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국내 소비자 홀대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반쪽짜리 성능의 노트북을 해외보다 10만원 이상 비싸게 출시하더니, 이번엔 신형 태블릿 출시 과정에서 삼성만 믿고 일찍 구매한 충성도 높은 국내 소비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논란의 주인공은 지난 7월 23일 정식 출시한 ‘갤럭시 탭 S7 FE’다. 자사의 대표급 안드로이드 태블릿 ‘갤럭시 탭 S7+’와 동일한 화면 크기에, 일부 기능을 빼거나 사양을 낮춰 ‘가성비’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12.4인치의 큼직한 화면에 필기 및 드로잉이 가능한 최상급 안드로이드 태블릿인 만큼, 기존 갤럭시탭 사용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출시 초기에는 상위 모델 대비 일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 빼고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8월 4일, 갤럭시 탭 S7 FE의 해외 출시 소식이 논란을 불러왔다. 국내에는 볼 수 없던 와이파이(WiFi) 전용 제품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처음 국내서 출시 소식을 전할 때만 해도 갤럭시 탭 S7 FE의 와이파이 전용 제품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오직 LTE 및 5G 지원 제품만 목록에 있었고, 이는 예약 판매 시작 및 정식 출시 이후에도 변동이 없었다. 때문에 와이파이 버전을 기대하던 국내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LTE 및 5G 버전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해외 출시 판에는 국내에선 언급도 없던 와이파이 버전이 당당하게 포함되어 있었으니, 국내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가 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국내 소비자들이 와이파이 버전을 원한 이유는, 와이파이 인프라가 잘 갖춰진 국내에서는 태블릿이나 노트북에서 LTE 및 5G 기능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흔한 카페는 물론, 일반 음식점에서조차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하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공공 와이파이를 제공한다. 매월 따로 요금을 내야 하는 LTE 및 5G가 없어도 어디서든 인터넷에 쉽게 접속할 수 있다.

게다가, 같은 태블릿이라도 LTE 및 5G 기능을 이용하려면 별도의 모뎀을 추가로 탑재해야 하고, 그만큼 제품 가격도 올라간다. 달리 말해 와이파이 전용 제품은 LTE 및 5G 모델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얘기다. 즉, 국내 소비자들은 훨씬 저렴한 와이파이 버전의 존재를 전혀 모른 채, 5G 및 LTE 버전의 갤럭시 탭 S7 FE를 비싸게 구매해야 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삼성전자는 이번 갤럭시 탭 S7 FE를 선보이면서, 셀룰러(LTE 및 5G) 모델과 와이파이 전용 모델에 서로 다른 AP를 사용했다. 셀룰러 모델에는 퀄컴의 스냅드래곤 750G를, 와이파이 전용 모델은 스냅드래곤 778G를 사용한 것.

모델명에서 알 수 있듯 스냅드래곤 778G가 750G보다 최신 제품이고, 성능도 더 뛰어나다. 업계에 따르면 두 AP의 성능 차이는 벤치마크 기준으로 약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기준으로 약 한 세대 정도의 차이다. 이는 가격이 저렴한 갤럭시 탭 S7 FE 와이파이 버전의 성능이 오히려 더 비싼 셀룰러 버전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의미다. 일찌감치 갤럭시 탭 S7 FE의 셀룰러 버전을 구매한 국내 소비자들의 심정이 편할 리가 없다.

8월 10일 뒤늦게 올라온 갤럭시 탭 S7 FE 와이파이 모델 출시 소식 / 삼성 뉴스룸
8월 10일 뒤늦게 올라온 갤럭시 탭 S7 FE 와이파이 모델 출시 소식 / 삼성 뉴스룸
삼성전자도 뒤늦게야 지난 8월 10일 갤럭시 탭 S7 FE 와이파이 전용 모델의 국내 출시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주요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던 셀룰러 버전과 달리, 와이파이 버전 출시 소식은 소리소문 없이 자사 홈페이지 뉴스룸에만 슬쩍 노출하는 꼼수를 부렸다. 물론, 셀룰러 버전을 먼저 산 충성 고객들에 대한 보상안 등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갤럭시 탭 S7 FE에 관련된 논란은 11일 공개한 차세대 폴더블폰 ‘갤럭시 Z 폴드3’와 ‘Z 플립3’ 소식에 그대로 묻혀버렸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 사후, 하드웨어나 기능 면에서 크게 혁신적이거나 압도적인 면모를 보이지 않음에도 여전히 승승장구 중이다. 비싸게 제품을 내놓아도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의 존재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누구보다 먼저 챙기고 신경써야 할 국내 충성 고객들의 뒤통수를 호되게 치는 모양새다. 하드웨어와 기술 혁신도 중요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충성 고객들이 돌아서기 전에 확실하게 붙잡아 놓는 노력이 더 중요해 보인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