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흐르던 삼성의 경영시계가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출소 후 빨라졌다. 이 부회장의 경영참여를 취업제한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는 법무부의 해석이 나오며 삼성그룹 차원의 투자, 인수합병(M&A) 등을 실행하기 위한 의사결정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하자마자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핵심 사업 현안을 챙겼다. 광복절 연휴 기간(14~16일) 내내 출근 후 화상회의를 거듭하며 주요 경영진과 다양한 사업 현안을 논의했다. 다음 경영 행보를 위한 준비에 나섰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 위치한 삼성 복합단지를 찾아 스마트폰 생산공장 등을 점검하는 모습/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베트남 하노이 인근에 위치한 삼성 복합단지를 찾아 스마트폰 생산공장 등을 점검하는 모습/ 삼성전자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 소식에 삼성그룹 특유의 빠른 실행력이 눈에 띈다는 평가가 잇달아 나온다.

삼성전자는 17일 갤럭시 스마트폰에 탑재된 기본 앱 내 광고도 빼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6월 기본앱인 ‘날씨’부터 최상단 부분에 배너 광고를 삽입하는 ‘인앱애드’를 도입해 논란이 일었다. 게임런처 등 다른 기본 앱에도 광고를 넣어 프리미엄 이미지를 훼손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노태문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은 이날 사내 타운홀 미팅 질의응답 과정에서 기본앱 광고에 대해 "날씨 및 삼성페이 등 기본 앱 내 광고를 빼고 다시 배포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출소한 13일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가 미국 일리노이주에 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12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딕 더빈 미국 연방 상원의원은 이날 일리노이주 지역지와 기자회견에서 "이번 주 한국에서 (삼성SDI) 대표단이 왔다"며 "삼성SDI 배터리 공장이 설립되면 이곳에 수천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삼성SDI가 스텔란티스, 리비안 등에게 배터리를 공급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삼성SDI가 스텔란티스에 최소 3조원, 리비안에는 1조원쯤을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다음 경영 행보는 반도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에 제3공장(P3)을 조성하고 있는데, 이 부회장이 이곳을 점검한 후 TSMC와 인텔 등 경쟁사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19조원 규모로 건설하기로 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공장 부지에 대한 결정도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를 기점으로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분야에서 ‘비전 2030’과 ‘뉴삼성’ 등 목표 재점검과 새로운 비전 제시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경영 일정과 방향에 대해 현재 정해진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