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 전체에 전화, 인터넷, 금융 다 끊겼어. 한국통신 청호지사에서 불이 났대."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1화에서 남주인공인 홍반장(김선호)이 여주인공 윤혜진(신민아)에게 던진 대사다.

윤혜진은 1화에서 어릴 적 추억이 있는 바닷가 마을 공진에 방문한 후 타고 온 차에서 시동이 걸리지 않아 문제를 겪는다. 보험사에 연락하려 했지만 휴대전화 신호가 잡히지 않는 상황에 처했다. 근처 카페에 있는 유선 전화도 먹통이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후 값을 지불하려 했지만, 카드 결제 역시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현금 인출을 위해 근처 ATM 기기를 찾았지만 이 역시 먹통이었다. 윤혜진은 결국 음료값 계산을 위해 마을에서 일일 노동을 하게 된다.

드라마에 나온 통신 두절 에피소드는 공교롭게도 10월 25일 전국에서 현실로 재현됐다. 2018년 11월 발생한 KT 아현국사 화재로 수도권 북서부 일대 통신망이 마비된 지 3년 만에 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규모도 크다. KT 부산국사에서 발생한 네트워크 경로 설정(라우팅) 오류가 전국 단위로 확대하면서 점심시간대 인터넷 접속이 끊겼다. 학교와 직장, 마트, 식당 등 전국 곳곳이 마비됐다. 드라마 남녀 주인공을 이어주던 에피소드가 현실에선 전시 상황을 방불케 하는 국가 마비 사태를 낳았다.

KT는 인재(人災)로 발생한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문제 발생 8일 만인 11월 1일 보상책을 내놨다. 월 통신료 중 일부를 감액해 주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런데, 피해 당일 점심 장사를 망친 식당은 한 명분 점심값도 안 되는 보상액만 받고 사태를 마무리 지어야 할까. KT의 조치가 합리적일까. 대형마트나 상점들이 강제로 매출을 올리지 못했던 상황은 보상의 대상으로 볼 수 없을까.

KT는 향후 추가 보상안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기는 했다. 기존 보상안은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내놓은 것이다 보니 일괄적인 보상액만 책정했다는 것이다. 향후 피해 사례를 파악해 추가 보상을 고민해 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KT는 추가 피해에 대한 보상안을 하나의 변수로 놓을 게 아니라 반드시 집행해야 하는 상수로 여겨야 한다. 사회 전 영역에서 네트워크 중요성과 활용도가 높아진 때, 피해 사례는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이미 KT가 밝힌 피해 발생 시간(85분)에 더해 추가로 오후 늦게까지 인터넷 장애를 겪었다는 피해 사례가 나온다. 오프라인 상점은 현금 결제라도 받겠지만, 온라인 기반 상점들은 아예 손을 놓아야 했다. KT는 피해 사례를 살피는 데 그칠 게 아니라, 해당 사례에 따른 마땅한 추가 보상책을 발표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KT가 추가 보상안을 마련할 경우 경영상의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짚는다. KT 약관을 벗어난 보상의 경우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KT 아현국사 때 지불한 보상액보다 이번 인터넷 장애 보상액이 더 커질 경우 배임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통신 업계 평가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일수록 나무를 보기보단 숲을 봐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리스크를 해결하고자 눈에 보이지 않는 리스크를 키울 순 없다. 이미 KT가 밝힌 보상책은 피해 규모에 비해 터무니없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를 외면한다면 국가 기간통신사업자로서 쌓은 소비자 신뢰를 단번에 잃는 중차대한 실수를 범할 수 있다. KT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