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법 개정보다 방송법 개정 횟수가 적다. 현재 방송법은 2000년 당시 체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시장 상황을 반영한 규제 체계를 동반할 필요가 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국내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 세미나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번 세미나는 국내 미디어 사업자의 경쟁력 강화 방안과 공정 경쟁 환경 조성 방안을 모색하고자 홍익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행사다.

이 위원은 정체된 성장 환경에서 어려움이 가중하는 미디어 시장의 회복을 위해선 정부의 정책 개선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을 구분해 규제 강도를 달리 두고, 산업별 특성에 맞게 규제를 개선해 변화한 시장 환경을 반영해야 한다는 조언도 더했다.

왼쪽에서 네 번째부터 양정숙 의원과 홍익표 의원,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이 토론 패널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왼쪽에서 네 번째부터 양정숙 의원과 홍익표 의원,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이 토론 패널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미디어 업계 안주에 정부 정책 실기 더해져 시장 어려움 가중"

이 위원은 이날 ‘지속가능한 미디어 생태계를 위한 시장 참여자 역할과 정책 방향'을 주제로 발제를 맡았다. 미디어 시장이 정체되면서 발생하는 사업자 갈등과 시장 상황을 반영하지 않는 낡은 정책을 해소하고자 정부와 시장 참여자의 노력이 각각 필요하다는 게 발제의 주된 내용이다.

이 위원은 케이블TV에서 IPTV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미디어 산업 주체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시장 참여자의 자체적인 사업 차별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방송 시장의 노동 생산성이 공공 행정보다 낮음을 지적하며 산업 효율성 문제도 짚었다. 케이블TV와 IPTV 사업자 등이 각각 독점 이윤 체계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안주했던 결과라는 게 이 위원 설명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방송 정책 실기다. 정부가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구분 없이 방송과 저널리즘을 등치 하면서 미디어 산업을 시장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했다는 게 이 위원 설명이다.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규제가 장기화하면서 산업 활성화 논의가 부재했다. 저가 수신료가 바탕인 미디어 산업에서 투자 등의 추가 재원 조달을 막는 요인을 낳기도 했다.

이 위원은 "유료방송은 산업인데, 불필요한 책임과 규제가 아직도 적용돼야 하나 논쟁이 있다. 외형상 공영과 민영방송이 분리돼 있지만 사실상 분리가 되지 않아 민영방송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가 전이되는 양상이 나타난다"며 "방송 공익이 사익을 제한해서 얻어지는 게 아닌데, 유료방송이나 상업 영역에선 사익을 제한하면서 공익을 달성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헌법보다 개선 논의가 적었던 방송법을 시장 상황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고 짚었다. 정부가 매체 특성을 고려해 채널 운영이나 편성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논지다. 유료방송 차별성을 제고하면서 토종 OTT를 활성화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더했다.

시장 참여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재무 안정성이 높은 만큼 좀 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콘텐츠와 서비스 차별화 노력에 더해 시장 사업자 간 제휴와 연계가 활성화해야 한다는 논지다. 여기에 시장 자체적인 자정 노력으로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는 조언도 더했다.

왼쪽부터 윤용 LG헬로비전 전무와 이호석 CJ ENM 전략지원담당,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컴퍼니장, 김광재 한양사이버대 교수, 이 위원, 노동환 콘텐츠웨이브 정책협력부장, 홍종휸 서울대 BK교수가 종합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왼쪽부터 윤용 LG헬로비전 전무와 이호석 CJ ENM 전략지원담당,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컴퍼니장, 김광재 한양사이버대 교수, 이 위원, 노동환 콘텐츠웨이브 정책협력부장, 홍종휸 서울대 BK교수가 종합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 김평화 기자
규제 완화로 사업자 자율성 높여야…규제 개선 우선순위 파악도 필요

이날 세미나 종합 토론에 참여한 SK브로드밴드와 LG헬로비전, CJ ENM, 콘텐츠웨이브 등 사업자 측 패널들은 발제 내용에 더해 시장을 시장답게 키워야 한다는 데 의견을 보탰다. 공영방송과 유료방송 시장을 구분해 유료방송의 경우 제재를 완화하면서 사업자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더했다.

윤용 LG헬로비전 전무(CRO)는 "공영방송과 유료방송은 나눌 때가 정말 왔다. 공영방송에는 퀄리티 있는 콘텐츠를 맡기고, 유료방송에선 시청자가 본인이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가격에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며 "프로그램 사업자에겐 채널 편성권을 주고, 방송채널제공사업자(PP)는 콘텐츠 제값을 받을 때까지는 송출하지 않도록 권한을 주는 등 규제 패러다임을 근본 부분부터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가 미디어 산업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규제가 양산되는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산업별 규제 완화 우선순위를 살피고, 공정 경쟁 관점에서 시장에 필요한 핀셋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함께다.

노동환 콘텐츠웨이브 정책협력부장은 "각각의 미디어 산업군 규제가 있는데, 규제에 대한 영향력 보고서가 있어야 한다"며 "가장 빠르게 패스트트랙으로 고칠 규제는 무엇이고, 장기 규제 개선 과제는 무엇일지 선별 작업을 통해 개선하는 협의체가 있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협의체 관점은 사후 규제 관점보다는 시장에서의 사업자 공정 경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넷플릭스 세금 회피 문제가 있는데, 실은 비용을 아껴 투자 재원을 마련함으로써 국내외 사업자 간 경쟁 출발점이 달라지는 것이 문제다"며 "어떤 지점에서 불공정이 발생하는지 명확한 현실 진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