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업계 사업 분할이 유행처럼 번진다. LG화학은 지난해 10월, SK이노베이션은 올해 9월 16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배터리 사업부 물적 분할 절차를 완료했다.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과 일부 개인주주가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지만, 결정을 막은 이변은 없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분사를 계기로 배터리 성장 재원 마련을 위한 외부 투자 유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도 "사업 전문성과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결정이다"라고 평가했다.

배터리 업계는 SK배터리주식회사(가칭)가 2025년까지 생산능력을 5배 이상 확장하려면 10조원 이상의 투자 재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체 보유한 현금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SK배터리가 가까운 시일 내 IPO(기업상장)를 통한 실탄 마련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하지만 16일 SK이노베이션의 주가는 전일 대비 4.44% 하락했다. 15일 3.12% 내린데 이어 재차 하락하며 이틀 만에 1조8000억원 규모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물적분할이 SK그룹의 배터리 사업 성장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SK배터리가 IPO에 나설 경우 SK이노베이션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배터리 물적분할에 대한 부정적 여파는 삼성SDI로도 번진다. 삼성SDI가 중장기적으로 배터리 사업 부문 분리 방안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최근 나왔다. 삼성SDI는 곧장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전일 대비 주가가 3.33% 하락하는 후폭풍을 맞아야 했다.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는 배터리 산업이 주주와 함께 성장하려면 기업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주주가치 제고 방안이다.

LG화학은 지난해 10월 분할 신설 법인 LG에너지솔루션 설립 추진과 동시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배당 정책 계획을 내놨다. 연결재무제표 당기순이익 기준 배당 성향 30% 이상을 지향하고, 향후 3년간 보통주 1주당 최소 1만원 이상의 현금 배당을 추진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도 물적분할과 IPO 과정에서 주식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기존 주주들의 불만을 달랠 것으로 관측된다. 16일 주총에서는 주주 이익배당을 금전 외 주식과 기타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 변경 안건이 통과됐다. 이를 통해 기존 주주들도 금전 배당 외 자회사 주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물적 분할은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택한 전략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도 기업의 몫이다.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분할을 통해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명확히 강조한 만큼 주주환원 계획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장기적 주주가치 제고 없이 기존 주주들의 신뢰를 잃어버린다면 회사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김준 총괄사장은 주주들에게 유리한 방향을 보면서 IPO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주주환원정책 방향도 빠르면 올해 말 밝힐 계획이다. 배터리 기업의 물적분할이 그동안의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내고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선택으로 자리잡길 기대한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