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했다. 일각에서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회피함과 동시에 지배구조개편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6일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251만7701주(6.71%)를, 정 회장은 123만2299주(3.29%)의 지분을 칼라일 특수목적법인(SPC) '프로젝트 가디언 홀딩 리미티드'에 매각했다.

이를 통해 정 명예회장이 가지고 있던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은 전량 처분돼 주주 명단에서 빠지게 됐다. 정 회장의 지분은 기존 23.29%에서 20%로 줄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현대자동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현대자동차
칼라일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의 10%를 확보해 정 회장과 덴 노르스케 아메리카린제 에이에스(11%)에 이어 3대 주주로 올라섰다. 4대 주주는 4.88%의 지분을 보유한 현대차, 5대 주주는 4.46%의 지분을 들고 있는 현대차정몽구재단이다.

현대글로비스 측은 지분 매각에 대해 주주가치 제고와 시장 불확실성 해소를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관련업계에서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1년 12월에 시행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대기업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 20%)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던 기존 규제를 상장사 20%로 강화한 것이 골자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 기아의 완성차 및 부품 운송 등을 맡고 있다. 대부분의 물류사업을 현대차그룹으로부터 수주하고 있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6일 보고서를 통해 "이번 대주주의 지분매각은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된 잠재적 규제를 회피할 수 있게 되고 소액주주들이 우려했던 대주주 지분매각 관련 오버행(주식 시장에서 언제든지 매물로 쏟아질 수 있는 잠재적인 과잉 물량 주식) 이슈를 완전히 해소시켰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또 현대차그룹의 대표적 우군으로 평가받는 칼라일에게 지분을 넘김으로써 경영권 방어도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정 회장은 2019년 칼라일그룹의 초청 단독대담에 참석해 미래 경영 방향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이번 지분매각이 규제 회피의 의미를 넘어 지배구조개편의 신호탄으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21.4%)→현대차(33.9%)→기아(17.3%)→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대모비스가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0.32%를 보유하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최대주주에 오르는 정공법을 택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앞서 2018년 현대모비스 분할 후 현대글로비스와의 합병이란 지배구조 개편이 현대모비스 주주가치가 훼손된다는 우려로 무산된 바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늘리기 위해서는 정 명예회장의 지분(7.2%)를 상속받거나 직접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여기에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한 자금 2000억원이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에 활용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정 회장이 2대 주주로 있는 현대엔지니어링도 2월 상장을 앞두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정 회장은 공모를 통해 보유지분(890만3270주)의 60%(534만1962주)를 매각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정 회장은 4000억원의 실탄을 추가로 얻게 된다. 이 역시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확대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예측이다.

다만 현대차 측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과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등이 지배구조 개편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간 현대글로비스의 주가가 많이 눌려있었다"며 "이번 매각을 계기로 시장 불확실성이 해소돼 주가가 많이 오른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매각대금 등을 통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필요한만큼 인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내부에서도 지배구조개편과 관련해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조성우 기자 good_sw@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