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 은행연합회 등 감독당국과 관련 기관까지 모두 나와 성실하게 답변해 준 보기 드문 포럼이었습니다. 특별한 논리없이 기간을 많이 부여했으니 연장불가라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 열린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정상화를 위한 포럼에 나왔던 한 패널의 말이다. 이는 가상자산(암호화폐) 업계가 정부를 향해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신고 기간을 6개월 연장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금융당국은 기간을 충분히 줬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못박은 정부를 지적하며 나온 말이다.

신고기간 연장 요구는 이번 한번이 아니다. 하물며 업계 뿐 아니라 정치권에서조차 특금법에 개정이 필요하다며 거래소 신고 유예 기간 6개월 연장 등을 포함한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신고기간을 연장해주지 않으면 줄폐업이 불가피하다고 울부짖는다.

국내 거래소의 한 대표는 "법과 현실에 괴리가 있다"며 "정부의 역할은 사업자가 규제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오히려 금융위원회가 은행을 압박하고 신고 수리를 해주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대표변호사는 "정부 발표대로 현존하는 모든 사업자의 법적 요건이 미비하다는 것은 그 법이 잘못 만들어졌거나 법적 요건에 대한 정부 기준이 잘못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사업자들이 법을 지킬 수 있는 기간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계와 정치권,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로 거래소의 줄폐업을 막아야 한다며 외칠 때 규제 당국만이 강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셈이다.

이런 모습은 비단 가상자산 시장에서만 보여진 게 아니다. 가계대출도 비슷하다. 금융위는 가계대출이 늘고 있기 때문에 증가량을 줄이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대출을 틀어막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조언이 계속 나온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이 가중된 이 시기에 무조건 대출을 조이면 소득과 신용이 낮은 계층은 결국 비싼 이자를 내고 돈을 빌리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끊임없다. 그럼에도 금융위는 마이웨이다. 무조건 화살표를 꺾는 게 능사라고 주장한다.

이 정도면 아예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셈이다. 이래선 새롭게 등장한 금융 산업이 발전할 수 없으며 디지털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금융위원회는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선진화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하고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립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내 금융 분야 최고 의사결정 기구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우리 금융 산업이 미래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기 바란다.

유진상 디지털경제부장 jinsan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