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신 시장에서 기지국 가상화 논의가 활발하고, 국외에선 이미 상용화 소식이 들린다. 한국 이통사 역시 이에 뒤질세라 통신장비 제조사와 함께 테스트에 돌입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통신사가 당장 도입하지 않을 전망이다. 상용화한 후 거둬들일 수 있는 이득이 확실하지 않은 탓이다. 향후 이동통신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는 중 상용화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KT 연구원과 후지쯔 연구원이 서울 KT 융합기술원에 구축한 오픈랜 테스트베드에서 멀티 벤더 연동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 KT
KT 연구원과 후지쯔 연구원이 서울 KT 융합기술원에 구축한 오픈랜 테스트베드에서 멀티 벤더 연동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 KT
오픈랜 논의로 vRAN도 수면 위로

통신 업계는 네트워크 기능 가상화(NFV)를 위한 요건으로 가상화 기지국(vRAN)에 집중한다. NFV는 네트워크 기능을 실물 장비 대신 클라우드 등 소프트웨어 차원으로 가상화해 제어하는 기술이다. vRAN은 물리 장비를 동원하는 대신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구축한 기지국을 말한다.

vRAN은 이동통신 기술 고도화 과정에서 관심을 얻었다. 하드웨어 대신 클라우드 기반으로 기지국을 운영하다 보니 통신망 구축 비용을 낮추면서 기지국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5세대(5G) 이동통신이 상용화하면서 서비스 확대를 위한 기반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통신 업계서 오픈랜(O-RAN) 논의가 확대하면서 vRAN도 함께 언급되고 있다. 오픈랜은 개방형 무선접속망이다. 다양한 통신 장비 제조사의 기지국 장비를 상호 연동해 사용하는 개방형 프론트홀 인터페이스다. 쉽게 말해 여러 통신장비 제조사 제품을 표준화해 함께 사용하도록 하는 개념이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오픈랜은 여러 벤더가 오픈 생태계를 꾸리고자 기지국을 모듈화해 분리시키고, 중요 기능은 소프트웨어로 가상화해 옮기는 데 목적을 둔다"며 "vRAN도 이 과정에서 관심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영국선 vRAN으로 5G 오픈랜 상용화…국내도 테스트 활발

해외에선 이미 vRAN 상용화 소식이 들린다. 삼성전자는 최근 유럽 이동통신사인 보다폰과 영국 서머싯주에 vRAN을 활용한 5G 오픈랜을 구현했다. 미국이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 1위 사업자인 화웨이 종속을 피하고자 5G 오픈랜에 관심을 두면서 영국과 형성한 오픈랜 동맹이 영향을 미쳤다.

국내 역시 미국 주도의 오픈랜 동맹과 연관이 있다. 2021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해당 회담에 따른 공동성명에는 양국이 오픈랜 기술을 활용해 5G와 6세대(6G) 이동통신 분야서 협력하기로 했다.

SK텔레콤과 노키아가 최근 진행한 클라우드 vRAN 시연에 활용된 노키아 라디오 모듈(에어스케일) / 노키아
SK텔레콤과 노키아가 최근 진행한 클라우드 vRAN 시연에 활용된 노키아 라디오 모듈(에어스케일) / 노키아
국내 통신 업계와 통신장비 업계는 오픈랜 테스트 과정에서 vRAN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KT는 NTT도코모와 협력해 vRAN을 포함한 진화한 오픈랜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LG유플러스는 클라우드 기반의 vRAN 장비와 5G 단독모드(SA) 기반의 오픈랜 시스템 검증에 성공했다. SK텔레콤은 올해 노키아와 무선 기반의 클라우드 vRAN 필드 테스트를 진행한다.

韓 vRAN 상용화, 당장은 어렵다?

하지만 상용화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다. 해외와 달리 당장 국내 통신 업계가 vRAN을 도입할 이유를 찾지 못한 영향이 크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관계자는 "해외에서 상용화 소식이 들리긴 하지만 vRAN이 아직은 최대 속도를 달성하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소비자는 기지국이 물리적이든 가상화든 상관하지 않는다. 국내는 특히 전송 속도가 중요하기에 통신사가 당장 상용화를 추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통신 장비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는 LTE(롱텀에볼루션)과 5G를 포함해 물리적인 기지국이 이미 많이 깔려 있다"며 "버추얼(가상화)로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최근 국내서 시연 등이 진행되는 만큼 원년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vRAN 개발과 상용화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5G에서 6G로 이동통신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기지국 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기에 운용 효율성을 위해서는 vRAN 도입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vRAN에 따른 오픈랜 구현이 장비 종속성을 줄이는 점 역시 통신 업계엔 유인 요소다.

백상헌 고려대 교수(전기전자공학부)는 "통신 사업자 입장에선 기지국을 가상화하면 벤더 종속성 대신 개방화에 따른 옵션이 다양해진다. 장비사 경쟁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땐 카펙스(CAPEX, 설비투자)를 줄일 수도 있지만 당장 가상화한다고 해서 새로운 5G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통신사가)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