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경의 커피톡] ㊴완벽한 에스프레소에 ‘25의 미학’이 유지될 수 있을까?

신혜경 칼럼니스트
입력 2021.12.31 06:00
에스프레소는 커피머신을 이용하여 미세한 커피가루에 뜨거운 물을 높은 압력으로 통과시켜 짧은 시간에 추출한 농축액을 말한다. 흔히 ‘샷(shot)’이라고 부른다. 제대로 뽑은 에스프레소 샷은 마셨을 때 입안에 들어오는 풍부함과 신맛, 단맛, 쓴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부드러운 목넘김이 된다. 에스프레소는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푸치노, 마키아토, 프라푸치노 등과 같은 여러 음료의 기반이 된다. 그러므로 에스프레소는 최종적인 커피 음료의 맛을 크게 좌우한다.

에스프레소는 커피머신을 다룰 줄만 알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에스프레소는 원두의 분쇄 입자 크기부터 사용하는 물의 양과 온도, 추출되는 시간 등에 따라 그 맛과 향미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런 차이는 바리스타의 숙련도 즉, 커피의 상태를 살피고 사용하는 머신의 기능을 잘 활용하여 커피를 포터필터(분쇄된 커피를 담을 수 있는 필터바스켓이 장착되어 있음)에 어떻게 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스페셜티커피협회 (SCAA)의 회장을 역임한 미국의 에스프레소 전문가인 팀 오코너(Tim O’Connor)는 "에스프레소로 만든 모든 음료의 품질은 에스프레소에서부터 시작한다"라고 말하면서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기본 요소를 커피원두의 블랜드 정도, 적절한 로스팅, 알맞은 커피 분쇄입도, 정상적인 커피머신의 온도와 압력, 바리스타의 숙련도 등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나라에서 완전한 에스프레소를 연구해 오신 문준웅 박사도 에스프레소에 대하여 ‘커피를 만드는 과정의 민감도’ 때문에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복잡해진다고 하였다. 문 박사에 따르면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만들기 위해서는 약 300만 개의 커피 입자를 필요로 하는데 만일 분쇄하는 커피의 입도를 조금만 변경해도 에스프레소의 맛은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한다. 즉, 에스프레소 분쇄기의 입자를 몇 마이크론 (1/1000 mm) 정도만 움직여도 에스프레소의 분쇄 입자의 수는 크게 달라지게 되어 물이 닿는 커피의 표면적의 너비, 물의 투과력, 추출되는 속도에 영향을 주어 에스프레소의 품질을 변하게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에스프레소 연구가인 일리와 비아니(Andrea Illy & Rinantonio Viani)는 1995년에 출간된 저서 에스프레소 커피(Espresso Coffee)에서 에스프레소는 0.25cm의 분쇄 굵기의 커피를 25초 동안 25ml의 액량으로 추출한 후 25초 이내에 마셔야 한다고 하면서 이른바 ‘25의 미학’을 주창하였다. 진하게 농축된 커피 속의 지방이 공기와 접촉하여 맛 성분이 빠르게 변하기 전에 빨리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와 비아니는 에스프레소를 물 온도 90±5°C, 물의 압력을 9±2bar로 하여 적절한 입자로 분쇄한 커피 6.5±1.5g을30±5초 동안 추출한 것으로 정의했다. 그들에 따르면 완벽한 에스프레소는 점도가45°C인 상태에서 1.5 Pa.s 이상이어야 하고, 한 잔 속에 녹아나온 총고형분은20~60g/l 정도여야 하며, 지방 성분은 2mg/ml 이상이고, 카페인 성분은 100mg/cup 정도, 90%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크레마의 거품 굵기는 10µm 미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 커피머신의 압력으로 물을 밀어내므로 이 물이 커피층에 머무르면서 커피성분을 충분히 뽑아낼 수 있도록 드립커피 보다 분쇄입자를 훨씬 미세하게 한다. 미세분쇄함으로써 에스프레소에는 일반커피에 비해 가용성 성분인 당, 카페인, 산, 단백질 등이 약 5배 정도 더 농축되고 커피의 향미 성분을 더 풍부하게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분쇄 입자의 크기가 적절하지 못하면 에스프레소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훌륭한 에스프레소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커피 분쇄 입자를 잘 살펴야 한다.

입자가 너무 굵으면 커피층을 통과하는 물의 속도가 빨라져 과소추출 (under extracted)되기 쉽다. 커피의 향미 성분이 전부 추출되지 못하고 여전히 커피 가루 속에 남아 있게 되어 맛이 약하고 쓴맛과 신맛이 도드라지게 된다. 반대로, 입자가 너무 가늘면 물이 커피층을 통과하기 어려워 오랫동안 커피에 머무르며 커피 속에 있는 좋지 않은 맛 성분까지 모두 나오게 되어 커피의 좋은 향미를 덮어버리게 된다.

결국 적절하지 않은 분쇄 입자로 추출된 에스프레소로 만든 커피 음료는 맛이 좋을 리가 없다. 에스프레소는 점도가 높으면서 지방에 의해 표면장력이 낮다. 에스프레소 속에는 지방 입자가 미세하게 유화되어 있고 그 위에 미세한 기포로 된 크레마(crema)라고 부르는 거품층이 덮여져 있다. 에스프레소의 강한 향기(aroma)와 중후함(body), 오래 지속되는 후미(aftertaste)는 미세한 유화 상태로 들어있는 지방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지방이 커피의 향기를 운반하고 입속에서 풍부함과 부드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유화된 지방은 혀의 맛 세포를 마스킹하여 다크한 커피의 쓴맛을 덜 느끼게 해주며 거품층인 크레마는 벨벳같은 촉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므로 에스프레소의 향미는 사용하는 커피의 지방 함유량에 따라 기본적으로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 지방성분을 얼마나 잘 추출해 내는지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지방은 아라비카 커피가 로부스타 커피에 비해 더 많이 함유되어 있다. 반면 카페인 함량은 로부스타 커피가 아라비카 커피에 비해 훨씬 높다. 그러므로 향미와 건강을 위해서는 로부스타 커피보다는 아라비카 커피를 추천한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단종(單種)의 커피보다는 블렌딩한 원두를 많이 사용한다. 단종의 커피 원두는 재배 지역에 따라 독특한 향기와 맛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나 에스프레소로 추출하면 단순하고 단조로운 향미가 구현될 수가 있다. 또 같은 지역의 커피라고 해도 매 해 수확되는 커피콩의 품질이 조금씩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에는 일정한 향미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원두를 섞는 블렌딩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스페셜티커피 시장이 커지면서 다양한 커피콩의 특색들을 찾아서 검색하고 살피며 맛보는 등의 커피 마니아층이 늘어났다. 스페셜티커피는 주로 핸드드립으로 추출하여 마시는 편이나 최근에는 단종의 커피를 에스프레소로 추출하여 커피 고유의 맛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원두 종류별로 에스프레소용 그라인더(분쇄기)를 여러 대 설치하여 고객이 원하는 원두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제공하려는 커피전문점이 늘고 있다. 스타벅스, 투썸플레이스, 엔제리너스 등과 같은 유명 커피프랜차이즈들도 에스프레소 기반의 음료에 사용되는 원두를 고객이 선택할 수 있도록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통상, 커피 고유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로스팅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 대개 에스프레소는 핸드드립용 커피에 비하여 강하게 로스팅 된 원두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단종 커피가 에스프레소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에스프레소용 커피원두의 로스팅 정도가 많이 밝아졌다. 종전의 강한 로스팅 포인트에서 지금은 중간볶음 정도까지 밝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에 제대로의 추출을 하기 위해서는 고퀄리티의 커피머신과 바리스타의 숙련도가 필요하다.

최근 판매되고 있는 커피머신도 이런 변화에 따라 그 성능이 급속도로 향상되고 있다. 커피머신의 보일러 종류에 따라 일체형, 분리형, 단일형 등 다양하게 나왔고 커피머신의 압력을 가변하여 원하는 만큼 조절하게 하거나 추출 온도를 사용자가 자유자재로 세팅하여 사용할 수 있으며 머신 자체에서 첫 물, 중간 물, 끝 물의 온도를 조절하는 가온 머신도 나왔다. 또한 커피층을 통과하는 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적시는 정도의 소량만 통과하게 하여 커피가 불리게 한 후 2차로 본 추출이 이루어지도록 충분한 물 양이 통과할 수 있게 하는 머신도 나와 있다.

이제는 다양한 향미의 에스프레소를 원하는 고객의 취향에 맞출 수 있도록 원두에 따라 에스프레소 추출방법을 달리 고려할 줄 아는 바리스타의 숙련도가 필요하다. 일리와 비아니의 ‘25의 미학’은 강하게 로스팅 된 블렌딩 원두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에는 통용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밝게 로스팅한 커피원두로 에스프레소를 뽑아야 하는 경우에도 통용될지는 의문이다.

보통, 로스팅 정도가 밝아질수록 분쇄입자를 더 가늘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밝은 로스팅의 원두는 강하게 로스팅 된 원두보다 밀도가 더 높아 추출이 어려운 상태이다. 분쇄입자까지 더 가늘게 하면 강한 압력으로 물이 커피 입자를 통과할 때 커피층에 구멍을 만들어 빠져나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의 추출이 안되므로 적절한 분쇄입자 크기를 찾아야 한다. 또한 커피성분을 뽑아낼 때도 밝게 로스팅 된 원두라면 커피성분이 충분히 뽑아져 나올 수 있도록 본 추출을 하기 전에, 핸드드립을 하는 것처럼 소량의 물로 커피가루를 적셔서 커피성분을 불려주는 프리인퓨젼 (preinfusion)기능을 활용해야 한다. 프리인퓨젼의 소량의 물 양과 기다리는 시간(pause time)의 세팅은 사용하는 원두에 따라 달라지므로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에스프레소로 추출된 액량도 사용하는 원두에 따라 달리 기준 잡아야 한다. 25~30ml 1샷, 20ml 1.5 샷, 15ml 2샷 등 그 향미가 다르게 구현되므로 ‘25의 미학’에 따라 추출액량을 무조건 25ml~35ml(1온즈) 1샷으로 기준을 정해서는 안된다. 사용하는 원두에 따라15초에 20ml 추출만으로도 최상의 커피 맛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위해서는 통상적인 ‘25의 미학’ 에만 갇혀 있으면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다양한 커피콩의 특색을 최대한 구현해 낼 수 있도록 에스프레소 추출은 카멜레온처럼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구현해 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험하는 바리스타의 깨어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혜경 칼럼니스트는 이화여대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커피산업전공으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커피바리스타제과과와 전주기전대학교 호텔소믈리에바리스타과 조교수로 재직하였고, 한림성심대학 바리스타음료전공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바리스타 1급 실기평가위원, 한국커피협회 학술위원회 편집위원장, 한국커피협회 이사를 맡고있다. 서초동 ‘젬인브라운’이라는 까페를 운영하며, 저서로 <그린커피>, <커피매니아 되기(1)>, <커피매니아 되기(2)>가 있다. cooykiwi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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