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SpaceX)의 기술혁신과 도전
"화성 이주 계획 달성을 위해 로켓 제작비용을 줄여라!"


화성에 사람들을 이주시키자는 결론을 설정한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주 계획 달성에 필요한 문제해결 리스트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 리스트의 가장 상위에 놓인 건 바로 로켓의 기술적 성능과 더불어 개발에 투입되는 과도한 비용의 문제 해결이다.

독학으로 우주공학을 공부한 일론 머스크는 로켓 제작에 필요한 소재를 이전보다 더 가볍고 강하게 만들 수 있도록 알루미늄 합금에 티타늄, 동, 그리고 탄소섬유를 일정 비율로 혼합하기로 했다. 그리고 재료의 시장 가격을 조사해 보니, 로켓 제작에 필요한 재료비가 전체 개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타 제조산업의 재료비 비중보다 훨씬 낮았다. 이는 곧 로켓 제작에 투입되는 비용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시장에서의 블루오션을 본 것이다.

나사(NASA)와 보잉의 협업으로 제작된 델타4호(Delta IV)는 개발비 25억달러(약 3조원)와 발사비 1억5000만달러(약 1800억원)라는 엄청난 비용이 투입됐다. 일론 머스크는 "그렇다면 기존 비용의 10분의 1로 로켓을 쏴 올리겠다"는 당찬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제까지 우주산업이라는 분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자금이 필요했다. 또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하며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없이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엄청 높은 진입장벽을 가진 산업 분야였다. 벤처 회사가 시작할 분야가 아니라는 얘기다.

스페이스X는 이 세 가지 가운데 그 무엇도 갖고 있지 않았다. 무모를 넘어 바보스러운 시작이라는 의미였다. 주변의 많은 이들은 "일론 머스크가 재산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을 생각했다"며 그의 무모함을 비웃었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과 확실한 목표의식에 기반한 신념으로 뭉친 일론 머스크와 직원들은 ‘팰컨 1호(Falcon 1)’ 개발에 착수했다.

스페이스X는 우여곡절을 거쳐 회사 설립 6년 만에 민간기업 최초로 액체연료 로켓을 지구 궤도에 쏘아 올렸다. 이를 시작으로 우주산업에서 엄청나고 새로운 ‘최초’라는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는 ‘더 빠르게, 더 싸게, 그리고 재활용할 수 있게’라는 신념에 찬 슬로건으로 무장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는 모두가 그의 생각과 행동에 주목하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말고(Don’t Panic) 화성으로 가자(Head to Mars)!

일론 머스크는 "인류는 화성을 비롯한 태양계의 여러 행성을 오가는 다행성 거주종(Multiplanetary Species)이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실행에 옮겨가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앱 경제 시스템을 만들고 사회를 변화 시켰듯이 일론 머스크는 우주개발에 필요한 기술의 혁신을 이뤄냈다. 로켓 발사체 재활용과 범용화 기술개발을 통해 새로운 우주경제 시스템을 만들어 우주산업의 지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상업·군사적으로 새로운 개척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우주는 인류의 마지막 투자처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급부상하고 있다. 우주개발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우주에서의 확장 가능한 사업 영역들이 늘어나며 참여 기업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우주산업이 여러 산업군으로 연계 확장되면서 그 시장 규모가 현재의 약 4000억달러(약 480조원)에서 2040년엔 1조달러(약 1200조원)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마치 1995년 이후 인터넷이 전 산업 분야에 영향을 미치며 동반 성장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우주라는 공간이 다양한 산업의 기초구조가 되어 발전을 견인할 것임을 의미한다. 우주가 더는 미지의 세계가 아닌 ‘우리의 세계"에 편입되어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일상의 공간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18년 2월 6일 오후 3시 45분(미 동부시간, 한국 시각 2월 7일 오전 5시 45분) 스페이스X의 지구 최강 로켓 팰컨 헤비(Falcon Heavy)가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 케네디우주센터 39A 발사대에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10, 9, ...., 3, 2, 1 발사!" 엄청난 굉음, 화염 그리고 연기를 일으키며 화성을 향한 첫 출발이 시작되었다.

일론 머스크가 몰던 테슬라의 빨간색 전기차 로드스터에 스페이스X가 개발한 우주복을 입은 마네킹 ‘스타맨(Starman)’이 핸들을 잡고 탑승했다. 이 로드스터의 대시 보드에는 일론 머스크가 인생의 항로를 설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책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첫머리에 나오는 ‘당황하지 말라(Don’t panic)’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아마도 일론 머스크는 자신이 이 차를 타고 우주로 날아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로드스터를 실은 우주선은 초속 11km의 속도로 지구에서 4억km 떨어진 우주 공간을 날아가 태양의 궤도를 돌면서 화성과 주기적으로 만날 것이고, 가능하다면 화성 궤도를 벗어나 더 먼 곳으로 날아갈 수도 있다. 이로써 괴짜 천재 일론 머스크의 오랜 꿈인 화성 개척과 이주가 그저 한낱 망상이 아닌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한발 다가섰다.

동시에 스페이스X가 어떤 물체를 화성까지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도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론 머스크는 발사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일은 나한테도 비현실적이라 여전히 지금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어쩌면 바보 같고 웃긴 일이다. 하지만 바보 같고 웃긴 것들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 속엔 모두가 공상이라고 말하던 것을 현실로 만들어 낸 자신에 대한 칭찬과 감동 그리고 미래에 대한 더 확실한 꿈을 향한 도전이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가 복합적으로 포함된 것이 아닐까?

팰컨 헤비 발사 성공 이후 스페이스X는 또 다른 도전을 시도했다. 민간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다. 2020년 5월 30일(현지시각)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공군기지 케네디우주센터, NASA 우주비행사 더그 헐리와 밥 벤켄을 태운 새로운 캡슐인 크루 드래건(Crew Dragon)이 팰콘9에 실려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NASA에서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종료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땅에서 쏘아 올린 유인 우주선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더불어 스페이스X의 첫 번째 유인 우주선이며,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화성 유인 탐사와 인간 이주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동시에 시험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민간 우주선 발사 서비스라는 새로운 우주 비행의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징성에 부합하듯 이날 발사장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부 고위 관료들이 참석해 그 중요성이 더 강조됐다.

거대 공룡과 마주한 벤처의 혁신과 기회

미국은 우주개발 종주국으로 인류의 우주 개발 개척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은 GDP 대비 우주개발에 투입하는 예산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는 미국 역대 대통령의 공통된 우주 정책에 대한 열정에 기반한다. 취임과 동시에 자신의 임기 내에 어떤 우주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를 발표하는 것만 봐도 국가 차원에서 거시적 아젠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우주개발 주요 관점은 개발의 지속가능성, 안정성, 우주로의 자유로운 접근과 사용을 통한 국가 이익의 극대화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며 미국은 제2세대 우주 시대를 대비한 정책적 변화를 추구했다. 1950년대부터 20세기 말까지의 제1세대 우주 시대는 비용보다는 기술적 완성도에 초점을 맞췄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우주개발 투자에 대한 방향과 고려사항이 우주개발 예산의 효율성, 비용대비 편익 증대, 고용 창출 등으로 변경됐다.

미국 정부는 2011년 달 궤도 거리(38만 4000km) 이내의 지구 저궤도 우주 진출에 필요한 자체 연구인 ‘별자리 우주 계획’을 전면 중단했다. 미국 정부는 화성 유인 탐사와 같은 고난도 개척 임무에 집중하는 대신, 지구 저궤도 우주개발은 민간기업에 일임하는 정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민간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는 우주개발에 민간기업들의 경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이전 정책은 보잉을 비롯한 몇몇 대형 군수업체와 NASA의 독점체계로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기술개발의 경제적 측면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며 미국 정부의 우주 정책은 우주개발을 위해 민간기업과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이는 정부 주도의 우주개발을 통한 예산 낭비와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NASA의 예산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기술 다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변화는 장기적 측면에서 앞으로 치열한 격전지가 될 우주개발 산업에 자국 민간기업의 경쟁력을 증진해 우주 산업시장 선점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런 정책변화는 일정 기간 기술 부재에 따른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6개월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을 왕래해야 하는 미국 과학자와 3개월마다 보급해야 할 물자를 수송하는 자체 기술을 잃었다.

미국 정부는 정부 주도의 자체 기술개발과 유지에 필요한 비용대비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 계획을 취소하고 민간기업에 그 역할을 주문했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우주산업 경쟁국인 러시아의 우주선 소유즈를 1회에 1000억원이라는 비싼 임대료를 지급하며 사용해 왔다. 그러나 스페이스X의 민간 유인 우주선 발사 성공을 계기로 9년 만에 기술 부재로 인한 손해를 만회하고 다시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게 되었다.

스페이스X는 2005년 11월 팰콘 1호의 첫 발사 실패 이후 여러 번에 걸친 발사 실패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결국 2008년 팰콘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는 동안에도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 직원들은 팰콘 9호와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건 개발을 병행했다.

2002년 스페이스X 창업 후 2006년까지 일론 머스크는 회사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 자본을 투자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 왔다. NASA에서 대형 프로젝트들이 시차를 두고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기회인 동시에 기존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거대 공룡 방위산업 기업들과의 전면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2006년 미국 정부는 저궤도 로켓 발사와 우주정거장으로 물자 수송을 민간기업이 전담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자금 지원에 나섰다. 같은해 1월 NASA는 상업용 궤도 운송 서비스(COTS: Commercial Orbital Transportation Service)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는 NASA의 유·무인 우주선 계획으로 우주정거장에 필요한 물자를 수송할 무인 화물선과 유인 우주선 계획이다. 스페이스X의 팰컨 9호는 이 프로젝트를 NASA와의 계약을 통해 수주하게 되었다. 이 계약의 체결로 그동안 자금난에 어려움을 겪던 스페이스X는 총 2억7800만달러(약 3336억원)라는 큰 금액을 수혈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스페이스X는 2008년엔 NASA와 상업용 재보급 서비스(CRS: Commercial Resupply Service) 계약을 16억달러(약 1조9000억원)에 체결했다. CRS 프로젝트는 우주정거장으로 물자를 보급하는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의 최종 선정 기업과 기종은 스페이스X의 드래곤 V2, 노스럽 그루먼의 시그너스(Cygnus), 시에라 네바다 코펴레이션의 드림 체이서(Dream Chaser)였다. 스페이스X는 우주개발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그 기술력과 개발 경쟁력을 부각하기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와 스페이스X는 기존 경쟁업체인 거대 방위산업체와는 다르게 NASA와 미군 쪽에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이전까지의 관행이었다면, 수주에 참여는 고사하고 입찰의 자격도 얻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우주개발 정책의 변화는 스페이스X와 같은 신생 벤처기업에도 참여 가능성을 활짝 열어주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그동안 새로운 혁신적 기술력을 발전시킨 스페이스X에 날개가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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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천 Global ICT Lab 소장은 미국 오하이오대학(Ohio University)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광고/PR 부전공)를, 뉴욕주립대 버펄로(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사이버대학교 융합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빅데이터와 네트워크 분석 그리고 뉴미디어를 교육하고 연구했다. Global ICT 연구소를 개소해 빅데이터를 포함한 정보통신 기술, 산업, 정책 등의 연구, 자문 업무, 그리고 저술 활동을 진행한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한국전기공사협회 남북전기협력추진위원회 자문위원, 국회 산하 사단법인 국방안보포럼 국방 ICT 위원장, 용산학포럼 연구위원, 국회 산하 사단법인 K-정책 플랫폼 신산업 연구위원,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블록체인의 사회 확산과 발전, 남북전기 교류의 발전, 국방산업의 발전, 용산미군기지 이전 후 공원화 사업의 발전, 대한민국 중·장기 신산업정책 제안과 발전 전략 연구, ICT를 접목한 미래 경영전략 교육 등을 위해 노력한다. 저서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전략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다룬 ≪크라이시스 커뮤니케이션(Crisis Communication)≫ (새녘출판사), ICT가 적용된 미래 무기체계의 변화와 미래 전쟁을 다룬 ≪모던 워페어(Modern Warfare)≫ (메디치미디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