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슈퍼컴퓨터 상위 500대의 정보를 정리한 톱500 최신판이 2021년 11월 발표됐다. 이에 따르면 일본 후가쿠(Fugaku) 슈퍼컴이 실측성능 442 페타플롭스(PetaFLOPS, 1초에 1000조번의 연산을 수행)를 기록하며 기존의 왕좌를 유지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보이저(Voyager) 시스템이 10위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톱10 순위에서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중요한 변화는 톱500 밖에서 일어났다. 중국이 최소한 2개의 엑사플롭스(ExaFLOPS, 1초에 100경번의 연산을 수행)급 시스템을 자체기술로 개발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됐기 때문이다.

2016년 중국 타이후라이트(TaihuLight) 슈퍼컴이 세계 1위로 등장했을 때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이례적 행보다. 중국이 세계 1위 슈퍼컴을 독자기술로 구축한 빛나는 업적을 숨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중국은 2개의 엑사플롭스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첫번째 시스템은 타이후라이트의 후속작인 오션라이트(OceanLight)다. 칭다오 슈퍼컴센터에 구축돼 운용되고 있다. 실측성능 1.05 엑사플롭스로 세계 최초의 엑사프롭스급 컴퓨터다. 시스템 전력소모는 35MW로 알려져 있다.

센웨이 SW26010Pro CPU: 390개의 코어에서 14 테라플롭스의 성능을 발휘한다. 세계 최초의 엑사프롭스 컴퓨터 오션라이트에 탑재됐다/ Yong Liu et al., Closing the Quantum Supremacy Gap
센웨이 SW26010Pro CPU: 390개의 코어에서 14 테라플롭스의 성능을 발휘한다. 세계 최초의 엑사프롭스 컴퓨터 오션라이트에 탑재됐다/ Yong Liu et al., Closing the Quantum Supremacy Gap
이 시스템은 ‘알파(Alpha)’ 아키텍처 기반의 썬웨이(Shenwei) CPU를 채용했다. 타이후라이트에 사용된 SW26010을 개량한 SW26010Pro가 사용됐으며 390개의 코어로부터 14 테라플롭스의 성능을 발위한다. 오션라이트에는 총 9만8304개의 CPU가 탑재됐다.

두번째 시스템은 텐허2A(Tianhe-2A) 슈퍼컴의 후속작인 텐허3(Tianhe-3) 시스템이다. 텐진 슈퍼컴 센터에 구축돼 있다. 실측성능은 1.3 엑사플롭스로 알려졌다. 채용된 CPU는 ARM에 기반한 피티움(Phytium)의 ‘페이텡(FeiTang)’으로 알려졌다. 가속기는 DSP(Digital Signal Processor)구조로 텐허2A에 사용된 ‘매트릭스(Matrix) 2000’을 개량한 ‘매트릭스 2000+’제품으로 알려졌다.

또한 수곤(Sugon)은 선젠 슈퍼컴센터에 세번째 엑사스케일 시스템을 구축했다. 당초 AMD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중국에서 생산하는 하이곤(Hygon) CPU를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미국의 제재로 추진이 지연되면서 현재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러한 시스템을 홍보하지 않을까? 오랜 역사를 가진 톱500에 등재하는 전통적인 방법도 추진하지 않았으며 관영매체 등을 통한 홍보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를 완전히 비밀로 한 것도 아니다. 슈퍼컴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고든벨상(Gordon Bell Prize)에 중국 연구자들이 투고한 논문에는 오션라이트 시스템의 세부 사양이 포함돼 있다. 즉 공식 홍보는 하지 않지만 기술 성과에 관한 소식은 조용히 흘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한 공식적인 이유를 알 수 없다. 가장 유력한 이유는 이러한 성과가 커다란 이슈로 이어지면서 생길수 있는 미국의 제제를 피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션라이트의 실측성능의 결과가 나온것은 2021년 3월로 알려졌다. 흥미롭게도 2021년 4월 미국은 중국 엑사스케일 컴퓨터 개발에 관련된 7개 기관을 엔티티리스트(Entitiy List)에 포함했다. 이들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활동을 한 것으로 판단돼 미국 기술의 활용 및 이전에 제약을 받게 된다.

이렇듯 첨단기술에서의 우위를 차지하려는 사투가 이어지고 있다. 금년 6월에는 미국의 첫번째 엑사플롭스급 시스템인 프론티어(Frontier)가 등장하리라 예상된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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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수 소장은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했고 독일 국립슈퍼컴센터 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센터 센터장, 사단법인 한국계산과학공학회 부회장, 저널오브컴퓨테이셔널싸이언스(Journal of Computational Science) 편집위원, 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소장을 거쳐 현재는 사우디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교(KAUST) 슈퍼컴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