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IT] 시장 불신 자초한 제약바이오, 공시 가이드 변경으로 신뢰 찾을까

김동명 기자
입력 2022.02.08 06:00
최근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분식회계·횡령·배임·자료 조작 등의 문제를 일으켜 업계 신뢰도를 급격하게 떨어뜨린 가운데 새로 바뀐 공시 가이드라인이 암울한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지 주목되고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이 공시 대상을 확대하고 기준을 더 명확히 하면서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변경되지만, 업계 내에서는 투자 심리가 도리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에 따르면 7일부터 수정된 '제약·바이오 업종 기업을 위한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이 적용됐다. 이는 2020년 2월 발표된 가이드라인을 2년 만에 수정·배포한 것으로 지난 가이드라인의 내용에 일부 내용을 추가해 구체성을 높였다.

우선 임상 관련 공시사항이 변경됐다. 임상시험 관찰 절차 종료를 의미하는 ‘임상시험종료보고서’ 제출이 공시대상에서 제외됐다. 대신 임상시험수탁기관(CRO)로부터 임상시험결과보고서(CSR)를 제출받은 경우를 공시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를 통해 일반투자자들은 임상 관련 주요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기업은 임상 경과와 통계적 유의성 여부와 더불어 기대효과 및 향후 계획을 충실하게 기재해야 한다.

거래소는 임상시험 결과 공시의 가장 적합한 예시를 제시했다. 예시를 살펴보면 임상시험 과정에서의 안전성 및 유효성 관련 탑라인(Topline) 결괏값, 통계적 유의성에 해당하는 임상시험 목적별로 전체 반응률(ORR), 무진행생존기간(PFS), 완전 관해(CR), 전체 생존 평균(OS) 등을 공개해야 한다.

특히 통계적 유의성 등에 대해 규제 기관의 검증이 면제되는 경우에는 CRO의 확인을 거쳐 해당 내용을 포함해 공시해야 할 것을 권고했다.

앞서 일부 기업이 공시에서 임상시험의 통계적 유의성을 나타내는 결괏값이나 참여 환자 수 등을 공개하지 않아 임상시험의 유효성 등을 의심받는 사례가 있었다. 그간 기업들은 당초 안전성과 유효성 목적으로 개념 증명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의 경우 통계적 유의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으며, 이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계획서(IND) 기준에 부합하는 결과 발표라고 주장해왔다.

이와 같은 혼란을 방지하고자 거래소는 통계적 유의성 등에 대한 검증이 면제된 경우에 한해 CRO의 공식 확인까지 받아, 보다 자세히 공시하기를 권고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존 가이드라인은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의약품규제기관의 품목허가를 공시의 대상으로 봤지만, 새로운 가이드라인에서는 신약 후보물질의 범위가 오리지널 신약 외에 개량신약, 바이오시밀러도 해당된다고 보다 구체화해 설명했다. 이는 신약 개발보다 복제약 생산이 활발한 국내 시장에 맞춰 변경된 사항으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공시해야 하는 기술이전(도입) 계약의 범위가 확대되고 기재 사항 역시 늘어난다. 이전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기업은 기술이전(도입) 계약 금액이 자기자본의 10% 이상인 경우에만 공시해야 했다. 새로운 가이드라인에서는 여기에 매출액 요건을 추가해 매출액 또는 자기자본의 10% 이상인 경우 공시 의무가 발생한다.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매출액 또는 자기자본의 5%에 해당하는 경우 공시하도록 별도 기준을 둬 공시 대상을 더욱 넓게 설정했다. 자기자본과 매출액 중에서 2개 중 작은 금액을 기준으로 해당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특히 지난 3일에 공개된 수정본에서는 기술이전(도입) 계약 금액이 ‘전체 계약 금액’을 기준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이와는 별개로 확정된 마일스톤·로열티 수령(지급) 금액이 자기자본(매출액)의 10%를 넘는 경우에도 공시해야 한다. 거래소는 확정된 단일 마일스톤 등의 금액이 기업의 수익(비용)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중요 정보에 해당한다고 봤다.

기술이전(도입) 시 계약 상대방의 국적, 설립 일자, 최근 사업연도 매출액 등 구체적인 정보도 기재해야 한다.

우선 시장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가이드라인 변경으로 더 많은 정보가 공유되면 투자자들은 보호받고 업계는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업계는 우려가 앞서는 분위기다. 임상이나 허가, 계약 등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이해도가 아직 높지 못한 만큼, 공시 확대가 도리어 투자 위축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사 관계자는 "방대한 공개 정보가 도리어 투자자들을 헷갈리게 할 수도 있고, 잘못된 추측으로 기업에 대한 악의적인 해석이 시장에 쏟아질 수도 있다"며 "국내 자본시장이 최근 충분히 성숙했다고 생각하지만, 제약산업을 투자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라고 토로했다.

예컨대 임상의 유효성을 나타내는 결괏값은 보통 0.05이상이 나오면 실패, 이하가 나오면 성공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1상 및 2상에서는 결괏값의 의미가 크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신약이 대조약에 비해 열등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비열등실험인 경우에는 결과를 반대로 읽어야 하기도 한다. 단순히 결괏값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실효성을 따지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 준수가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임상시험계획 등 가이드라인에서 주요 경영사항으로 지정한 항목을 공시하지 않을 경우 불성실공시로 벌점을 부여받을 수도 있다.

변경된 개정안이 시장에 정착할 때까지는 상당 부분 진통이 예상되지만, 그간 유독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불투명한 공시로 투자자들이 피해 역시 만만치 않았던 터라 이번 포괄공시 가이드라인이 업계 신뢰를 되찾는 신호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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