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내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저자는 없다. 저자뿐이 아니다. 그런 사정은 출판사도 마찬가지. 일선 서점에 내보낸 책이 반품으로 돌아오는 양을 토대로 판매량을 추정할 뿐 정확한 판매량은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반품이 적시에 제대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수년 넘게 서점 창고에 방치돼 수치에 잡히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물론 시중 판매량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대형서점의 판매통계시스템(SCM)으로 전체 판매량을 가늠할 순 있다. 다만 나머지 30%를 보완할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래서 고안된 도구가 출판유통통합전산망(통전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8년부터 예산 45억원을 들여 만들었는데, 도서 메타데이터의 입력 및 관리, 판매통계·재고현황 등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내년에는 추가로 15억원을 들여 온라인 수·발주 관리 기능에 신간 보도자료 기능을 마련하고 카탈로그 자동 생성기를 통해 도서의 홍보자료를 원하는 곳에 메일로 일괄 발송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계획대로만 이뤄진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없다. 출판 통계 시스템은 출판 업계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주먹구구'식이던 출판 판매 통계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니 출판사와 작가 사이의 불신도 해결되고 유의미한 통계데이터가 구축돼 출판사업 육성 계획을 수립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작을 앞두고 문체부와 출판문화협회가 쳠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운영권을 누가 가지고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서다.

먼저 문체부는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진행한 사업이니만큼 정부(출판문화산업진흥원)가 운영권을 가져가는 게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더구나 최근 출판계에서 인세를 속여 지급하는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정부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에 힘이 실린다.

반면 출판계 입장을 대변하는 출협은 자신들이 운영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시스템 마련을 최초로 제안한 주체가 본인들이며, 중국 등 일부 공산 국가를 제외하고 민주국가에서 통전망 운영권을 정부가 가져간 사례가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과거 문체부가 블랙리스트와 도서정가제(일부 폐지) 문제 등으로 출판계를 통제하려 들었다는 점에서 향후 정부가 통전망을 악용해 출판계 길들이기에 나서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출판계가 제시한 근거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출협은 일본, 독일, 캐나다 등을 예로 들면서 정부가 출판 통계 시스템을 운영한 사례가 없다고 했으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해당 국가들의 경우 출판을 진흥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같은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출판 통계 시스템 역시 국가 예산이 아닌 민간 자본이 투입돼 만들어진 것이기에 당연히 민간에서 운영권을 가져간다. 국내와 단일 비교하기에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출판계 입장에서 통전망은 어쩌면 계륵과도 같다. 있으면 분명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반대로 자신의 속살, 다시 말해 초라한 판매수치가 그대로 드러나 체면이 깎이는 것도 문제고, 그 외에 ‘투명 지갑' 신세도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통전망은 지난 2일 임시 시행을 시작해 오는 29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에 반발해 출협은 자체적인 도서판매정보 공유시스템을 가동 중에 있다. 흑묘든 백묘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지만, 그보다 최선은 흑묘와 백묘가 힘을 합치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문체부 내에서 3년간 진흥원에서 통전망의 운영권을 갖고 이후 단계적으로 출판계에 운영권을 위임하는 내용이 고려되고 있다는 점이다. 온전한 통전망 가동을 위해서는 출판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제는 출판계가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때이다.

서믿음 기자 mese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