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칩 설계 맛집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삼성전자 앞에 줄을 섰다. 이들 기업은 자사 제품에 최적화 된 반도체 자체 개발에 나섰지만, 당장 설계와 생산이 여의치 않다. 칩 설계와 생산을 합친 삼성전자의 세트 메뉴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과거 반도체 자체 설계 능력을 보유한 것이 오히려 파운드리 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이같은 설계 능력을 빅테크 기업의 자체 칩 개발을 돕는 데 집중하자 파운드리 사업이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빅테크 기업에 설계 기술 노하우를 전달하는 동시에 이들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고객으로 확보하는 삼성의 전략이 성공을 거둔 모습이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파운드리 / 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파운드리 / 삼성전자
2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애플을 비롯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테슬라 등 빅테크들은 최근 잇따라 독자적으로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인텔이나 퀄컴이 대량 양산하는 반도체보다 자사 앱과 서비스 성능을 극대화하는 맞춤형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는 이들 중 구글, 페이스북, 테슬라와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가장 긴밀한 협업을 진행 중인 곳은 구글이다. 구글은 19일(현지시각)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인 ‘텐서’를 공개했다. 그동안 사용하던 퀄컴의 AP 대신 탑재한 것으로, 삼성전자 커스텀SoC팀과 공동 개발하고 삼성 파운드리가 생산을 맡았다.

삼성전자는 3월 구글의 자율주행 부문 자회사인 ‘웨이모’의 차세대 자율주행차용 반도체 칩 과제도 수주했다. 설계 완료 후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극자외선(EUV) 공정을 통한 생산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구글이 삼성전자와 함께 개발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텐서’ / 구글
구글이 삼성전자와 함께 개발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텐서’ / 구글
테슬라의 자율주행(FSD) 칩은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서 생산 중이다. 테슬라는 차기 자율주행차 칩 개발 파트너로도 삼성전자를 낙점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TSMC 대비 칩 설계 지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최근 페이스북의 가상현실·증강현실(VR·AR) 기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생산에 돌입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삼성전자가 칩 설계 맛집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2020년 조직개편으로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 시스템LSI 사업부 내 커스텀SoC팀을 신설한 후부터다. 커스텀 SOC사업팀 연구위원 인력은 올해 5명으로 늘었고 팀장도 상무에서 전무급으로 승격했다.

커스텀SoC팀은 빅테크 고객사가 삼성전자에 의뢰한 반도체 설계 지원을 전담하는 역할을 한다. 고객사와 협력으로 설계 과정이 끝난 칩은 파운드리사업부로 건너가 생산이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다.

삼성전자는 자사 모바일 및 자동차 AP, 이미지 센서,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을 개발하면서 반도체 설계 기술 노하우를 적잖게 쌓았다. 빅테크와 파운드리 업체가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협업하는 사례가 늘어나며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점차 커질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잇따른 커스텀 칩 수주는 복합 반도체 기업으로서 팹리스(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를 동시에 영위하기에 가능한 것이다"라며 "구글, 테슬라 등 고객사들이 자사 제품에 자체 설계한 반도체 칩 채용을 늘릴수록 삼성전자의 매출이 어마어마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