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무의 테크리딩] 오징어 게임에서 생존하는 법

이학무 미래에셋증권 통신서비스 애널리스트
입력 2021.12.26 06:00
기술이 세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각자의 영역에서 필요한 만큼의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학생은 미래의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미 직업을 가진 사람은 각자 직업의 미래를 예상하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는 기술에 대해서 이해해야만 한다. IT조선은 [이학무의 테크리딩]을 통해서 기술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다지기와 이를 기반으로 필수적인 기술 이해 방법을 제공한다. <편집자주>

2021년이 저물어간다. 올해도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드라마 ‘오징어 게임’ 열풍을 꼽고 싶다. 다양한 평가가 가능한 작품이고 여러 사회 현상을 다룬 작품인데, 필자에게는 개인적으로 큰 깨우침을 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오징어 게임은 경쟁사회의 인간 관계를 게임이라는 도구를 통해 잘 보여줬다.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지만, 아직 시청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필요한 내용을 요약하고자 한다.

작품 스토리는 이렇다. 456명이 각자 목숨을 걸고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다. 총 6단계의 게임을 통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승자 한 명이 456억원의 상금을 손에 넣는다. 6개의 게임은 어린 시절 경험해 봤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이다.

첫 게임 오징어 게임에서 대 활약중인 오일남(가운데)과 참가자 모습 / 넷플릭스
경쟁과 협력이라는 측면에 시선이 쏠렸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설탕 뽑기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협력이 가능한 게임이다. 협력의 측면에서 두 게임을 보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참여한 ‘알리’는 주인공 ‘기훈’을 구해줬고, 설탕 뽑기 다른 참여자들은 기훈의 방식을 모방해 가까스로 생존에 공항한다. 경쟁의 측면에서 보자. 설탕 뽑기에서 기훈의 후배인 상우는 게임이 공개되기 전 다음 게임이 설탕 뽑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상우는 어려운 우산 모양을 고르는 기훈을 외면하고, 본인만 가장 쉬운 삼각형을 골랐다.

경쟁과 협력의 정점을 보여준 것은 줄다리기와 구슬치기였다. 줄다리기에서는 10명의 팀원이 생존을 위해 서로 최대한 협력해야 했다. 줄다리기에서 장정 10명으로만 구성된 팀과 노인, 여성이 포함된 기훈의 팀이 맞붙는다. 기훈의 팀은 일남의 경험과 상훈의 기지로 간신히 승리하는데, 그 과정에서 팀의 결속력은 빠르게 강해지고, ‘우리 팀이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는다.

4단계 게임인 구슬치기 전 2인 1조로 팀을 구성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방금 전까지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눴던 10명은 이제 각자 최고의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좀 전의 결속력은 온데간데 없이 각자 생존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게임은 2인 1조의 협력 게임이 아니라 2인 1조의 대결이었다. 최고의 파트너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1대 1로 맞붙게 된 것이다.

구슬치기를 보며 필자는 최근 막연히 힘들다고 느꼈던 이유를 깨달았다. 줄다리기를 끝내고 구슬치기 단계를 지나고 있는 환경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구슬치기를 하며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다. 자신과 달리 아직 지켜야 할 가족이 남아 있는 새벽을 위해 일부러 게임에서 패배했던 지영, 알리를 속이고 모든 구슬을 빼앗은 상우, 극한의 경쟁을 통해 극적으로 승리하는 덕수를 만날 수 있었다.

노인 참가자 오일남이 깐부 지훈에게 마지막 구슬을 넘겨주는 장면 / 넷플릭스
특히 노인 참가자 오일남이 눈길을 끌었다. 구슬치기에 기훈과 함께 팀을 이룬 오일남은 ‘깐부 사이에는 니꺼 내꺼가 없는 거’라고 말하며 마지막 구슬 1개를 기훈에게 주고 게임에서 패배했다.

반전은 오일남이 서바이벌 게임의 설계자라는 점이다. 설계자라는 자격으로 탈락 여부와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새로운 게임에 참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늘 구슬치기에서 게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 인생의 설계자다. 따라서 의지만 있다면 오일남처럼 원하는 단계에서 얼마든지 게임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게임을 찾아 떠날 수 있다. 물론, 오일남이 보여준 것처럼 게임을 떠나는 시점은 극한의 경쟁으로 치닫는 구슬치기 단계가 가장 적당해 보인다.

필자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 아마도 3번째 오징어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첫번째 오징어 게임에서 구슬치기 단계를 느낀 건 대학원 시절이었다. 학부 때까지만 해도 줄다리기처럼 20~30명이 다같이 모여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부터는 달랐다. 이제부터는 각자의 프로젝트와 연구에 매달려야 한다. 내 성과와 네 성과가 구분되기 시작했고, 그렇게 줄다리기가 끝나 구슬치기의 규칙이 적용됐다.

필자보다 공학적으로 우월한 학우와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는 현실은 가혹했다. 소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필자가 계속 남아 있을수록, 간신히 1등이 될지라도 종국엔 일과 친구 모두를 잃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공학보다 나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일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 과정에서 미래에셋증권에 입사하는 기회를 받았다. IT 애널리스트가 되며 두번째 오징어 게임을 시작했다.

IT 애널리스트는 정말이지 딱 맞는 맞춤 직업이었다. 처음에는 업무에 적응하는 데 고생을 했지만, 일 자체는 정말 재미있었다. 처음 맡은 산업은 디스플레이였는데, 스스로 궁금한 것이 많았고 그만큼 공부하고 싶은 부분도 많았다. 당시엔 브라운관이 LCD로 바뀌던 시기였는데, 새로운 디스플레이 제품과 생산기술에 관해 공부를 많이 했고, 브라운관 시장에 대한 공부도 깊게 했다.

기술과 시장에 대한 공부가 시너지를 낸 건 2007년의 일이다. 40인치 이상 풀HD LCD TV가 본격적으로 고성장하면서, LCD 산업 사이클이 급반전될 것이라는 필자의 전망이 정확하게 맞았다. 그리고 주식시장에서 그 성과를 인정받아 디스플레이 부분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됐고 수차례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디스플레이 산업이 지루해졌다. 공부할 것도, 재미있는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오직 1등을 지키기 위한 노력만을 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회사 내외부적으로도 협력보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이 즈음 두번째 오징어 게임의 구슬치기 과정을 겪었다. 주위의 견제를 이기고 지금의 1위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피로감이 너무 컸다.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새롭고 재미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이렇게 두번째 오징어 게임을 마무리했다.

세번째 오징어 게임은 2009년 당시 태동하고 있던 전기차, 배터리 산업 분야에서 일할 때다. 사실 태동했다고 하기에도 너무 이른 단계였다. 하지만 배터리, 전기차 기술과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을 공부하면서,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의 미래를 그려보는 일은 정말 설레고 즐거웠다. 무엇보다 산업 초기 국면이라 애널리스트, 업계 전문가 모두 경쟁보다 협력을 추구했다는 점이 좋았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각자 노력하고 협력해 그 산업을 최대한 잘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에서 참가들이 생존을 위해 협력한 것과 같이 관련된 모두가 협력한 것이다.

이후 배터리를 이용해 에너지를 저장하는 ESS 산업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고, ESS를 공부해 보니 전력과 에너지 산업 전반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따라서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하는 에너지/유틸리티 산업 전반을 분석했다.

경력 10년 이상의 베테랑 애널리스트가 에너지/유틸리티 산업에서는 신참이 되는 경험은 참으로 신선하고 인생에 활력이 되는 요소였다. 에너지/유틸리티 산업을 10년 이상 분석한 애널리스트에게는 반복적인 일들이 필자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이, 기존 애널리스트와 다른 관점을 갖고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원동력이자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유사한 경험을 통신서비스 산업에서도 다시 한 번 느꼈다.

늘 새로운 성장산업을 쫓아 분석 대상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분석 대상을 블록체인 산업으로 확장했다. 블록체인은 여러 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반 기술이라는 측면에서 성장 가능성과 중요도가 상당히 높은 산업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산업의 중요성과 미래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실력을 길렀음에도, 필자가 이번에 느낀 바는 10년 전과 사뭇 달랐다. 단순히 분석 산업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오징어 게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엔지니어에서 특정 섹터에만 전문성이 있는 애널리스트로, 그리고 섹터를 넘어 다양한 산업을 분석할 수 있는 애널리스트로의 변신이 모두 끝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석 산업을 한 두개 더 추가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다음 오징어 게임을 하려면, 애널리스트가 아닌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징어게임 예고 이미지 / 넷플릭스
이제 4번째 오징어 게임인 투자자의 길을 선택하려 한다. 애널리스트로서 지금까지는 산업을 읽고 그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극대화했다면, 앞으로는 이 능력을 활용해 유망한 기업을 발굴하고 직접 투자할 때가 됐음을 느낀다. 특히, 블록체인과 같이 근간이 되는 기술은 수없이 많은 연관 산업이 성장하는 데 기여한다. 이를 기반으로 수많은 신생기업이 탄생할 수 있어 유망한 투자기회가 많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성장산업을 직접 분석하며 쌓아 온 실력으로 이제 옥석을 가리고, 투자한 기업이 더 좋은 기업이 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 이것이 필자의 네번째 오징어 게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물론, 필자의 오징어 게임 생존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흔히들 구슬치기를 지나 징검다리를 건너 오징어 게임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해야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극한의 경쟁을 견디거나 즐기지 못하는 참가자도 분명 상당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1등을 차지해야만 의미 있는 삶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게임이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 수도 있다. 계속 게임을 이어가다 보면 1등 상금보다 더 큰,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을 계속하고자 하는 필자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물론, 이번 글은 다음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필자의 다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하나의 오징어 게임을 마무리할 때는 일남처럼 마지막 구슬 하나를 기꺼이 주고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 손에 마지막 구슬 한 개를 쥐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 구슬까지 잃어버릴 만큼 게임을 진행해 버리면, 떠나는 것이 아니라 탈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도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손에 쥐고 있는 구슬이 당장 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블록체인이라는 주제로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 안에 21년의 경험을 모두 담아 마지막 구슬 하나를 만들었다. 구슬을 한 개 더 얻었기에 게임을 이어갈 자격이 생겼지만, 이 구슬을 기꺼이 나의 깐부에게 주고 다음 게임을 위해 떠나려 한다.

이학무 미래에셋증권 통신서비스 애널리스트 leehakmoo@gmail.com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학무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반도체, 핸드폰, 디스플레이 등 IT 산업뿐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및 신재생에너지 산업까지 다수의 성장산업을 분석한 신성장 산업 분석 전문가다. 공학을 전공하고 비즈니스를 20년간 분석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끄는(lead) 기술 읽기(read)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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