 와탭랩스, 쌍용정보통신 등 중소·중견기업 등 총 18개 기업이 참여했다. 기업별 활약 정도 차이는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이 똘똘 뭉쳐 이뤄낸 성과물이다.

중소기업을 겨냥한 책임론에 대기업의 공공부문 참여를 제한하는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SW진흥법)이 새로운 이슈로 등장한다. 공공 사업에 대한 기회를 중견·중소기업만 갖는 것 자체가 문제여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전예약 시스템 오류의 경우 대기업이 공공 시스템을 만들지 않아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정부가 더 잘 할 수 있는 곳에 맡기지 않아 발생한 문제로 볼 수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안일하게 기존 시스템을 재활용하다 불거진 일이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정부 측은 접속 대상자가 9만명인데 1000만명이 동시에 사이트에 접속하며 문제가 발생한 만큼 유저(이용자) 문제가 컸다고 판단했다. 서버 과부하의 원인을 국민에게 돌린 것이다. 정부는 왜 국민들이 백신접종 예약을 위해 스마트폰과 PC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왜 다중 접속했는지 정말 모르는 것일까. 국민의 불안감을 헤아리지 못하는 공무원의 발언에 한탄이 절로 나온다.

백신접종 사전예약 시스템 오류의 가장 큰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것은 명명백백한 일이다. 코로나19가 발발한 지 벌써 1년 6개월 이상 됐지만, 지금껏 제대로 된 예약시스템조차 구축하지 않았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여러 기기로 동시에 사이트 접속을 시도한 국민의 잘못이 아니다.

정부가 잘못한 일을 대기업·중소기업 간 첨예한 이슈인 SW진흥법 개정으로 몰고 간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끼리 논쟁하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국가적 위기상황을 악용하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SW 운동장이 대기업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잘 조율하고 기업끼리 상생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