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PC’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사용자 맞춤형 구성이 가능하고, 완제품 PC 대비 우수한 ‘가격 대비 성능’이 조립PC의 최대 장점이었지만, 그것도 이제 옛말이다. 핵심 부품인 그래픽카드 가격이 천정부지를 찍으면서 조립PC의 가격도 평균 2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비싼 가격에 조립PC 구매를 포기한 소비자들은 ‘완제품 PC’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제조사가 부품 대량 발주를 통해 안정적인 가격을 유지하는 완제품 PC의 ‘가격 대비 성능’이 오히려 조립PC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PC용 부품 전문 제조사들이 완제품 PC의 비중을 점차 늘리고 있다. 에이수스의 게이밍 완제품 PC인 ‘ROG 스트릭스 GA15 시리즈 / 에이수스
PC용 부품 전문 제조사들이 완제품 PC의 비중을 점차 늘리고 있다. 에이수스의 게이밍 완제품 PC인 ‘ROG 스트릭스 GA15 시리즈 / 에이수스
여기에 전통적으로 메인보드와 그래픽카드 등 PC용 핵심부품 제조사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완제품 PC를 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핵심 구성 요소들을 자사 제품으로만 구성함으로써 안정성과 호환성은 물론, 브랜드 통일 효과까지 제공한다. 게다가 기존 조립PC로는 구할 수 없는 유니크한 디자인까지 구성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PC용 핵심부품 시장을 주도해오던 에이수스, MSI, 기가바이트 등도 데스크톱 완제품 PC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은 핵심 부품과 함께 노트북과 업무용 PC로 많이 쓰이는 미니PC(소형 데스크톱) 라인업을 이미 보유하고 있지만 데스크톱 완제품 시장에서는 늘 한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최근 팬데믹으로 인한 PC 수요 증가와 함께 ‘게이밍 PC’를 중심으로 일반 소비자용 데스크톱 완제품 비중을 늘리고 있다.

기존 대기업 브랜드의 완제품 PC는 개인 및 가정용보다는 기업의 업무용 PC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내놓은 제품이 많다. 대량생산과 비용 절감 등을 위해 디자인이나 구성도 최대한 단순하고 간결한 경우가 많다.

에이수스의 ROG 스트릭스 G35 시리즈(왼쪽)와 MSI의 MAG 코덱스 X5 시리즈 / 각사 제공
에이수스의 ROG 스트릭스 G35 시리즈(왼쪽)와 MSI의 MAG 코덱스 X5 시리즈 / 각사 제공
반면, 부품 전문 제조사들의 완제품 PC는 똑같은 구성이라 하더라도 디자인이나 품질, 성능, 기능 면에서 자신들이 별도로 판매하는 것과 거의 동급의 부품을 사용한 것이 차이점이다. 고성능 게이밍 PC를 찾는 소비자들이 단순히 사양이나 성능뿐 아니라 디자인 및 ‘감성’까지 따지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형도 측면에 강화유리를 부착해 PC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고, 형형색색의 LED 조명을 여기저기 적용하는 등 조립PC 업계에서 유행하는 최신 트렌드를 따르고 있다.

이러한 부품 제조사들이 선보이는 완제품 PC는 특정 브랜드의 팬층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미 조립PC 시장에서는 처음부터 사용자 자신이 선호하는 특정 제조사 부품만 선택해 구성하는 소비자들이 꽤 많다. 조립PC에서 완제품 PC와 같은 브랜드 감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부품 제조사에서 직접 자사 부품을 엄선해 선보인 완제품 PC는 내부 구성은 물론, 외부 디자인도 시중에서 판매 중인 기성품 케이스가 아닌, 해당 제조사 특유의 분위기와 콘셉트를 살린 고유의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특정 브랜드의 팬 입장에선 안성맞춤이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가격’도 더는 단점이 아니다. 오히려 조립PC의 가격이 껑충 뛰어올랐지만, 이들 완제품 PC의 가격은 거의 변동이 없는 제품이 더 많다. 각 부품이 중간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은, 해당 제조사의 공장에서 직접 조립되어 나온 제품이다 보니, 정상 가격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1월 현재, 에이수스에서 선보인 게이밍 데스크톱 완제품 ‘ROG 스트릭스 G35DX-V7R8015’ 모델은 AMD 4세대 라이젠 7 5800X CPU와 지포스 RTX 3080, 16GB의 메모리와 512GB의 SSD를 탑재한 제품의 가격이 289만9000원 선이다.

그러나 현재 별도로 판매 중인 에이수스의 지포스 RTX 3080 그래픽카드 단품 가격은 최소 2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이를 포함해 동일한 사양의 조립PC를 구성해도 에이수스에서 직접 선보인 완제품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싸다. 오히려 에이수스에서 통째로 AS를 지원하고, 조립PC로는 구할 수 없는 오리지널 디자인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완제품 구매가 경쟁력을 갖는다.

기가바이트 역시 ‘어로스 모델 X’시리즈라는 완제품 데스크톱 PC를 선보였다. / 기가바이트
기가바이트 역시 ‘어로스 모델 X’시리즈라는 완제품 데스크톱 PC를 선보였다. / 기가바이트
완제품 PC 수요가 늘어나는 데는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PC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조립PC가 유행하던 시절만 해도, 약간의 손재주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자신만의 PC를 조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는 물론, 기존의 PC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매번 신경 써서 어렵고 귀찮게 조립PC를 구매하는 것보다 당장 사서 바로 쓸 수 있는 완제품 PC를 사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쇠퇴 일로를 걷던 PC 시장은 업무용, 학업용, 엔터테인먼트용 등으로 수요가 증가하면서 다시 한번 중흥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중흥기에 조립PC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새다. 조립PC의 빈자리는 디자인과 품질, 완성도는 물론, ‘가성비’까지 좋아진 완제품 PC가 점차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