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코인 거래소, 매몰비용 감수 전방위 투자 확대

조아라 기자
입력 2021.10.18 06:00
9월 특정금융법(이하 특금법) 실행으로 인해 가상자산 원화마켓을 닫으면서 보릿고개가 시작된 국내 중소 가상자산 거래소(이하 거래소)가 실적 하락에도 자금세탁방지(AML) 강화를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특금법 상 원화마켓 개설 요건인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실명계좌)을 발급받기 위해서다. 국내 은행권이 실명계좌에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자칫 매몰비용이 될 수도 있지만 생존을 목표로 두고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실명계좌 발급 가능성 0%~12%…‘생존 비용’ 베팅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및 영업현황 점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가상자산 마켓 사업자로 신고한 거래소는 25곳이다. IT조선이 금융당국 복수의 관계자에 확인한 결과 당분간 실명계좌를 발급받을 수 있는 거래소는 없거나 많아야 3곳 정도에 불과할 전망이다.

결국 가상자산 마켓을 운영하는 거래소 중 원화마켓을 열 수 있는 곳은 최대 12%에 그친다는 얘기다. 다만 은행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구축한 사업자가 많을 경우 실명계좌 발급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다.

이들 거래소는 원화마켓 폐쇄로 거래량이 90% 가량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실명계좌 발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투자 규모를 늘리는 상황이다. 정부가 어느 수준으로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아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수익이 크게 쪼그라든 와중에도 비용을 늘리면서 ‘버티기 모드’에 돌입한 것다.

만약 보유한 자산이 모두 고갈될 때까지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해 폐업할 경우 투자금은 모두 매몰비용이 된다. 매몰비용이란 더 이상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거래소들은 혹시 모를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신사업 등 사업 다각화를 검토 중이다.

고팍스, 고객 서비스 강화 위해 수수료 무료...임직원 준법감시 역량 향상 주력

실명계좌 발급이 가장 유력한 거래소로 꼽혔던 고팍스는 수수료 무료 정책으로 유저풀을 묶어두는 동시에 임직원의 준법감시 역량을 향상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보안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대규모 설비투자와 고급 인재 영입에 자금을 쏟은 고팍스는 설립 후 3년 동안 영업적자를 기록해왔다. 앞으로도 이같이 ‘수익보다 보안’ 기조를 유지할 예정이다.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영하면서도 보안과 자금세탁방지 분야에 점진적으로 투자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고팍스는 총 14명의 자금세탁방지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국내 자금세탁방지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회사 지원으로 전원 자금세탁방지전문가 자격증(CAMS)을 취득했다. 고팍스는 실명계좌를 발급받고 원화마켓을 재개할 때까지 자체 콘텐츠를 강화할 계획이다. 우선 지난달 25일 운영을 시작한 비트코인(BTC) 마켓의 서비스와 서버를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김현수 고팍스 팀장은 "원화마켓을 안전하게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기간을 확보하고 있다"며 "모든 사업자의 주요이슈는 자금세탁방지 인력을 어떻게 구성하고 준비하는 지에 초점이 맞췄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콘텐츠를 준비해야 한다. 이는 내재자원과 인력풀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는 지에 달렸다"며 "내재자원은 자본력에 좌우된다. 자본이 뒷받침되면 인재를 영입할 수 있다. 내재자원의 유출이 크지 않다면 신사업 확장 등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준행 고팍스 대표는 지난 14일 내놓은 경영보고서를 통해 "기나긴 여행의 시작에 앞서 과속방지턱을 넘는 중이라 생각하고 이용자 보호와 가상자산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더욱 정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특금법 맞춤 에이프로빗, NFT·메타버스 신사업 계획

신고수리를 앞두고 일찌감치 대규모 인력 채용에 나선 에이프로빗은 최근 람다256으로부터 가상자산 송수신자의 고객정보를 확인하는 트래블룰 솔루션을 도입했다. 에이프로빗은 지난 3월 25일 특금법 시행 이후에 설립된 거래소다.

애초에 수익을 기대하지 않고 출범했다는 게 다른 사업자와 차이점이다. 오로지 특금법에 맞춰 사업을 운영했기 때문에 불법 여지가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거론된다. 에이프로빗은 비트코인 마켓을 운영하면서 대체불가능토큰(NFT)와 메타버스 등 분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김병준 에이프로빗 대표는 "자금운용이 부담이지만 특금법 발표 이후 설립한 만큼 장기적인 운영을 예상하고 계획을 수립했다"며 "고객알기제도(KYC), 트래블룰, 의심거래제도(STR), 고액현금거래 보고제도(CTR) 등 업무 전문화, 그리고 원화마켓 준비를 위한 인력을 확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어닥스, 대표 자본 투여하며 대규모 채용

코어닥스도 거래소 내실을 강화하는 한편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대규모 채용 공지를 냈다. 기술본부, 운영본부, 경영관리본부, 준법감시실, 정보보호실을 포함한 전 부서에서 총 53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임요송 코어닥스 대표는 "지난달 23일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접수를 완료한 후 실명계좌 발급뿐 아니라 거래소 앱 리뉴얼, 자금세탁방지 시스템 구축, 거래소 보안 강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채용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가상자산 마켓으로 전환한 후 회사 운영을 하면서 필요한 부분은 대표이사의 자본 투여를 통해 충족해 나가고 있으며 거래소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후오비코리아 교육 강화·임직원 사기진작 총력

후오비 코리아는 최근 준법감시 인력을 충원하는 동시에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보안 강화 교육을 실시했다. 특히 임직원 사기 진작에 신경쓰는 분위기다.

박시덕 후오비 코리아 대표는 "최근 자금세탁방지 인력을 늘렸다"며 "신고 접수를 마친 모든 거래소가 실명계좌 하나 보고 투자를 늘리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반기에 발생한 매출을 운용자금으로 쓰고 있다"면서 "자금 문제는 차치하고 준법감시를 강화해 원화마켓을 열 때까지 잘 버티는 게 목표다"라고 덧붙였다.

프로비트, 블록체인 인력보강·ANL 고도화

프로비트는 고객 확인제도를 강화한 후 블록체인 분야 인력 보강에 나섰다. 아울러 자금세탁방지팀을 7개 부서로 세분화하고 이에 따라 시스템을 고도화했다. 현재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과 자금세탁방지 솔루션 구축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도현수 프로비트 대표는 "실명계좌를 받을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며 "초기 출자금과 엔젤투자, 그동안 발생한 매출로 사업을 운영할 계획이다. 투자도 지속 유치하고 있어 자금 확보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자신했다. 이어 "원화마켓을 닫고 수익이 매우 줄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비트코인 마켓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도 강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T조선 뉴스레터 를 받아보세요! - 구독신청하기
매일 IT조선 뉴스를 받아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