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는 2021년 코로나19 확산과 공급난 장기화라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호황을 지속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으로 업계가 들썩였고, 글로벌 기업의 인수합병(M&A)과 대규모 투자가 돋보인 한 해였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생산라인 전경 /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생산라인 전경 / 현대자동차
반도체 수급난에 車·스마트폰·가전 산업 휘청

2020년 말 본격화된 반도체 수급난은 당초 올해 하반기부터 완화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오히려 더 심화했다. 현대차, 기아 등 자동차 업계가 가장 극심한 생산 차질을 빚었다. 스마트폰과 가전 산업도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판매가격이 일제히 상승하는 여파가 있었다.

차량용 반도체 생산 비중이 미미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지금까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최대 공급처인 중국의 극심한 전력난으로 인해 IT·가전 등 완제품 공급에 빨간불이 켜져 반도체 공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SK하이닉스 이천 M16 조감도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이천 M16 조감도 / SK하이닉스
삼성전자 100조·SK하이닉스 40조…반도체 전성기는 지금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에 힘입어 국내 반도체 ‘톱2’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반도체 매출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둘 전망이다.

3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는 올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서 95조13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관측했다. 2020년 72조8580억원과 비교해 30.6% 늘어난 것이다. 역대 최고 매출을 거둔 2018년 86조2910억원과 비교해도 10.2% 많다. SK하이닉스도 올해 42조9000억원의 매출로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연매출 40조원대 돌파는 처음이며, 2020년 대비 34.4% 증가한 성적이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現 회장·오른쪽)과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11월 23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악수를 하는 모습 / 삼성전자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現 회장·오른쪽)과 그랙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11월 23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 주지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악수를 하는 모습 / 삼성전자
반도체 ‘쩐의 전쟁’ 격화

2021년은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기업들의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쩐의 전쟁'이 눈에 띄었다. 파운드리 시장 맹주인 대만 TSMC는 향후 3년간 1000억달러(113조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올해 120억달러(13조4000억원)가 투입되는 미국 애리조나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를 노리는 삼성전자는 목표 달성을 위해 17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미국 인텔은 110조원 규모의 새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11월 미국 테일러시를 파운드리 제2공장 부지로 결정했다. 이 공장 건설에 170억달러(20조원)를 투입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90억달러에 달하는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 계약을 체결한 후 인수에 필요한 8개국 반독점 당국의 승인 작업을 최근 마무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조선일보 DB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조선일보 DB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라…韓 반도체, 미중 갈등 속 줄타기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 최전선에 반도체가 놓이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아슬아슬 줄타기가 이어졌다.

미 정부는 9월 반도체 부족 사태 해소를 위한 현황 파악 명목으로 글로벌 반도체 제조 기업들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삼성전자·TSMC·SK하이닉스 등은 대부분 고객사 정보 등 영업기밀 사안을 빼고 자료를 제출, 중국은 미국 정부가 해당 자료를 자국 반도체 제재 확대에 활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SK하이닉스는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에서 중국 현지 공장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중국 대응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인수를 승인하면서 이례적으로 ‘다른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도와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같은 중국의 요구가 미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D램 반도체 공장에 초미세공정 핵심인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반입하려고 했지만 미국 정부 반대로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