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년간 유료방송 업계 고질적인 문제인 콘텐츠 선공급 후계약 관행을 개선하는 작업을 본격화한다. 콘텐츠 선계약 후공급 문화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사업자 간 갈등 문제를 완화하고자 채널대가분쟁조정위원회를 신설하고, 채널 계약 종료 제도를 개선한다.

29일 은행회관에서 방송채널 대가산정 제도개선 공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29일 은행회관에서 방송채널 대가산정 제도개선 공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2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방송채널 대가산정 제도개선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과기정통부와 방통위가 공동 운영한 방송채널 대가산정 개선 협의회 논의 결과를 공유하면서 관련 사업자, 시민단체 등의 평가 및 토론을 진행하고자 마련된 자리다.

방송채널 대가산정 개선 협의회는 콘텐츠 대가 산정을 두고 유료방송사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간 갈등이 확대하자 관련 정부부처인 과기정통부와 방통위가 1월부터 공동 운영한 협의체다. 김도연 국민대 교수(언론정보학부)를 위원장으로 학계 전문가와 연구기관, 방송 사업자 단체, 정부 관계자 등 총 14명이 포함돼 있다. 그간 총 5번의 전체회의와 9번의 업계 간담회를 거쳤다.

콘텐츠 선계약 후공급 조성 본격화…유예 기간도 고려

방송채널 대가산정 개선 협의회 간사인 곽동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박사는 이날 11개월간의 논의 결과 총 12가지 갈등 과제에서 의견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여러 차례의 업계 간담회를 통해 문제를 식별한 결과, 가장 시급하고 공통된 문제를 선정해서 안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번 도출안에는 ▲시청률 지표 반영 ▲평가 결과 공개 ▲자료 검증 ▲투자 기여분 인정과 자체 제작 비율 검증 문제 등의 네 가지 채널 평가 개선 주제가 담겼다. 여기에 ▲채널 계약 종료 ▲오픈/프리(테스트) 채널 운영 ▲계약 시기 ▲분쟁/금지 행위 ▲개별 협상 재량권 인정 범위 ▲지상파/종편 포함 ▲배분 대상 매출 범위 ▲콘텐츠 대가 지급 규모 등의 여덟 가지 거래 절차 개선 논의도 포함됐다.

이중 계약 시기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은 업계 주요 화두이자 갈등 주제인 콘텐츠 선공급 후계약 문제를 다뤘다. 유료방송 업계의 특수한 계약 관행인 콘텐츠 선공급 후계약 문제를 개선해 선계약 후공급 계약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게 협의회 다수안이다.

곽 박사는 "협의회에선 채널 공급 계약이 선계약 후공급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이를 준수하지 않는 채널 공급은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며 "단, 계약 종료 시점 후 1분기 안에 채널 공급 계약이 체결된 경우 선계약 후공급으로 인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간 관행으로 보면 2021년 공급 계약 상당수가 2022년 1월에 계약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상당 기간 제도 완충 기간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과기정통부에서도 선계약 후공급 원칙 적용 시점을 고민하고 있다. 당장은 적용하기 어렵기에 유예 기간을 적용하자는 안으로 얘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콘텐츠 선계약 후공급 계약 문화를 확산할 경우 늘어날 수 있는 사업자 분쟁과 관련해서는 분쟁 조정 절차를 강화하자는데 의견이 모였다. 선계약 후공급 원칙을 적용하게 되면 계약 종료 사업자가 생길 수 있고, 그에 따른 채널 종료(블랙아웃)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이에 방송법을 개정해 현행 방송분쟁조정위원회와 별개로 채널대가분쟁조정위원회를 신설해 운영하자는 다수안이 나왔다.

곽 박사는 "소수는 법을 당장 바꾸는 게 어려우니 시행령을 바꿔서 먼저 적용하자고 했지만 다수가 법을 바꾸지 않으면 어렵다고 봤다"며 "현행 방송법에 있는 방송분쟁조정위원회 방식은 사업자 간 합의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어느 일방이 수용을 거부하면 조정이 불가능하기에 법을 바꾸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채널 계약 종료와 관련한 제도도 개선한다. 객관적인 기준에 의한 PP 퇴출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채널 공급 계약서 작성 시 성과가 미흡한 채널과의 채널 공급 계약을 종료하기 위한 조건을 명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상호 합의로 계약이 종료된 건에 대해선 송출 중단 전 1개월 정도 사전 고지를 의무화해 이용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다수안으로 나왔다.

콘텐츠 대가 지급 규모 개선을 위해서는 기존 모수 규제와 유사한 기준 지급률 제도를 도입해 당분간 운영하도록 하는 안이 나왔다. 콘텐츠 사용료를 콘텐츠 대가 산정 대상 매출로 나누는 식이다. 단, 기준 지급률 산정 과정에서 플랫폼 전체 지급액 규모가 전년보다 감소하지 않도록 했다.

방송채널 대가산정 제도개선 공개 토론회에 참가한 정부 관계자와 토론 패널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방송채널 대가산정 제도개선 공개 토론회에 참가한 정부 관계자와 토론 패널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선계약 후공급은 가야 할 길"…중소 PP 보호안 고민해야

이날 진행된 패널 토론에선 이번 협의회를 통해 콘텐츠 선계약 후공급 관련 합의가 도출된 것이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주요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소 PP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다.

이영주 서울과기대 교수(IT정책전문대학원)는 "채널 평가를 엄정히 해서 그 기반으로 계약을 하고 채널을 공급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유료방송 시장의 계약 관행을 뒤집는 것이기에 또 다른 모멘텀이 될 것이다"라며 "다만 이런 계약 관행에서 유리한 PP도 있고 아닌 PP도 있는 만큼 중소 PP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승현 한국PP협회장은 "선계약 후공급이 가야 할 길이라는 점에서 원칙에 반론 갖지 않는다. 다만 중소 PP가 여러 장르에서 풀뿌리 같은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모든 정책에 선행해 중소 PP를 보호, 육성하는 지원 방안이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협의회에서 채택해 정부에 권고안 최종안과 더불어 이번 공개 토론회에서 제기된 이같은 의견을 반영해 정부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해당 최종안 발표 시점은 12월이다. 최종안에 포함되지 못한 내용은 2022년 1월 발간되는 정책 보고서에 세부 내용을 실을 예정이다.

천지연 방통위 방송시장조사과장은 "선계약 후공급 관련해서 가장 관심이 많은데, 분쟁조정위원회 강화하는 방안과 함께 우월적 지위 통한 협상 판단을 어떻게 할지, 성실한 협상 기준이 무엇일지 등의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을 차분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