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동산개발업체 헝다그룹(에버그란데)의 파산설이 K배터리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전기차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온 헝다의 흥망성쇠에 따라 중국 시장에 진출한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K배터리 기업이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배터리 분야 핵심 인력이라고 평가받던 인사들이 대거 헝다그룹으로 이직했었는데, 이들 역시 실직 가능성이 있다.

23일 외신 등에 따르면, 헝다는 22일 긴급성명을 통해 "2025년 9월 만기 채권에 대한 이자 425억원을 23일에 예정대로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헝다는 29일 4500만달러(533억원) 등 연말까지 이자로만 6억8000만달러(7909억원)를 결제해야 한다. 내년부터는 원금까지 상환해야 해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2020년 12월 이준수 헝다 글로벌 배터리연구원장(왼쪽)과 쉬 자인 헝다 회장이 악수를 하는 모습 / 헝다그룹
2020년 12월 이준수 헝다 글로벌 배터리연구원장(왼쪽)과 쉬 자인 헝다 회장이 악수를 하는 모습 / 헝다그룹
헝다는 2019년 전기차업체 헝다자동차를 설립해 그룹 차원에서 3000억위안(54조원) 이상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부터 연 50만대를 생산해 2025년 세계 최대 전기차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하지만 헝다자동차는 기술 획득과 배터리 연구개발 비용으로 271억위안(4조9100억원)을 쓰면서도 아직까지 차 한 대 조차 생산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헝다자동차는 쉬 자인 회장이 방문한 글로벌 배터리연구원을 공개하며 이준수 연구원장(전 현대모비스 전무), 김상범 부원장(전 SK이노베이션 배터리기술 총괄) 등 한국 출신 인력의 면면을 소개하며 국내 배터리 업계를 깜짝놀래켰다. 배터리연구소 직원 800명 중 상당수는 K배터리 3사 출신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업계는 헝다그룹의 파산으로 헝다자동차의 전기차 사업이 고꾸라지더라도 K배터리 기업에 악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 이들 기업이 헝다자동차와 협업에 나선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헝다자동차는 6월 자국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과 전기차 충전소, 배터리 교체소 등 인프라 공동 건설은 물론 전기차 개발 부문에서 협력하는 전략적 제휴를 맺은 바 있다.

헝다의 파산은 오히려 테슬라, 베이징자동차 등과 손잡고 중국 시장에 진출한 K배터리에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생산량 확대를 통해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 글로벌 완성차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며 "중국 내수시장에서 잠재적 경쟁기업인 헝다의 몰락은 상대적으로 K배터리의 영향력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헝다자동차에 그동안 수주를 했던 국내 2차전지 장비 협력사의 경우 대금 회수에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15년 10월 난징 1공장을 설립하며 중국 배터리 시장에 진출했다. 올해 5월 2공장을 준공하며 테슬라의 중국향 모델3·모델Y 등에 공급하는 배터리 생산량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1위 완성차인 지리자동차와도 합작법인을 설립해 지리자동차가 투자한 볼보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를 생산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옌청 공장을 후이저우 공장과 함께 중국 배터리 업체 EVE에너지와 합작했다. 창저우 공장은 베이징자동차와 합작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옌청공장 생산능력을 32GWh(기가와트시) 규모로 키워 중국 내 전체 배터리 생산량을 50GWh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헝다 파산으로 중국 전기차 시장 자체가 위축돼, 시장에 진출한 국내 배터리 기업도 단기 영향을 받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2035년까지 신에너지차 판매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이를 대체할 만한 기업이 많아 장기적으로 전기차 시장 자체가 위축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헝다가 빼간 배터리 핵심인력이 갈길을 잃고 국내 복귀를 타진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미래가 불투명한 중국 기업으로 이직을 최소화 하는 기업의 유인책은 물론, 정부의 인력 양성 및 처우 개선책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