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에 망 이용대가를 지급할 이유가 없다는 넷플릭스의 주장이 힘을 잃어간다. 미국에 이어 유럽에서도 넷플릭스와 같은 CP가 망을 제공하는 ISP에게 이용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내에선 이 같은 글로벌 흐름이 망 이용대가 지급을 의무화하는 법안 추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11월 방한해 국내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넷플릭스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11월 방한해 국내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넷플릭스
유럽 13개 통신사, 넷플릭스 포함 빅테크에 "네트워크 비용 분담해야"

최근 국내에 이어 유럽까지 넷플릭스를 상대로 한 ISP의 망 이용대가 지급 요구가 빗발친다. 11월 29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은 도이치텔레콤(독일)과 보다폰(영국), 텔레포니카(스페인), 오렌지(프랑스)를 포함한 13개 유럽 이통사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빅테크 기업의 통신망 개발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내용의 공동 성명을 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넷플릭스와 구글 등의 빅테크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응하고자 대규모 망 투자를 앞둔 상황에서 이같이 요구에 나섰다. 2020년 유럽의 통신 부문 투자가 525억유로로 6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하며 트래픽 급증에 따른 통신망 증설 부담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CEO들은 공동 성명에서 "네트워크 트래픽의 상당 부분이 거대 기술 플랫폼에 의해 생성되고 있다. 통신 분야에서 지속적인 네트워크 투자와 계획이 필요한 상황이다"라며 "EU(유럽연합) 시민이 디지털 혁신의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대형 기술 플랫폼이 네트워크 비용에 공정하게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넷플릭스가 국내서 겪는 망 이용대가 지급 요구와 일맥상통한다. 국내 ISP인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 트래픽 급증에 따른 인프라 투자와 유지보수 비용 증가를 이유로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망 이용대가 지급 의무를 따지는 소송도 진행 중이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에 발생시키는 트래픽에 따른 데이터 전송 추이는 2018년 12월 500기가비피에스(Gbps)에서 2020년 12월 700Gbps로 14배 늘었다. 올해는 9월 기준 1200Gbps를 기록했다. 2018년과 비교하면 2년 새 28배가 증가한 셈이다.

미국에선 넷플릭스와 훌루를 대상으로 지방 정부 차원의 망 이용료 지급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포함해 13곳에서 OTT 사업자에 프랜차이즈 사용료(Franchise Fee)를 요구하면서 제기된 소송이다.

프랜차이즈 사용료는 광케이블 등 공공 인프라를 이용하는 사업자가 분담하는 비용이다. 해당 지역의 케이블TV 사업자는 매출의 5%를 프랜차이즈 사용료로 낸다. 공공 네트워크 사용에 있어 책임을 분담하자는 취지로, ISP가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 지급을 요구하는 배경과 맥락이 닿는다.

11월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경제 시대, 망 이용대가 이슈의 합리적인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 모습 / 김영식TV 유튜브 채널 갈무리
11월 국회에서 열린 ‘디지털 경제 시대, 망 이용대가 이슈의 합리적인 해결 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간담회' 모습 / 김영식TV 유튜브 채널 갈무리
CP와 ISP 역할 구분이 글로벌 표준이라는 넷플릭스…실상은 ‘반대’

넷플릭스는 ISP의 이용대가 지급 요구에 CP가 이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는 ISP의 사업 영역이며, CP는 콘텐츠 투자에 힘쓴다는 역할론에 무게를 둔 모습이다.

여기에 ISP가 CP에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망 중립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펼친다. 망 중립성은 망을 제공하는 ISP가 모든 콘텐츠 기업과 인터넷 기업을 동등하고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이다. 넷플릭스는 ISP가 돈을 받고 트래픽에 따른 전송료를 받는 것이 해당 원칙에 어긋난다고 본다.

넷플릭스는 이 같은 원칙과 관행이 글로벌 업계 표준이라는 근거를 들어 망 이용대가 지급을 거부하지만, 점차 글로벌 여론이 변화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포함한 빅테크 기업이 네트워크에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함에도 무상으로 인프라를 활용하고 있어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미국과 유럽에서 흘러나온다.

실제 브랜던 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상임위원은 5월 미국 주간 매체인 뉴스위크에 ‘빅테크의 무임승차 종료'라는 제목의 오피니언을 기고해 넷플릭스와 같은 빅테크 기업의 망 무임승차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빅테크 기업이 부담할 네트워크 인프라 비용을 미 국민이 부담했다는 주장도 더했다.

카 위원은 "넷플릭스와 유튜브, 아마존프라임, 디즈니플러스,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5개 사가 교외 광대역 네트워크의 75%를 차지한다는 연구가 있다. 빅테크는 네트워크 유지와 구축에 필요한 수십억달러의 비용을 내지 않으면서 인터넷 인프라를 무료로 사용한다"며 "그 사이 페이스북과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은 2020년에 2019년 대비 20% 증가한 1조달러의 수익을 창출했다"고 지적했다.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의 마크 알레라 소비자 부문 CEO는 10월 영국 일간 매체인 가디언을 통해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포함한 소수 기업이 세계 트래픽의 다수를 차지함에도 무임승차하는 상황을 뒷받침하고자 망 중립성 원칙을 활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알레라 CEO는 "망 중립성 원칙이 25년 전 만들어졌을 때, 4~5개 회사가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80%를 차지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이들 기업은 그들이 추진하는 서비스에 기여하고 있지 않다. 옳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 밀레니엄 광장에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홍보 모형. / IT조선 DB
서울 강남구 코엑스 밀레니엄 광장에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홍보 모형. / IT조선 DB
망 이용대가 지급 의무화 법안 추진 동력 얻나

국내에선 SK브로드밴드가 진행하는 소송과 별도로 국회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다. 11월만 해도 이원욱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위원장과 김상희 국회 부의장이 각각 망 이용료 지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국회 과방위 소속 김영식 의원과 전혜숙 의원도 같은 맥락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국회에선 여야 이견이 없는 만큼 해당 법안 추진에 어려움이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망 이용대가 지급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세계 최초인 만큼 조심스럽지만, 구글 인앱결제 방지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9월 세계 최초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선례가 있는 만큼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원욱 국회 과방위원장은 11월 국회 토론회 행사에서 "지금이라도 넷플릭스가 ISP와 적극적으로 협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정기 국회 안에 법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통신업계 역시 최근 글로벌 흐름이 넷플릭스를 포함한 빅테크 기업의 망 이용대가 지급에 무게를 두는 만큼 법 추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유럽, 인도네시아, 호주 등지에서 광역망에 부담을 주는 빅테크 기업의 책임론이 불거진다"며 "우리나라 국회와 정부에서 추진 중인 망 이용대가 관련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논의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에서 나온 논의는 소비자뿐 아니라 빅테크 기업에 인프라 사용 부담을 요구했다는 측면에서 인터넷 산업의 양면 시장 특성을 인정한 것과 같다"며 "넷플릭스는 이를 이중 지급이라고 거부했지만, 정부 입장에선 양면 시장 특성이 입법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