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설익은’ 가상자산 관련 법, 속도보다 ‘신뢰’가 우선

조아라 기자
입력 2021.11.16 10:40


최대주주 적격성 심사 공백,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이하 실명계좌) 발급 가이드라인 부재,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원시적 불능. 이는 모두 업계에서 지적받는 특정금융법(아하 특금법) 개정안의 대표적인 미비점이다.

최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글로벌 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권고 사안이다. 실소유주가 자신이 보유한 가상자산 사업장을 이용해 자금을 세탁하거나 테러 단체에 돈을 보내지 못하도록 방지하자는 취지다. 특금법은 이 같은 내용을 담지 않고 있다. 사업자 신고수리가 거부되는 범죄자 범위에서 최대주주가 제외됐다.

이를 이유로 일각에서는 특금법이 업비트와 빗썸을 보호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두나무 최대주주인 송치형 의장은 가상자산 시세 조종 혐의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두나무는 업비트 운영사다. 빗썸의 실소유주인 이정훈 전 빗썸코리아 의장도 가상자산 관련 사기 혐의로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개정안 대로라면 특금법 발의 후 재판을 받게 된 송 의장은 유죄를 선고받더라도 업비트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발의 이전에 재판이 시작된 빗썸은 최대주주 리스크로 사업자 신고수리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업계에 떠돌던 ‘업비트 특혜 시비’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실명계좌 발급은 원화마켓을 운영하려는 사업자가 갖춰야 할 요건 중 하나다. 사실상 행정행위로 정부가 민간 기업에 발급 업무를 위탁하려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정부는 은행 영역이라며 손을 놨고 실명계좌 발급 심사는 은행 재량에 맡겨졌다.

이 가운데 적지 않은 중소 사업자가 명확한 근거 없이 실명계좌를 받지 못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채점자 마다 채점 결과가 다르다. 정답도 알 수 없고 불합격 이유도 모른다"고 표현했다. 실명계좌 발급 기준 부재는 가상자산 시장의 최대 불확실 요인으로 남아있다.

특금법 필수 요건인 ISMS는 현행법 충돌 문제를 지니고 있다. 특금법은 ISMS 인증을 획득해야 국내 사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반면 정보통신법은 두 달 이상 서비스를 계속한 기업만 ISMS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신규사업자는 정보통신법에 따라 ISMS 심사를 신청할 수 없다. 특금법은 ISMS가 없으면 불법 사업자로 본다. ISMS가 없으면 ISMS를 받지 못하는 ‘원시적 불능’ 상태다. 애초에 달성할 수 없는 조건이라는 말이다. 현재 적지 않은 기업들이 특금법 오류로 사업을 접고 있다.

업계는 특금법의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했지만 여전히 법은 그대로다. 개선 움직임도 없다. 그동안 국민의힘이 특금법 미비점을 지적하며 법 시행을 미루자고 주장했지만 여당은 냉담했다. 되레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법 시행을 강행했다.

이 가운데 여당은 가상자산 업권법을 밀어 붙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국회에 발의된 12개 법안을 취합하는 한편, 업계 전문가를 초대해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가상자산 사업의 정의와 범위를 명확히 하고 투자자 보호 방안을 강화하는 등 법안을 개선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현행 업권법은 가상자산 기술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또 업계는 여당의 가상자산 업권법 제정에 불신의 시선을 보낸다. 탈중앙화금융(Defi)과 대체불가능토큰(NFT) 규율이 없는 데다가 트래블룰 개념도 재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하는 가상자산 시장을 따라잡지 못해 현실에 맞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법안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업권법 제정보다 특금법 문제점을 바로잡는 게 먼저다. 업권법은 이미 늦었다. 업권법은 특금법 개정 전에 나왔어야 했다. 이제라도 업권법을 만들겠다면 빨리 만드는 것 보다 제대로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지금 가상자산 업권법에 필요한 것은 속도보다 신뢰다. 대선용 법안 실적에 급급하다 자칫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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