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리스크에 휘청대는 韓 가전, 탈출구는?

이광영 기자
입력 2021.11.21 06:00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특수를 맞았던 가전업계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최근 요소수 파동으로 불거진 중국발 원자재 대란이 가전 산업으로 옮겨붙을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일명 ‘차이나 리스크’다. 중국은 미국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대응해 원자재를 무기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우리 가전산업이 원자재 공급 주도권을 움켜쥔 중국에 의해 언제 휘둘릴지 모를 처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TV나 생활가전 생산 과정에서 투입되는 원자재·부품 상당량을 중국산에 의존한다. 최근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완제품 가격에 반영하는 중이지만, 과도한 인상은 완제품 판매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원자재 대란이 장기화할 경우 가전업계 수익성도 지속 악화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삼성전자 네오 QLED QN95A 제품 이미지 / 삼성전자
‘中 손아귀’ 가전 필수 원자재 마그네슘·희토류 가격 급등세

18일 외신과 가전업계 정보를 종합하면, 마그네슘, 희토류와 같은 원자재 가격은 중국 정부의 수출 통제 탓에 급등세를 이어간다.

세계 마그네슘의 85%를 생산·공급하는 중국은 최근 마그네슘 생산량을 탈탄소 정책과 전력난을 이유로 평소 40%로 줄였다. 가격은 연초 대비 2~3배 뛰었다. 마그네슘은 가볍고 단단해 각종 전자기기 케이스를 만드는 필수 소재다.

가전업계는 중국의 희토류 자석 수출 물량 제한 조치에도 발을 동동 구른다. 희토류 자석은 희토류 원소로 만들어진 강력한 영구자석이다. 일반 자석보다 5~10배 강력한 보자력(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다. 가장 널리 활용되는 희토류 자석은 ‘네오디뮴(neodymium)’인데, 스피커와 헤드폰, 전기 모터, 진공청소기와 같은 가전제품에 사용된다. 중국은 희토류 자석의 90% 이상을 생산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3분기 콘퍼런스콜 당시에도 이 같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를 오랜 시간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전 사업부문에 걸쳐 "부품수급 차질, 원자재 가격 상승, 물류비 급등까지 변수가 너무 많다"는 입장을 드러냈고, LG전자는 "원재료값 인상에 따른 (H&A 매출 영향은) 전년 동기 대비 4분기 예상을 포함해 연 매출액에 2.5~3%쯤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OLED Evo / LG전자
LCD 패널, 중화권 제조사 장악…판매량 증대 ‘무의미’

삼성전자는 TV를 만들 때 주로 CSOT, AUO, BOE 등 중화권 디스플레이 제조사에서 LCD 패널을 납품받는다.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가 일부 물량을 공급하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LG전자 역시 LG디스플레이 외에 BOE에 LCD 패널을 공급받고 있다.

LCD 기반 TV가 주력인 삼성전자는 올해 패널 매입에 대규모 비용을 지출했다. 3분기 누적 TV·모니터용 디스플레이 패널 매입액으로 2021년 7조9225억원을 썼다. 2020년 3분기까지 매입액은 3조8647억원, 2020년 한 해 비용은 5조4483억원이었다.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에서 2019년 3분기까지 전체 원재료 매입액 가운데 TV·모니터용 디스플레이 패널의 비중은 15.2%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1년 3분기까지 TV·모니터용 디스플레이 패널 매입액 비중은 34.1%로 역대 최대치다. TV 판매량을 늘리는 것이 무의미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LCD 가격이 하락 전환 추세지만, TV 수요가 있는 이상 예년 보다 높은 가격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중화권 기업은 LCD 패널 생산량을 조절하며 장기간 호황을 누리기 위해 애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TV 부품으로 쓰이는 반도체 칩 매입은 대만 기업 의존도가 높다. LG전자는 2020년까지 인텔의 반도체 칩을 주로 탑재했지만 원자재 매입 부담을 낮추기 위해 대만 리얼텍과 미디어텍의 제품 매입을 늘렸다.

LG전자 TV사업을 담당하는 HE사업본부의 2020년 3분기까지 TV 부품용 반도체 칩 매입 비용은 2856억원이었지만, 올해 같은 기간엔 2768억원으로 줄었다.

4월 열린 '삼성 비스포크 홈 2021' 행사에서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이 오프닝 스피치를 하고 있다. / 삼성전자
생활가전 필수 자재 ‘컬러강판’, 중국산 못 써 더 큰 부담

차이나 리스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원자재도 있다. 프리미엄 생활가전에 쓰이는 컬러강판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국산이다. 저품질 중국산을 대체재로 투입하기 어렵다.

실제 삼성전자 ‘비스포크’나 LG전자 ‘오브제컬렉션’에 쓰이는 컬러강판은 대부분 국산이다. 컬러강판 생산 물량이 제한적이고, 최근 가격 인상 폭이 크다. 가전업계는 중국산 도입을 검토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가전업체에서 요구하는 컬러강판 물량이 늘어 자연스레 협상 주도권이 철강업계로 넘어온 것이 맞다"면서도 "중국산 컬러강판은 품질 이슈가 많아 가전제품 적용이 어려운 데다, 가격 역시 예년 보다 크게 올라 메리트가 떨어지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中 원자재 리스크 근본 대응책 ‘無’…고마진 판매 늘리고 SCM 강화가 최선

전문가들은 중국이 미국과 무역분쟁을 이어갈 경우 언제든지 원자재를 전략물자화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상 국내 가전업계 스스로 이런 리스크를 풀어낼 근본적 대응책은 없다. 원자재 공급난과 가격 상승분에 맞춰 고마진의 프리미엄 제품 판매를 늘리고 공급망 관리(SCM) 능력을 키우는 것이 현실적 방안이란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80인치 이상 초대형 TV 마케팅을 강화 중이다. 초대형 TV 신제품인 네오 QLED 98인치 국내 판매를 8월 초 시작했고, 출고가는 1900만원대로 책정했다. 라이프스타일 TV인 더 프레임(The Frame) 85인치 제품도 7월 말 세계 시장에 순차 출시했다. 국내 출고가는 669만원이다.

LG전자 모델이 필요에 따라 디자인과 기능을 선택할 수 있는 LG 오브제컬렉션 상냉장 하냉동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 LG전자
LG전자는 OLED TV 판매 비중을 최대한 늘리면서 LCD 패널 가격 인상에 따른 여파를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내놓은 올레드 에보(evo)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G전자는 전체 TV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올레드 TV 비중을 4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생활가전 부문에서도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LG전자는 오브제컬렉션의 판매 비중을 최대로 높이고, 지속적인 혁신 가전 출시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목표다.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사장)은 4월 비스포크홈 간담회에서 "삼성전자 생활가전 전체 매출의 80%까지 비스포크 매출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전업계는 공급망 관리 능력도 한층 더 강화하고 있다. 쉽게 말해 특정 생산기지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권역 생산기지 물량을 늘리는 방법이다.

삼성전자는 구매 통합 시스템을 활용해 모든 공급망 관련 업무를 수행 중이다. 공급망 관리를 위한 전담조직도 운영한다. 팬데믹, 무역분쟁, 수출규제 등과 같이 예기치 못한 변수로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2022년에도 수요 공급 불균형에 따른 원자재 가격은 지속 상승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원자재 글로벌 통합 구매, 공급처 다변화, 공급망 관리(SCM) 최적화 등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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