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4년 12월 미국 골드만삭스 회장을 만나 반도체, 스마트폰 등 삼성의 미래 사업구상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법에서 11일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혐의 재판에서는 한 통의 영문 이메일이 공개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 13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 출소 후 인터뷰하는 모습 / 유튜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 13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 출소 후 인터뷰하는 모습 / 유튜브
12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은 2014년 12월 8일 미국 골드만삭스의 진 사이크스 당시 M&A 사업부 공동회장이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현진 골드만삭스 한국 대표 등 3명에게 보낸 이메일을 증거로 제시했다.

변호인이 이 이메일을 공개한 것은 이 부회장이 골드만삭스 측 인사들과 만난 이유가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가 아닌 전반적인 사업 현안과 미래 전략에 대한 조언을 받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메일에는 사이크스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직후 홀로서기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나눈 대화 내용이 있어 이 부회장의 고민과 경영철학, 사업구상 등을 엿볼 수 있다.

사이크스는 글로벌투자은행(IB)업계에서 IT, 이동통신 등 분야 전문가로 알려진 인사다. 미국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전담했던 뱅커로 알려져있다. 이 부회장을 알게 된 것도 잡스의 소개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이크스는 이 부회장과 대화 가운데 대부분은 삼성전자 사업 전반에 관한 것이었다고 썼다. 고성능 부품, 디스플레이, 폼 팩터, 카메라 기술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의 제품 차별화,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 전략, 소프트웨어 분야의 투자 확대, 애플과 지속적인 공급 관계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의 이런 구상은 향후 갤럭시 폴더블폰 성공,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선언,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소프트웨어 발전 전략, 애플에 대한 핵심부품 공급 등 성과로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당시 상속세와 관련한 문제도 언급했다.

사이크스는 "그(이재용)는 비록 한국 상속세와 미국 세금의 차이점에 흥미를 보이기는 했지만, 부친께서 돌아가실 경우 발생할 세금 문제에 대처할 준비가 잘 돼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시점은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7개월밖에 안 된 시점이지만 상속세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된 상태로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