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파운드리 사업 전망이 어둡다. ‘중국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순조롭게 인텔의 낸드 분야 인수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미국과 대립각을 세운 중국발 ‘몽니’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사업부를 인수하려면 총 8개국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중국이 거부할 경우 계약이 틀어질 수 있다.

12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020년 10월 20일 인텔 낸드사업부를 90억달러(10조3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다음 주로 1년을 맞이했지만, 인수합병의 첫 관문인 경쟁당국 기업결합 승인 심사에서 중국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인텔 중국 다롄 공장 전경  / 인텔
인텔 중국 다롄 공장 전경 / 인텔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를 위해서는 심사 대상 8개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현재 7개국(미국·EU·한국·대만·브라질·영국·싱가포르)이 승인했고 중국만 남았다.

중국 당국의 승인이 이뤄지지 않아 M&A 거래가 성사되지 못한 경우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3월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일본 반도체 기업 고쿠사이일렉트릭이 체결한 22억달러(2조5000억원) 규모의 M&A가 9개월 심사 지연 끝에 무산된 것이 대표 사례다.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시점에 M&A 계획을 발표한 AMD의 자일링스 인수도 여전히 심사를 진행 중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반독점 심사 기간이 유독 오래 걸리는 것은 중국이 반도체 M&A로 자국 기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따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최근 한국이 미국과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뜻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어깃장을 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연내 규제 승인을 마치면 1차로 70억달러를 인텔에 지급하고 인텔의 낸드 SSD 사업(SSD 관련 IP 및 인력 등)과 중국 다롄 공장 자산을 자사로 이전할 계획이다. 2025년 3월에 나머지 20억달러를 인텔에 추가 지급하고 인텔의 낸드플래시 웨이퍼 설계와 생산 관련 IP, R&D 인력 및 다롄팹 운영 인력 등 잔여 자산을 넘겨받는다.

하지만 중국의 심사가 올해를 넘기면 이같은 계획이 순연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생산량을 두배 확대하겠다는 당초 계획도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가 중국 승인 문턱을 넘지 못한 상황에서 파운드리 M&A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부담스러운 입장이어서다.

SK하이닉스 이천 M16 조감도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이천 M16 조감도 / SK하이닉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5월 경기도 평택캠퍼스에서 열린 ‘K-반도체 벨트 전략 보고대회’에서 "현재 대비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두배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조만간 키파운드리 인수 또는 공격적 지분 인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사업은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IC(시스템IC)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비중은 미미하다. 2020년 매출액은 7030억원으로, 전체 매출 대비 2%쯤에 불과하다. 반면 메모리인 D램 매출은 22조5000억원(70.6%), 낸드플래시는 7조5000억원(23.4%)을 차지한다.

파운드리 투자가 늦어지는 동안 D램과 낸드플래시, 파운드리의 사업 비중 불균형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 계산상으론 생산능력을 확대한 SK하이닉스의 파운드리 매출이 2%에서 4%쯤으로 커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메모리 투자 및 생산능력도 동시에 확대하고 있어 실제 파운드리 매출 비중은 달라질 게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당장 3조5000억원을 투자한 이천 M16 공장에서 D램 양산을 본격화 하고 있어 올해 파운드리 매출 비중은 더 쪼그라 들 것이 유력하다.

SK하이닉스는 연내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아 이같은 우려를 해소할 것으로 기대한다. 장쑤성 우시에 대규모 D램 공장을 건설했고,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IC의 충북 청주 팹 파운드리 설비를 우시 공장으로 이전하는 등 자국에 이익이 되는 투자도 잇따르고 있어 중국이 반대할 명분도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당초 인텔 낸드 사업 인수 관련 경쟁당국의 승인 완료 시점을 연내까지로 잡고 내년부터 후속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었기 때문에 다급한 입장은 아니다"라며 "중국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 심사가 마지막 단계에 넘어간 상태로 연내 M&A에 필요한 승인을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