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민이 매달 지불하는 시청료 수준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해외에서 내는 시청료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낮은 편이다. 방송사의 주 수익원인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이 적다보니 플랫폼 업체와 콘텐츠 사업자 간 갈등이 빈번히 발생한다. 플랫폼 업체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많아야 콘텐츠 업체에 돌아가는 대가도 커질 수 있는데, 현재로는 어려운 상황이다. 방송 생태계에서 악순환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회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콘텐츠 사업자의 투자 회수율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늘려야 건강한 시장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재원이 있어야 퀄리티 높은 방송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IPTV 업계가 PP에 제공하는 대가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ARPU 인상 방안은 마땅치 않다. 이론상으로는 PP에 주는 비용을 늘려야 경쟁력 있는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지만, 플랫폼 업체의 ARPU를 늘리려면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내는 비용을 늘려야 하는 만큼 현실화가 어렵다.

왼쪽부터 배중섭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기반국장,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 임준현 LG헬로비전 컨슈머사업담당, 한진만 강원대 명예교수,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상혁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 이상원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장,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플랫폼본부장, 서장원 CJ ENM 전략지원실장, 오용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진흥정책관이 세미나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홍익표 의원실
왼쪽부터 배중섭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기반국장,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 임준현 LG헬로비전 컨슈머사업담당, 한진만 강원대 명예교수,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상혁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 이상원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장,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플랫폼본부장, 서장원 CJ ENM 전략지원실장, 오용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진흥정책관이 세미나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홍익표 의원실
유료방송 가입자 늘어나는 한국, 플랫폼·콘텐츠 사업자 수익성은 되려 ‘하락’

홍익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의원(더불어민주당)은 8일 오후 온라인으로 ‘유료방송 콘텐츠 거래 합리화 방안 세미나’를 주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국내외 유료방송 콘텐츠 거래 시장의 현황을 살펴 국내 시장의 합리적인 거래 구조 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된 자리다.

세미나 발제는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이 맡았다. 김 위원은 국내를 포함해 20개 국가 주요 플랫폼 사업자의 콘텐츠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내놨다. 44개 플랫폼 사업자와 16개 국가 41개 콘텐츠 사업자의 사업 환경을 살핀 지표다.

김 위원에 따르면, 한국과 GDP 규모가 비슷한 이탈리아, 브라질, 호주의 경우 유료방송 시장의 가입자가 점차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 반면 한국과 러시아는 가입자 증가세를 나타냈다. 한국의 경우 연평균 4%의 성장을 보인다는 게 김 위원 설명이다.

가입자 증가세는 곧 플랫폼 사업자 수익으로 이어져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글로벌 대비 수익성이 높지 않았다. IPTV 사업자 수익은 늘었지만 케이블TV 사업자의 수익이 줄면서 해외 주요국 대비 수익성에서 낮은 지표를 보였다.

콘텐츠 사업자인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수익성을 살피면 상황은 더 심각했다. 2019년 기준 국내 PP 수익성은 4.99%로 이탈리아(38.39%), 캐나다(18.66%), 스페인(24.81%) 등 주요국 수익성 지표와 큰 차이를 보였다.

김 위원은 "PP 마진이 낮은 이유는 투자 회수율이 낮기 때문이다"며 "한국이 PP 투자 회수율만 보면 주요 국가 중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고 설명했다.

GDP 유사 규모인 해외 국가와 비교한 PP 수익성 비교표 / 홍익표 의원실
GDP 유사 규모인 해외 국가와 비교한 PP 수익성 비교표 / 홍익표 의원실
ARPU 정상화과 플랫폼·콘텐츠 사업자 간 협의 개선 필요

해외 주요국 대비 국내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의 수익성이 낮은 배경에는 저가 요금 구조가 있었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과거 박리다매로 최대한 가입자를 끌어모으던 케이블TV 과점 시절부터 현재까지 관행이 이어지면서 파이가 한정돼 있다. 방송 시장의 직접 재원인 ARPU가 낮다 보니 그간 광고 수익 등 간접 재원에 의존했지만, 최근 디지털 전환 가속으로 방송 광고가 디지털 광고로 대체되며 재원 마련이 더 어려워진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유료방송 시장에서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 갈등도 지속하고 있다. 한정된 파이를 두고 양측이 각자의 이익을 챙겨야 하다 보니 콘텐츠 대가 산정을 두고 필연적으로 갈등이 발생한다. 극단적인 경우 블랙 아웃(채널 송출 중단)도 벌어지고 있다.

결국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ARPU를 현실화하면서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 거래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게 김 위원 주장이다. 뚜렷한 협상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 협의가 공회전을 도는 만큼, PP 평가 기준을 마련해 수익 배분의 근거를 둬야 한다는 내용도 더했다.

그는 "문제 해결의 가장 근본은 ARPU 정상화다. 시장에 유입되는 자원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합리적인 대가 산정 기준이 아직 없다. 자율 규제 원칙에서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의 분쟁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 기준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IPTV 사업자의 콘텐츠 사용료 분담 의지를 높여야 한다는 과제도 내놨다. 플랫폼 사업자 수익성 대비 PP 수익성이 크게 낮은데, 매출 규모에서 케이블TV 사업자 대비 수익이 높은 IPTV 업계가 시장 생태계 개선을 위해 수익 부담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다.

이때 콘텐츠 사업자의 투자 회수율 지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게 김 위원 설명이다. 콘텐츠 투자 회수율을 높여야 양질의 콘텐츠가 생산돼 유료방송 시장 성장의 토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정도 수준의 ARPU가 적정한지는 당장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콘텐츠 사업자의 투자 회수율이 지금보다는 두 배가 돼야 한다"며 "그래야 내놓은 콘텐츠가 실패하더라도 재투자해 새로운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이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 상생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홍익표TV 유튜브 갈무리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이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 간 상생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홍익표TV 유튜브 갈무리
정부, 협의체 통해 유료방송 시장 생태계 개선 의지 드러내
ARPU 개선 위해서는 소비자 설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정부는 이번 세미나에서 마련된 종합토론을 통해 국내 유료방송 시장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배중섭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방송기반국장은 "정부가 큰 생태계를 바라보는 차원에서 저가 요금 구조 개선, 콘텐츠 세액 공제, 채널 편성 정책 개선, 자율 계약 등의 개별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본다"며 "유료방송 소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잘 협력해서 전체 생태계를 성장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 대가 산정의 경우 올해 2월부터 방통위와 과기정통부가 합해서 사업자와 시장 관계자, 전문가를 모아 콘텐츠 대가산정 협의회를 진행 중에 있다"며 "조만간 협의회에서 실무적인 초안을 내놓으면 최종안을 만들어 공청회 등을 통해 다듬어나갈 생각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오용수 과기정통부 방송진흥정책관(국장)은 자율 규제 추진의 경우 유료방송 시장의 신뢰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오 국장은 "자율 규제를 정착하려면 행정부가 유료방송 시장을 신뢰할 수 있을지, 유료방송 시장이 미디어 복지 또는 시청자 편익을 제공하는지 분명히 확인돼야 한다"며 "시장이 스스로 자정 능력이 있을지, 시장이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합의(컨센서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를 대표해 종합토론에 참여한 한석현 서울YMCA 시청자시민본부 팀장은 ARPU 인상 과정에서 시청자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더했다.

한 팀장은 "결국 시청자가 내는 돈에서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다면, 시청자를 설득해야 한다. 시청자에게 충분한 명분을 제공한다면 수신료를 올리는 것에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진 않을 것이다"라며 "플랫폼 사업자별로 차별성을 위한 사업 계획이나 비전을 제시하면서 ARPU 개선에 집중해 연구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