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고가형 TV시장을 네오 QLED와 마이크로 LED TV로 이끌겠다는 투 트랙 전략을 밝혔지만, 마이크로 LED TV는 시장에서 정착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삼성전자가 3월 출시한 110인치 가정용 마이크로 LED TV는 온·오프라인에서 구매가 불가능하다.

전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실제 구입할 수도 없는 마이크로 LED TV를 단순 기술 과시용으로 출시했으며, 애초에 안방 시장을 겨냥하기에 기술적 어려움이 있는 제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마이크로 LED TV는 가로세로 100㎛(마이크로미터, 1=100만분의 1m) 이하의 LED 소자를 활용한 디스플레이다. 각각의 LED 칩이 하나의 픽셀 역할을 하는 자발광 방식이다. LED 칩을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크기나 형태에 제약이 없다. 기존 LCD보다 ▲명암비 ▲응답속도 ▲색 재현율 ▲시야각 ▲밝기 ▲해상도 ▲수명 등에서 우수한 성능을 지녔다.

더현대서울 삼성전자 플래그십 매장에 전시된 110인치 마이크로 LED TV / IT조선 DB
더현대서울 삼성전자 플래그십 매장에 전시된 110인치 마이크로 LED TV / IT조선 DB
2월 26일 개장한 더현대서울 삼성전자 플래그십 매장에는 지금도 110인치 크기 마이크로 LED TV가 전시돼 있다. 1억7000만원이라는 가격도 붙어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 제품에 대해 구매 문의가 들어와도 주문을 받지 않는다.

플래그십 매장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품질·수급 이슈가 발생해 베트남 공장에서의 마이크로 LED TV 생산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TV를 주문한 고객이 이 제품을 받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라고 판단해 판매를 중단했고, 재개 시점 역시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의 상황 역시 플래그십 매장과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홈페이지에는 마이크로 LED TV 110인치 모델(MNA110MS1ACXKR)이 검색되지만, 온라인 페이지 내에 구매 버튼 없이 제품 소개 화면만 나와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상담사는 구매하기 버튼이 없는 제품에 대해 실제 판매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TV업계는 삼성전자가 마이크로 LED TV 출시 초기 가정용 110인치 제품을 실제 판매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8월 초 판매된 네오 QLED 98인치 제품에 대한 구매 후기는 온라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마이크로 LED TV는 사실상 전무하다.

2020년 1월 5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삼성 퍼스트 룩 행사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이 마이크로 LED TV '더 월'과 함께 삼성의 ‘스크린 에브리웨어’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 삼성전자
2020년 1월 5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삼성 퍼스트 룩 행사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이 마이크로 LED TV '더 월'과 함께 삼성의 ‘스크린 에브리웨어’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 삼성전자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장(사장)도 마이크로 LED TV 110인치 제품이 아닌 146인치 상업용 제품에 대해서만 판매를 언급한 바 있다.

한종희 사장은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IT쇼 2021’에서 "가장 화면이 큰 146인치 마이크로 LED 라인은 풀가동 중이다"라며 "하반기 중 70인치와 80인치 제품까지 출시되면 생산라인을 증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020년 초 한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2~3년 내 300만원대 75인치 가정용 마이크로 LED TV를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2월 110인치를 선보인데 이어 올해 순차적으로 99·88·76인치 제품을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약속은 공염불에 불과할 전망이다. 기존에 있던 110인치 제품 생산을 사실상 중단한 가운데 99인치 제품을 내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TV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마이크로 LED TV 라인업을 가다듬은 내년 89·101·114인치 등 3종의 신제품을 출시한다.

삼성전자의 계획에 지속적으로 차질이 발생하는 것은 코로나19에 따른 부품 수급 이슈도 있지만, 초소형 LED 소자를 기판에 촘촘히 삽입하는 마이크로 LED TV 특성 탓이다. 생산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제조 시간 역시 긴 공정상 한계 영향이다. 기존 110인치 제품의 수율을 극적으로 향상하기 어렵고, 더 작은 크기의 TV를 만들 때 원가가 더 비싸진다.

TV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로 LED 소자 수백만개 중 1%의 불량만 나와도 수만개의 칩을 교체해야 하는 제조 공정 특성상 제품 생산 수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화면 크기가 작아지면 그만큼 공정 시간과 비용이 함께 늘어나 제품 가격도 비싸진다"고 말했다.

LG전자는 기술적 한계 영향으로 마이크로 LED를 상업용으로만 활용 중이다. LG전자는 2020년 독자 기술로 개발한 마이크로 LED 사이니지 제품 ‘LG 매그니트(MAGNIT)’를 글로벌 시장에 출시했다.

LG전자 내부에 정통한 관계자는 "LG전자도 마이크로 LED를 가정용TV로 활용할 의향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술이 성숙해졌을 때를 가정한 시나리오일 뿐이다"라며 "현재로선 상업용 디스플레이 시장이 주 고객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