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파트 스마트홈 '망분리'는 선택 아닌 필수

류은주 기자
입력 2021.09.28 06:00
몇년 전 집들이를 초청한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문밖을 나서기 전 엘리베이터를 미리 불러주는 ‘월패드(인터폰)'를 보고 신문물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신기하다고 표현하면 ‘도시 문화를 모르는 사람(이른바 촌사람)’이라고 놀림을 받을까봐 마음을 다 드러내지는 않았다. 신축 아파트 대부분이 스마트홈 기능을 내장된 월패드를 기본으로 장착해 참 편리한 세상을 만들었다.

월패드 하나만 있으면 집 밖에서도 원격으로 가정 내 조명과 가전제품은 물론 냉난방기와 환기시설 등 다양한 제품을 제어할 수 있다. 가전과 가구 등에 탑재된 인공지능(AI) 기술과 사물인터넷(IoT) 기술 덕분이다.

요즘 우리 생활은 언제 어디서나 택배조회는 물론 차량위치 확인 등 과거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미래 주거상에 맞아 떨어진다. 특히 코로나19로 디지털·비대면 환경이 일상화되면서 스마트홈 시장 확산이 더욱 탄력을 받는다. 한국스마트홈산업협회에 따르면, 2020년 국내 스마트홈 시장 규모는 78조2837억원으로 전년(70조9398억원) 대비 10.4% 성장했다. 올해는 85조7048억원 규모에 달한다. 스마트홈은 그야말로 대세 중 대세다.

하지만 편리한 것이 능사는 아니다. 신경쓰이는 것은 바로 ‘보안' 문제다. 스마트홈 수요와 공급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반면, 세대 간 망분리 대책은 수년째 제자리걸음 중이다. 최근 정부는 아파트 해킹을 막기 위한 행정규칙 제정을 추진하지만, 업계 반발로 고충이 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8월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 및 기술 기준'에 보안 규정을 추가하는 고시 개정에 나섰다. 과기정통부 개정안에는 30가구 이상 공동주택이 홈네트워크 설비를 구축하면 월패드 망 분리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담긴다. 사이버 보안 위협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월패드 제조 업체와 스마트홈산업협회 등은 집집마다 망 분리를 의무화하는 것이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을 펼친다. 다양한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처럼 아파트 홈네트워크 해킹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수백가구가 밀집해 있는 아파트 단지가 범죄자에게 해킹을 당했을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 CCTV가 유출될 수 있고, 가정 내 전자제품 컨트롤 권한을 빼앗길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커가 가스 불을 임의로 조절할 경우 화재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법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보안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질까 봐 해킹 피해에 대해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사도 비용 증가을 핑계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가 고시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서는 적당한 타협보다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우린 2019년 KT 아현국사 화재 이후 통신재난을 겪은 후 통신망 이원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바 있다. 해킹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발생한 후 망 분리를 논하는 것은 사후약방문이다.

사람 생명의 무게는 돈과 저울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보안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채 성장한 스마트홈 시장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위태할 수 있다.

월패드 망 분리는 단기적인 비용 측면에서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 좋은 레퍼런스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선투자 후 해외 진출이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스마트홈 시장이 단단한 보안체계를 기반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 우뚝 서기 위해는 홈네트워크 망 분리 의무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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