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LG·SK 배터리 분쟁

이광영 기자
입력 2021.09.01 06:00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심리학에선 이런 감정을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한다. 독일어 샤덴(Schaden, ​​피해)과 프로이데(Freude, 즐거움)의 합성어다.

국내 배터리 업계도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 오랜 분쟁으로 앙금이 풀리지 않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얘기다. 양사는 4월 11일 2년 간 이어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을 공식적으로 끝냈다. 한국과 미국 정부의 합의 요구에 못 이긴 척 어색하게 손을 잡았다. 소송 장기화에 따른 비용 부담과 사업지속성 타격 우려를 해소할 수 있었기에 양사에 ‘윈윈’인 선택지였다.

하지만 양사의 이후 행보를 살펴보면 소송 과정에서 깊어진 감정의 골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 수면 아래에선 소송 못지 않은 신경전이 펼쳐진다. 양사가 2분기 실적에 입맛대로 합의금을 반영한 것이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에 일시금으로 지불하겠다고 밝힌 합의금 1조원을 ‘영업외손익’에 반영했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이를 ‘영업이익’에 포함했다.

배터리 업계는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각사의 진짜 속내가 실적 자료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풀이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합의금 1조원을 영업비밀 사용 허락 대가로 판단한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이를 로열티가 아닌 소송 비용 정도로 봤다는 분석이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탑재된 GM 볼트EV는 리콜 조치를 받았고,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채용한 현대차 포터EV에서는 연기가 발생하는 사고가 났다. 그야말로 배터리 업계의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연내 상장 목표 수정 가능성을 내비친 LG에너지솔루션에 치명적 이슈가 집중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전기차 시장에서의 배터리 사용량이 LG 대비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SK 입장에서는 호기로 볼 수 있다. 언론 입장에서는 양사간 반응을 유심히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배터리 분쟁의 여진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민감한 내용이라 자세히 글로 풀기는 어렵지만, 경쟁사 배터리 탑재 차량에서 발생한 화재 등 사건 제보가 잇따르는 등 소송 기간 양사 간에 치열하게 펼쳐졌던 장외 설전이 다시금 부활한 것 아니냐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대표는 10개월 전 코나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남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배터리 안전성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 빨리 원인을 파악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전기차 초기 시장에 상대의 아픔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전기차 보급률을 더 높이는 것이 서로 이득이라는 의중이었을 것이다.

비즈니스에서 아름다운 경쟁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특정 기업이 아닌 한국의 배터리 산업을 응원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소모적인 ‘샤덴프로이데’는 이제 지양해야 한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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