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국회에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2차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이 1년 가까이 이어진다. 산업계에서 가장 크게 반발하는 것은 ‘과징금 부과기준’이다. 관련 매출액이 아닌 전체 매출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정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개인정보위도 글로벌 규제기준에 발맞춘 것이기에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개인정보위는 9월 과징금 부과기준을 전체 매출액의 3%로 상향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인정보보호법 과징금 부과기준 연구반 킥오프 회의 모습 / 개인정보위
개인정보보호법 과징금 부과기준 연구반 킥오프 회의 모습 / 개인정보위
5일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실 등에 따르면 이달 열린 법안소위에 개보법 개정안이 상정될 가능성이 작다. 개보법 개정안은 국회에서도 큰 관심을 받지 못해, 법안 상정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이다. 연내 법안 통과는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야당 정무위 한 관계자는 "과징금 부과기준, 전송요구권, 분쟁조정위원회 사실조사권 부여 등 민감한 내용이 담겨 있어, 이에 대한 합의점을 어느 정도 찾아야 법안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다"며 "이달 열릴 법안소위에 상정할 법안들이 아직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개보법 개정안이 상정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여당 정무위 관계자도 "법안소위보다는 예결위에 더 집중하는 상황이다'며 "개인정보법 개정안을 두고 아직 위원회 내에서 깊이 있는 논의가 오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개인정보위는 3일 ‘과징금 부과기준 연구반’을 구성해 하위 규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과징금 부과기준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과징금 산정기준 마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연구반에는 개보법 개정안을 강하게 반대해 온 한국인터넷기업협회를 비롯해 네이버, 카카오, 아마존웹서비스(AWS), SK텔레콤, KT,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삼성전자, 우아한형제들, 보맵 등이 포함됐다. 기업의 규제 강화 목소리를 내는 시민단체에서는 한국소비자연맹, 소비자시민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진보네트워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이 참여한다.

연구반 1차 회의는 킥오프 형태로 열려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보다는 향후 운영방안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개인정보위는 최근 더 많은 이용자 개인정보를 유출한 샤넬코리아가 천재교과서보다 과징금을 적게 받은 사례를 앞세워 관련 매출액 기준보다 전체 매출액 기준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샤넬코리아는 8만1654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했고, 매출 규모도 9400억여원에 달하지만 과징금 1억2616만원만 부과받았다. 반면 2만3624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매출 1400억원가량의 천재교과서는 과징금 9억335만원을 부과받았다. 관련 매출만 비교했을 때 샤넬코리아보다 천재교과서가 컸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온·오프라인 판매 사업을 하는 기업이 온라인상의 개인정보 유출로 과징금을 부여받는다면, 온라인 사업 부문에서 얻은 매출로만 과징금을 부과한다.

유럽의 GDPR 등 글로벌 기준이 ‘전체 매출액'이라는 점도 개인정보위가 개정안을 강행하는 논리 중 하나다. 또 위반행위에 상응하는 비례성 등을 고려하기 때문에 업계가 우려할 만큼의 과도한 과징금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개인정보위는 연구반에서 전체 매출액 부과기준을 전제로 한 논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산업계는 여전히 전체 매출액을 기준으로 논의를 이어가는 것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법안 통과전까지는 연구반에서 평행선 논의를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관계자는 "천재교과서와 샤넬코리아 예시를 갖고 과징금 기준을 접근하면 안 된다"며 "형벌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얼마큼의 책임성을 갖고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혔느냐를 기준으로 따져야지 기업의 가치와 규모에 따라 과징금을 매기는 것은 형법상 과실책임주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의 GDPR 예시도 계속 말하지만,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고 도입했던 배경 역시 다르다"며 "보통 시행령 연구반은 초안을 갖고 얘기하는데 초안도 없는 상황에서 논의하기 때문에 제로베이스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과징금 기준이 전체매출액 3%가 과도하고 우려스럽다는 입장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에는 형벌을 경제벌 중심으로 전환하고 비례성과 효과성 확보에 대한 문구도 넣는 등 업계의 의견을 계속해서 반영해 왔고, 국회에 제출한 법안을 기준으로 시행령을 만드는 것이 당연한 절차다"며 "물론 국회의 법안 통과 시점을 알 수 없기에 불확실성은 남아있지만, 변동이 생기면 그 때 추가논의를 하면 될 뿐이다"고 말했다.

이어 "업계에서도 전체매출액을 전제로 하위 규정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의견을 제출해주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