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 집단 IT 서비스 계열사 일감을 개방하라는 압박 수위를 높임에 따라 기업의 속앍이가 깊어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대기업집단(9개) 소속 주요 발주기업과 IT 서비스 기업들과 공동으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공정위의 ‘IT 서비스 일감개방 자율 준수 기준’과 과기정통부의 ‘소프트웨어 사업용 표준계약서’ 사용을 독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공정거래위원회 / 조선일보 DB
공정거래위원회 / 조선일보 DB
정부는 대기업 계열 IT 서비스 기업에 편중하는 거래 관행과 높은 재하도급 비중은 SW 산업 발전과 역량 있는 독립·전문 IT서비스 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본다. 이에 대기업 집단의 IT서비스 일감이 독립·중소 비계열회사로 흘러갈 수 있도록 IT 서비스 일감개방 자율준수 기준을 만들었다.

해당 간담회에 참여한 기업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우선 공정위는 이번 기준안이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다고 말한다. 기업의 자율에 맡기기 때문에 불이행에 따른 제재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자율 준수 기준에 적극 동참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공정거래협약 이행 평가에서 가점을 부여하고, 과기정통부도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 사업용 표준계약서를 활용한 기업에게 공공 SW 사업 입찰시 기술성 평가에서 가점을 부여한다.

사실 기업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SW 표준계약서보다 일감 개방이다. 대기업 집단 IT 서비스 계열사의 경우 내부거래를 통한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 집단 IT 서비스 기업 내부거래 비중이 2020년 기준 63.1%로 전 산업 평균 12%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내부 거래를 줄어들면, 신규 매출처를 확보하지 않는 한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간담회에 참여한 기업(지주사 제외)들의 최근 실적 발표 기준 내부거래율은 ▲삼성SDS 57.9%(2021년 3분기) ▲현대오토에버 88.19%(2021년 3분기) ▴LG CNS 50.4%(2021년 3분기) ▴롯데정보통신 69.3%(2021년 3분기) ▴신세계아이앤씨 59.77%(2021년 3분기) ▴CJ올리브네트웍스 81.14%(2020년) ▴티시스 69.28%(2020년)다.

업계는 이번 기준안이 사실상 강제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대놓고 반발의 목소리를 내지는 못하지만, 협회를 통해 불만을 표출한다. IT서비스 산업협회 측은 자율개방이 중견·중소기업의 시장 확대가 아닌, 대기업 계열사의 혁신 투자와 IT서비스 사업 발주를 위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1월 27일 열린 간담회에서도 기업들은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정부의 요청에 응하면서도 보여주기 식 행사에 기업들이 동원되고 있다며 불만의 기색을 슬쩍 내비쳤다.

IT 서비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설명하는 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으며 기업들도 의견을 말하라고 거듭 권유하니 마지 못해 2개 기업 관계자 정도만 의견을 말했다"며 "1시간쯤 열린 간담회에서 기업 발언 시간은 아마 10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 임원들을 불러모아 보여주기 식의 설명회를 연 것이다"며 "대선 이전에는 또 한 번 대표(CEO)들을 모아서 비슷한 보여주기식 행사를 열 것이라고 하는데 정치에 이용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한 관계자는 "국내 SW 시장에서 IT서비스 기업들의 비중과 역할이 중요하다"며 "내부거래에 안주하지 않아야 혁신기술 개발에 더 관심을 갖고 SW 산업이 더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