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ITC 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메타버스’다. 기존의 가상현실(VR)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적 활동까지 가능한 좀 더 광범위한 의미의 가상공간을 의미하는 메타버스는 코로나로 인해 외부 활동이 제약된 시대 상황에 맞춰 관심과 수요도 덩달아 급증했다.

여기에 페이스북의 자회사 오큘러스가 선보인 독립형 VR 헤드셋(VR HMD) ‘오큘러스 퀘스트2’가 제2의 VR 중흥기를 열고 있다. PC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단독형 제품에, 준수한 화질과 성능을 제공하면서 가격까지 절반 수준에 불과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VR 헤드셋’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HTC 바이브 포커스3 / 최용석 기자
HTC 바이브 포커스3 / 최용석 기자
오큘러스와 더불어 VR 헤드셋 분야를 선도해온 HTC 바이브(VIVE)도 최근 차세대 독립형 VR 헤드셋 ‘바이브 포커스3(VIVE Focus 3)’를 선보였다. 오큘러스 퀘스트가 주로 일반 개인 사용자를 위한 제품으로 선보인 것과 달리, 바이브 포커스3는 기업의 비즈니스 환경 및 B2B 시장을 위한 제품으로 선보인 것이 특징이다.

HTC 바이브의 세 번째 독립형 VR 헤드셋으로 등장한 바이브 포커스3는 우선 디자인부터 크게 바뀌었다. 다소 크고 투박하게 생겼던 이전 포커스 시리즈와 달리, 포커스3는 전면 고글부의 크기가 대폭 작아지고 외형도 좀 더 콤팩트하면서 세련되게 바뀌었다.

이전 세대 제품보다 세련되고 깔끔해진 바이브 포커스3 / 최용석 기자
이전 세대 제품보다 세련되고 깔끔해진 바이브 포커스3 / 최용석 기자
헤드셋 정면 커버에는 바이브 특유의 삼각형 로고가 새겨져 있다. 정면 테두리에는 ‘베이스 스테이션’ 같은 외부 추적(트래킹) 장치 없이 주변 공간을 인식하고 컨트롤러를 추적하는 인사이드-아웃 방식 광학 센서 4개가 탑재됐다. 정면 중앙의 위아래 틈새에는 독립형 VR헤드셋을 구동하는 AP에서 발생하는 열을 배출하기 위한 통기구가 보인다.

경쟁사의 오큘러스 퀘스트 시리즈가 극한의 원가 절감을 위해 일부 품질 및 구성을 희생한 것과 달리, 바이브 포커스3는 비즈니스 및 B2B 시장을 위한 제품답게 구성이나 기능, 마감 등이 매우 고급스러운 편이다.

얼굴과 밀착하는 안면 쿠션은 부드러운 질감에 오염에 강한 합성 가죽 소재를 사용했다. 부드러운 착용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용 후 쿠션에 묻은 땀이나 화장품 등을 쉽게 닦아낼 수 있어 유지 관리가 편하다. 종종 얼굴에 잘 안 맞는다는 말이 나오는 오큘러스 퀘스트 시리즈와 달리, 바이브 포커스3의 안면 쿠션은 이질감도 적고 밀착감도 좋다. 특히 콧등 주변의 고무 커버가 훨씬 크고 넓어 외부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더 잘 차단한다.

안면 쿠션은 쉽게 분리하고 간편하게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 최용석 기자
안면 쿠션은 쉽게 분리하고 간편하게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 최용석 기자
포커스3의 안면 쿠션은 헤드셋 본체에 자석으로 고정되어 있어 잡아당기면 쉽게 빠진다. 이는 포커스3를 상업용 VR 시설에서 사용할 때, 사용자가 바뀔 때마다 안면 쿠션을 바로바로 교체할 수 있게 함으로써 더욱 쉽고 편하게 관리할 수 있게 한 설계로 풀이된다. 매번 현장에서 헤드셋을 직접 닦을 필요 없이, 쿠션 부분만 따로 모아서 한꺼번에 세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착용의 편의성 역시 기존 바이브 시리즈의 장점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다이얼 방식의 고정 밴드는 미리 사이즈를 조절할 필요가 없이 다이얼만 돌리면 자동으로 사용자의 머리에 맞춰 안정적이고 단단하게 헤드셋을 착용할 수 있다. 여기에 고정 밴드를 원터치로 풀 있는 ‘퀵 릴리즈’ 버튼도 달려있다. 버튼을 누르는 즉시 고정 밴드가 풀리면서 헤드셋을 1초도 안 걸리고 바로 벗을 수 있다.

고정 밴드 조절 다이얼과 원처티 퀵 릴리즈 버튼이 쉽고 빠른 착탈을 돕는다. / 최용석 기자
고정 밴드 조절 다이얼과 원처티 퀵 릴리즈 버튼이 쉽고 빠른 착탈을 돕는다. / 최용석 기자
헤드셋 착용 시 정면은 안면 쿠션이, 머리 뒤쪽은 미끄럼 방지 가공이 된 PU 소재의 푹신한 쿠션이 헤드셋을 머리에 단단히 고정한다. 안면 쿠션과 마찬가지로 땀이나 각종 오염물질이 묻어도 바로 닦아낼 수 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대다수 VR/AR 헤드셋은 헤드셋 전면 고글부에 주요 부품과 구성, 기능이 집약되어 있다. 그만큼 헤드셋 앞쪽으로 무게가 쏠리고, 이는 장시간 착용 시 목과 어깨 근육에 부담을 주면서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

앞뒤 무게 균형도 잘 맞는 바이브 포커스3는 실제 착용해 보면 몸으로 체감되는 무게감도 크지 않다. 그만큼 오래 사용해도 그만큼 몸이 덜 피로하다.

무게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배터리를 후면 쿠션 안쪽에 넣었다. / 최용석 기자
무게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배터리를 후면 쿠션 안쪽에 넣었다. / 최용석 기자
이러한 무게 배분의 비결은 배터리의 위치다. 독립형 VR 헤드셋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면서 가장 무거운 부품 중 하나인 충전 배터리는 헤드셋 후면 고정 쿠션 안에 수납한다. 안면 쿠션처럼 자석으로 고정된 후면 쿠션을 당겨서 벗기면, 기와 모양의 전용 배터리를 수납할 수 있는 배터리 장착 공간이 드러난다. 이러한 설계로 앞뒤 무게 균형을 맞춤으로써 훨씬 나은 착용감을 완성했다.

몰입도 높은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운드’ 역시 중요하다. 바이브 포커스3는 기존 바이브 헤드셋 제품처럼 귀에 직접 밀착하는 헤드폰은 아니지만, 헤드셋 고정 밴드에서 귀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고품질의 스피커를 달아놓았다. 귓가에서 들리는 깨끗하고 선명한 사운드가 각종 VR 콘텐츠와 서비스의 몰입도를 한층 높인다.

헤드 고정 밴드에 내장된 고품질 스피커 / 최용석 기자
헤드 고정 밴드에 내장된 고품질 스피커 / 최용석 기자
이는 스피커가 본체 내부에 들어있고, 헤드셋 고정 밴드 속 빈 통로를 통해 소리를 전달하는 오큘러스 퀘스트 시리즈보다 훨씬 고품질의 사운드를 재생한다. 헤드셋 본체에는 별도의 이어폰 등을 연결할 수 있는 3.5㎜ 스테레오 단자도 제공한다.

이번 바이브 포커스3의 최대 장점은 업계 최고 수준의 ‘화질’이다. 한쪽 눈 당 2448x2448픽셀의 디스플레이를 사용, 총 5K급에 달하는 4896x2448의 통합 해상도를 구현했다. 덕분에, 기존 VR/AR 헤드셋 제품들에서 누누이 언급되던 ‘모기장 현상(화면을 구성하는 액정 소자 간 격벽이 확대되어 모기장처럼 보이는 현상)’을 이 제품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다.

픽셀 하나하나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선명한 화질은 소위 말하는 ‘레티나급’에 맞먹는다. 각종 텍스트도 번짐 없이 선명하게 표시해 가상현실 내에서 문서작업도 문제없을 정도다.

바이브 포커스3 착용 모습 / 최용석 기자
바이브 포커스3 착용 모습 / 최용석 기자
그뿐만이 아니다. 기본 90㎐까지 지원하는 주사율 역시 깜빡임이 거의 없고, 매우 부드러우며 매끄러운 가상현실 화면을 제공한다. 시야각 역시 120도로, 눈에 보이는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이러한 화질 개선은 낮은 해상도와 낮은 주사율, 비좁은 시야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고질적인 어지럼증 현상을 줄이는 데도 한몫한다.

전용 컨트롤러의 디자인과 사용성도 전작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 전작의 쓰기 불편하고 어중간한 리모컨 형태의 디자인 대신, 손에 착 달라붙는 그립감에 게임 컨트롤러를 연상케 하는 버튼과 조이스틱, 트리거 버튼 등으로 구성된 신형 컨트롤러를 채택해 조작성이 대폭 향상됐다.

조이패드 형태의 새로운 디자인의 컨트롤러를 채택했다. / 최용석 기자
조이패드 형태의 새로운 디자인의 컨트롤러를 채택했다. / 최용석 기자
전용 컨트롤러의 전원은 교체형 건전지가 아닌, 충전식 배터리를 사용한다. 한 번 충전하면 최대 15시간 연속 사용할 수 있으며, 타입C 케이블로 충전한다. 헤드셋에 달린 센서로 위치를 추적해 인식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은 인사이드-아웃 방식의 추적 방식을 사용하지만, 사람 팔의 가동 범위 내에서 컨트롤러 위치를 놓치는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준수하고 안정적인 위치 추적 성능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이브 포커스3의 하드웨어는 기존 VR/AR 헤드셋 제품들과 비교해도 매우 뛰어난 완성도를 제공하다. 특히 5K급 해상도가 제공하는 화질은 요즘 잘나가는 오큘러스 퀘스트2도 한수 접고 들어갈 정도다. 하지만 하드웨어만 좋아서는 안된다. PC 없이 단독으로 사용하는 독립형 헤드셋 제품인 만큼 소프트웨어 구성과 콘텐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스마트폰용 ‘바이브 매니저’ 앱으로 바이브 포커스3의 초기 설정을 진행하는 모습 / 최용석 기자
스마트폰용 ‘바이브 매니저’ 앱으로 바이브 포커스3의 초기 설정을 진행하는 모습 / 최용석 기자
바이브 포커스3를 처음 사용하려면 스마트폰 앱을 통한 초기 설정이 필수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스토어 등에서 받을 수 있는 ‘바이브 매니저’ 앱을 이용, 펌웨어 업데이트나 와이파이 연결 등 초기 설정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초기 설정이 끝난 이후에는 헤드셋 단독으로 사용이 가능해진다. 헤드셋을 착용하고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 보면 ‘스팀 VR 홈’과 비슷한 느낌 및 분위기의 ‘로비’가 사용자를 반긴다. 가상현실 속 바이브 포커스3의 조작 콘솔과 사용자 인터페이스 역시 ‘스팀 VR’의 그것과 비슷하다.

바이브 포커스3의 초기 화면인 ‘로비’에서 콘솔 창을 연 모습 / 최용석 기자
바이브 포커스3의 초기 화면인 ‘로비’에서 콘솔 창을 연 모습 / 최용석 기자
기존 바이브 포커스 시리즈는 HTC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VR 앱 마켓 ‘바이브 포트(VIVE Port)’를 통해 앱을 내려받고 실행할 수 있었다. 반면, 이번 바이브 포커스3는 바이브 포트가 아닌, ‘바이브 비즈니스 앱스토어’라는 별도의 앱 마켓을 통해서만 앱을 내려받고 실행할 수 있다. 앱스토어 이름 역시 이 제품이 기업 및 상업 시설에서 사용하기 위한 제품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바이브 비즈니스 앱스토어를 통해 제공하는 앱의 요금 체계 역시 단품 가격이 아닌 사용자 수에 따른 과금 체계를 가지고 있다. 즉 사업장의 규모와 헤드셋의 수에 맞춰 필요한 수량만큼 라이선스를 구매하는 형태다.

바이브 포커스3는 ‘바이브 비즈니스 앱스토어’의 앱만 구매 및 사용이 가능하다. / 최용석 기자
바이브 포커스3는 ‘바이브 비즈니스 앱스토어’의 앱만 구매 및 사용이 가능하다. / 최용석 기자
다만, 현재 바이브 비즈니스 앱스토어를 통해 제공하는 VR 앱의 수는 얼마 안 된다. 바이브 포트, 스팀 등 기존 VR 앱 플랫폼에도 직접 접근할 수 없다. 아무리 기업시장 특화 모델이라 하더라도, 이미 2세대 제품까지 나오고 충분한 앱 생태계를 갖추고 있는 오큘러스 퀘스트2에 비해 약점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HTC 바이브 관계자에 따르면, ‘바이브 비즈니스 앱스토어’는 신형 바이브 포커스3 출시에 맞춰 새롭게 출범한 비즈니스 시장용 플랫폼이다. 현재 전용 앱은 얼마 안 되지만, 향후 비즈니스 전개에 맞춰 전용 앱도 더욱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옵션인 USB-C 케이블(사진) 또는 와이파이를 통해 PC와 연결해 사용할 수도 있다. / 최용석 기자
옵션인 USB-C 케이블(사진) 또는 와이파이를 통해 PC와 연결해 사용할 수도 있다. / 최용석 기자
당장의 앱 및 콘텐츠 부족은 PC에 연결해 사용하는 것으로 해소할 수 있다. 와이파이(Wi-Fi, 무선랜) 또는 별도 옵션인 USB-C 유선 케이블로 PC와 연결하면, 현재 출시 및 이용 가능한 모든 VR 앱을 바이브 포커스3에서 그대로 즐길 수 있다.

물론 이 방식은 PC에서 실행한 VR 앱의 화면을 무선(와이파이) 또는 유선(USB-C)으로 스트리밍 전송하는 방식이라 처음부터 PC 전용 VR 헤드셋 제품에 비해 화질이나 퍼포먼스 등이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브 포커스3를 PC에 와이파이 스트리밍으로 연결해 일반 VR 게임을 즐기는 모습. / 최용석 기자
바이브 포커스3를 PC에 와이파이 스트리밍으로 연결해 일반 VR 게임을 즐기는 모습. / 최용석 기자
그래도 바이브 포커스3의 기본 해상도와 화질이 워낙 우수하기 때문인지, 유선 및 무선으로 스트리밍하는 VR 앱의 화질도 꽤 괜찮은 편이다. 특히 와이파이6 기반 무선 환경일 경우, 유선으로 연결하는 것과 거의 동급의 화질과 퍼포먼스, 반응 속도를 보였다.

바이브 포커스3의 국내 정식 출시 가격은 컨트롤러 포함 기본 세트가 153만원이다. 현재 40만원~50만원대 가격에 판매 중인 오큘러스 퀘스트2의 3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그러나 두 제품은 각각 노리는 시장 자체가 다른 제품이고, 직접적인 가격 비교도 큰 의미가 없다. 오큘러스 퀘스트2는 ‘가성비’를 중시하는 개인용 제품답게, 기본 기능과 성능 부분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극한의 원가 절감을 추진한 것이 여기저기 눈에 보일 정도다. 일반 개인이 싼 맛에 사서 쓰기는 좋지만, 본격적인 기업용 및 상업용으로 쓰기에는 부족하다.

바이브 포커스3의 가격은 개인 기준으로는 비싼 편이지만, 기업용 제품에 어울리는 품질과 성능, 구성, 편의성 등을 갖췄다. / 최용석 기자
바이브 포커스3의 가격은 개인 기준으로는 비싼 편이지만, 기업용 제품에 어울리는 품질과 성능, 구성, 편의성 등을 갖췄다. / 최용석 기자
반면, 처음부터 까다로운 품질을 요구하고, 가성비보다는 내구성, 안정성, 유지관리의 편의성 등이 더 중요한 기업 및 B2B 시장을 노린 바이브 포커스3는 독립형 VR 헤드셋이라는 공통점만 빼면 오큘러스 퀘스트2와 정반대의 노선을 추구했다. 비싼 가격에 걸맞은 최고급 화질과 성능, 고급스러운 구성과 품질 및 마감, 사용 및 유지관리 편의성을 우선한 설계 등을 보면 싼맛에 잠깐 쓰고 마는 제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메타버스 산업과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비즈니스 및 상업적 용도의 VR 헤드셋에 대한 수요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재택근무 및 원격 협업 등 비대면 근무 형태도 산업 전반에 확대 중이다. 그런 만큼, 바이브 포커스가 메타버스 기반 기업 시장에서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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