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배터리 업계 수주전이 활발한 가운데 배터리 안전성을 높이는 분리막 확보를 위한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의 막이 올랐다. SK이노베이션의 소재사업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분리막에 잇달아 대규모 투자를 단행 중이고, LG화학도 일본 도레이와 손을 잡으며 분리막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한다.

분리막은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과 함께 배터리 핵심 소재 중 하나다. 양극과 음극의 접촉을 막고, 미세한 기공 사이로 리튬 이온만 통과시켜 전류가 통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전기차 배터리의 안전성과 성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며 배터리 원가의 15~20%를 차지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발표한 최근 자료를 보면, 2020년 40억㎡였던 세계 분리막 시장은 2025년 160억㎡ 규모로 늘어난다. 2023년부터는 공급 부족 현상이 나타날 전망이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오른쪽)과 닛카쿠 아키히로(Akihiro Nikkaku) 도레이 사장이 10월 27일 화상회의를 통해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 LG화학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오른쪽)과 닛카쿠 아키히로(Akihiro Nikkaku) 도레이 사장이 10월 27일 화상회의를 통해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 LG화학
LG화학은 10월 27일 일본 도레이와 함께 헝가리에 ‘LG 도레이 헝가리 배터리 분리막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2024년부터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의 유럽 배터리 공장에 분리막을 공급하며 급성장하는 유럽 전기차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LG화학은 앞서 7월 LG전자의 분리막 사업을 인수했다. 그동안 LG전자는 일본 도레이, 중국 상해은첩 등으로부터 받은 분리막 필름을 코팅해 LG에너지솔루션에 공급해왔다. 도레이와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중국산 분리막 의존을 줄여 배터리 성능 안정성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합작법인에는 LG화학의 초기 출자금을 포함해 총 1조원 이상이 단계적으로 투입된다. LG화학 관계자는 "경쟁사 대비 2배 이상 빠른 분리막 코팅 속도와 넓은 코팅 폭을 기반으로 독보적인 원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2028년까지 연간 8억㎡ 이상 생산능력을 갖춰 분리막 생산능력 기준 세계 톱5 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SKIET는 이미 글로벌 1위 습식 분리막 업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청주, 증평과 중국 창저우에 생산시설을 보유한 가운데 최근 유럽 생산 거점 확보에 나섰다.

폴란드 실롱스크주에 위치한 제1공장은 연내 상업 가동을 한다. 제1공장에서 생산하는 분리막은 연산 3억4000만㎡ 규모다. 전기차 30만대 이상에 탑재할 수 있는 물량이다.

분리막을 살펴보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 직원 / SK아이이테크놀로지
분리막을 살펴보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 직원 /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IET는 폴란드 실롱스크주에 2024년까지 총 2조원을 투자해 15억4000만㎡의 분리막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분리막은 SK온을 비롯한 글로벌 배터리사에 공급된다.

SKIET는 준공한 제1공장 외에 연산 3억4000만㎡ 규모의 제2공장을 2023년 상업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각각 4억3000만㎡ 규모의 제3·4공장도 7월 착공에 들어갔다. 한국, 중국, 유럽을 포함한 SKIET의 글로벌 생산 규모는 총 27억3000만㎡에 달할 전망이다.

분리막 시장은 최근 잇따른 합종연횡으로 지각 변동을 겪고 있다. 기술력을 갖춘 일본 기업과 압도적 내수시장이 강점인 중국 기업의 성장세가 눈에 띄는 형국이다.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인 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은 최근 중국 분리막 시장 1위 창신신소재와 분리막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총 투자금은 80억위안(1조5000억원)이다.

합작사는 연산 16억㎡ 규모의 습식 분리막 공장을 건설한다. 창신신소재 산하 소재업체와 공동으로 연산 20억㎡ 규모의 건식 분리막 합작 공장도 설립할 계획이다.

중국 상해은첩과 일본 아사히카세이는 2022년 상반기 중 중국에 1억㎡ 규모의 분리막 생산라인 착공에 돌입한다. 2025년까지 10억㎡ 이상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분리막 시장에서 독자노선을 걸으며 정상을 지키려는 SKIET와 일본 기업과 손잡고 후발주자로 시장에 뛰어든 LG화학의 안방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