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 백번 글을 읽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인데, 여기에는 글쓰기의 놀라운 비결이 담겨져 있다. 언뜻 글읽기가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에 글쓰기를 평가절하하는 것 같지만 ‘실천력’ 차원으로 달리 생각해보면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써보는 것이 글쓰기 능력 제고에 큰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때때로 글은 시청각이 담아낼 수 없는 감성을 활자에 담아 공감각을 구현해 내기도 한다. 글쓰는 작가이자 변호사인 정지우는 책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문예출판사)를 통해 그런 견해를 표출한다.

/밀리의 서재
/밀리의 서재
앞에서 서술했듯 저자는 글쓰기 강연이나 도서가 글쓰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몸’으로 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저자는 "글쓰기를 남다르게 해낼수 있는 방법을 ‘머리로’ 배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제목에서 강하게 내비추듯 본 도서는 글쓰기를 돕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관해 저자는 말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글쓰기'에 관한 증언들에 가깝다"고.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글쓰기 시작을 머뭇거리는 사람이 많다. 시작할 동기를 찾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인데, 저자는 부수적인 동기를 찾으라고 충고한다. 운동을 하기 위해 계단 오르기를 하는 저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의 연약함으로 자주 포기하기 원하는 그의 의지를 붙잡아준 것은 모기들이었다. 계단을 오르며 전자모기채로 모기들을 잡았던 것. "모기를 열심히 잡으면 내 아이를 물 수도 있었을 한 마리를 죽이는 셈"이라는 생각이 계단 오르기를 지속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꾸준한 글쓰기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수적인 욕망'을 붙이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부수적인 이유를 찾으라고 충고한다. 편지로 여자친구를 감동시키거나, 이성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와 같은 사심을 부리라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도박빚에 쫓겨 글을 썼다가 여러 명작을 남겼던 것처럼.

‘지연’과 ‘절제’는 저자가 밝힌 수많은 ‘기술’ 중 하나다. 지연이란 "글의 내용적 핵이 될 부분을 가능한 한 직접적으로 지시하지 않고 미루면서, 그러한 미룸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피어오르는 언어를 건져내는 일"이다. ‘좋았다' ‘행복했다’ ‘즐거웠다’처럼 감정을 원초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피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지연이 이뤄질 때 "드넓고 풍성한, 어떤 커다란 덩어리로 완성된다. 그것이 글쓰기의 결실이다. 지여한 시간이 세계와 인간을 더 깊고 광대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심지어 "법원의 판결문조차 많은 경우 읽는 이에게 (상황에 대한) 상상과 (당사자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맥락에서 ‘단문을 써라' ‘접속어 쓰지 마라'와 같은 통념을 반박한다. "무엇이든 특정 매뉴얼을 만들어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에 복종함으로써 불안한 자신의 존재 기반을 얻고자 한다"며 "(그런 경우) 문장에 대한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감각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글을 객관화할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과 특정 스타일을 강요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게 저자의 설명. 저자는 "다양한 만연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단문 권력자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글쓰기의 핵심은 "지지받는 느낌"이다. 쓰고 나서 혼자 볼 일기가 아닌 바에야 글은 독자를 필요로 하고, 그것 역시 글을 쓰는 작가가 글쓰기를 위해 해야할 일이다. "독자는 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동네 친구가 될 수도 있고, SNS의 팔로워나 블로그의 이웃이 될 수도 있다." "글쓰기란 흔히 말해지거나 보이는 것 이상으로 타인들과 강력하게 관계 맺는 행위이며, 타인들로부터 힘을 얻는 일"이다. 특히 에세이의 경우 일기가 되지 않으려면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보편적인’ 공감대의 영역으로 나아간다는"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서믿음 기자 mese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