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세계 4위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의 손을 잡는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에 이어 삼성SDI도 뒤늦게 미국행에 합류하면서 북미 시장에서 K배터리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게 됐다. 테슬라(파나소닉)를 제외한 미 전기차 대부분에 한국 기업 배터리가 탑재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K배터리 3사가 미국에서 앞다퉈 합작법인 설립에 나선 배경은 2020년 7월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 따른 관세정책 변경이 있다. 미국 내 완성차업체들은 USMCA 협정에 따라 2025년 7월부터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부품 비중을 75%까지 늘려야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관세 특혜를 받으려면 자동차 생산과정에 필요한 주요 소재부품 대부분을 북미 지역, 특히 미국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 / 이광영 기자
전영현 삼성SDI 사장 / 이광영 기자
1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와 스텔란티스는 미국 합작법인(JV)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최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텔란티스로서는 18일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국내 배터리 기업과 두 번째 합작사 설립이다.

스텔란티스는 이탈리아와 미국이 합작한 자동차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 자동차업체 ‘푸조시트로엥(PSA)’이 합병해 올해 1월 출범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다. 크라이슬러·피아트·마세라티·지프·시트로엥 등의 브랜드를 두고 있으며 미국 내 전기차 판매 순위는 3위다. 7월 그룹의 미래 전동화 비전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전기차 전환에 41조원(300억유로)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스텔란티스가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삼성SDI의 손까지 잡은 이유는 배터리 폼팩터(형태)를 파우치형, 각형 등 투트랙으로 가져가기로 해서다. 스텔란티스는 7월 비전 발표에서도 전기차에 각형과 파우치형을 혼용해 전기차에 탑재할 계획을 밝혔다. 파우치형은 LG에너지솔루션이, 각형은 삼성SDI가 나눠 납품하게 된 셈이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가 7월 8일(현지시각) 화상으로 진행한 ‘EV 데이 2021’에서 전기차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스텔란티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가 7월 8일(현지시각) 화상으로 진행한 ‘EV 데이 2021’에서 전기차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스텔란티스
구체적인 투자와 합작공장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배터리 업계는 양사의 투자금이 3조원 내외가 될 것으로 관측한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이 스텔란티스와 연간 40GWh 규모의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한 만큼, 삼성SDI도 그에 못지 않은 규모로 합작법인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스텔란티스는 2025년까지 미국에 연간 생산능력 50GWh, 2030년까지 90GWh에 달하는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는 목표를 내놓은 바 있다"며 "LG와 40GWh 합작법인 설립을 약속한 만큼 삼성SDI와는 최소 20GWh가 넘는 규모의 공장을 지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삼성SDI는 ‘제2의 테슬라’로 불리는 리비안과도 합작법인 설립이 유력하다. 리비안은 2025년까지 100GWh 규모의 자체 배터리 생산설비를 구축할 계획이다. 리비안의 주력모델인 픽업트럭 ‘R1T’ 등에 탑재되는 원통형 배터리는 삼성SDI가 공급 중이다.

미국 주요 전기차 완성차 업체 중 테슬라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한국 기업이 배터리를 공급하게 됐다. 테슬라는 일본 파나소닉으로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향후 자체 배터리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스텔란티스 합작법인(40GWh) ▲오하이오주 GM 합작법인 1공장(35GWh) ▲테네시주 GM 합작법인 2공장(35GWh)을 비롯해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 등 독자적인 신규 추가 투자를 통해 2025년까지 북미 지역에서만 150GWh의 배터리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

SK이노베이션은 포드와 합작사 ‘블루오벌SK’의 생산능력 129GWh와 조지아주에서 단독으로 짓고 있는 공장 두 곳과 합해 미국에서만 150GWh 생산능력을 확보한다.

삼성SDI의 미 합작공장 생산능력을 20GWh로 가정하면 2025년 이후 미국에서 K배터리 3사의 생산능력 합계는 320GWh다. 이는 60킬로와트(KW)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매년 530만대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SDI의 경우 USMCA 협정에 따라 2025년 이내에 미국에 공장을 설립해야 할 것이다"며 "스텔란티스뿐 아니라 다른 완성차 기업과도 협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