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LCD 이어 중국에 밀려난 배터리, 돌파구 찾을 수 있나

이광영 기자
입력 2021.11.11 06:00
한국 디스플레이 업계는 2000년대 중반부터 2016년까지 액정표시장치(LCD) 시장 정상을 지켰지만 현재는 중국에 왕좌 자리를 뺏겼다. LCD 기술을 확보한 중국 업체들이 물량과 가격 공세를 펼친 영향이다. 한국 업체는 LCD 사업에서 조만간 완전히 철수한다. 데자뷔(최초 경험이지만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일까. 배터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분위기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K배터리 3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수주한 규모는 400조원을 넘는다. LCD 때와 다른 분위기라는 평가도 있지만, 넋 놓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등에 업은 중국 LCD 업계의 성공처럼 배터리 분야 역시 비슷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는 제품은 CATL, BYD 등 중국 기업이 만드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다. 국내 기업은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앞서 삼원계(NCM·NCA)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 여파로 LFP 배터리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삼원계 배터리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LFP에 밀리는 분위기다. 전기차 전문 기업인 미국의 테슬라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모든 기본형(스탠더드 레인지) 모델에 LFP 배터리를 사용하겠다고 밝힌 것도 LFP에 힘을 실어주는 배경이 된다.

LFP 배터리가 위협적으로 보이는 것은 저렴하다는 것도 있지만 중국 기업의 빠른 시장 확장 능력에 있다. 폭스바겐은 3월 열린 ‘파워데이’ 행사에서 향후 각형 배터리 탑재율을 80%까지 확대한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그동안 탑재하지 않았던 LFP 배터리도 사용하기로 했다. 각형 LFP는 중국 CATL, BYD의 주력 제품이다.

지금껏 중국 배터리 산업은 내수 시장 위주로 성장했다. 중국 이외 지역에선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는 안이한 생각이다. 중국 시장에 차량을 판매하는 제조사는 일정 수준 이상의 중국산 배터리를 써야 한다는 ‘기브 앤 테이크’ 요구에 직면했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전기차 매출의 40%를 중국에서 벌어들였다. 시장 의존도가 상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용 전기차에서 중국산 배터리를 제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틈만 나면 중국에 사과하거나 공산당을 칭송하는 발언을 하는데, 이 역시 중국의 시장 규모를 고려한 자세로 해석할 수 있다.

LFP 배터리가 주목받기 전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의 푸념이 떠오른다. 성능만 따지면 세계 모든 전기차에 한국 배터리가 들어가야 하는 게 맞지만, 거대한 내수 시장을 보유한 중국의 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우려는 점차 현실화 한다. K배터리 3사는 긴 적자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결과 글로벌 정상의 자리를 거머쥐었지만, 최근 중국 배터리 기업의 약진은 LCD 때보다 더 공격적으로 보인다.

K배터리 업계는 중국의 도전을 데자뷔가 아닌 타산지석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LCD 시장에선 중국에 밀려났지만, 차세대 기술인 OLED에 대한 집중 투자로 신규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미래를 내다본 기술 초격차가 중국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중국산 LFP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두드러지게 늘어나는 것 역시 일시적 트렌드일 가능성이 높다. 어설픈 LFP 따라가기는 공멸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10년 뒤, 20년 뒤를 내다보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대용량, 고밀도, 코발트 프리 등 기존 삼원계 배터리 기술에 대한 초격차만이 K배터리의 경쟁력을 잇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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