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에 올라탄 대형은행..처음엔 게임처럼, 나중엔?

박소영 기자
입력 2022.02.23 06:02
‘가상세계에 설치된 지점을 방문해 예금에 가입하고, 대출을 받는다. 은행은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발행하고, 회원들은 이를 거래한다. 교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금융교육이 이뤄진다. 학생은 본인의 아바타를 통해 금융지식을 습득하고 대가로 포인트를 획득한다.’

대형 은행들이 메타버스로 달려가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에 비해 한 수 뒤졌다는 평가를 받아 온 은행들이 꺼내든 회심의 카드다. 내친김에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MZ세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글로벌 트렌드로도 확인된다.

하지만 기대 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을 지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달린다. 전문가들은 "비대면 채널이 확대되는 시국에 알맞은 전략"이라는 평가지만, 테크 회사와 달리 디지털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대형 금융사들이 새로운 세상을 제대로 구현해 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 아이클릭아트
금융 교육에 안성맞춤 메타버스…내친 김에 자체 플랫폼 구축까지

23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최근 은행권에서 내놓고 있는 메타버스 서비스는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구분된다. 사회공헌 차원에서 실시하던 학생 대상 금융교육을 메타버스 세상으로 대체한 게 한 부류다. 네이버 제페토 등 메타버스 플랫폼에 친숙한 MZ세대를 끌어 안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최근 신한은행은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대상 ‘신한 쏠버스(SOLverse) 메타금융스토리’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아바타를 만들어 게더타운에 입장하면 금융게임이 진행된다. 저축이 왜 필요한지, 투자란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돕는다.

KB국민은행은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가상영업점을 열었다. 가상 부동산을 구매하고 필요한 자금을 대출 받을 수 있다. 현실처럼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면 신용등급이 하락한다. 신용회복을 위해선 보물찾기로 게임머니를 획득해야 한다.

한편 시중의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탈피, 직접 구축에 나선 은행도 있다. 자사 플랫폼에서 직접 NFT를 발급하고 가상자산 거래도 시도한다. NH농협은행이 내달 여는 ‘NH독도버스’라는 금융 메타버스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 핑거와 함께 구축한 금융과 게임이 융합된 형태로, 이용자는 가상의 독도에서 주민증을 발급 받아 땅을 구입할 수 있다. 도민권은 사전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정된 수량의 NFT로 지급됐다.

BNK부산은행은 업계 최초로 메타버스 은행을 설립한다. IT보안 솔루션 기업 미디움과 함께 메타버스 플랫폼에 NFT 등 디지털 자산을 취급, 본격적으로 메타버스에서 디지털 뱅킹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권준학 NH농협은행장. / NH농협은행
은행의 메타버스는 글로벌 트렌드…"단순한 영역확장 넘어 비즈니스 모델로 연계해야"

은행권의 메타버스 추진은 해외에서도 한창이다. 최근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은 가상 부동산 메타버스 플랫폼 디센트럴랜드에 가상지점인 ‘오닉스 라운지'를 열었다. 오닉스는 2020년 출범한 JP모건의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전담 사업부다. 이용자는 이곳의 화폐 마나(MANA)로 부동산을 거래할 수 있다. 블룸버그는 "JP모건이 가상자산과 블록체인 생태계의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적극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은행들도 디지털 금융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메타버스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메타버스 플랫폼 진출은 블록체인 경제와의 연결을 예고하기 때문. 여기에 젊은 고객층을 진성 고객으로 확보한 인터넷 전문은행과의 본격 경쟁도 메타버스 선점이 필요한 이유다.

비대면 자산관리 수요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메타버스 시장이 더욱 커질 거란 전망도 이에 힘을 더한다. 서비스 진화도 필연적이다. 향후 자금조달, 중개, 투자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금융사나 증권사 모델도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관건은 수익모델로 연결할 수 있느냐다. 게임과 확실한 차별화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그렇지 못한 소규모 은행은 존폐 여부를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

이상근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순히 게임사가 추진하는 NFT를 그대로 활용하기 보다, 부동산과 매출채권, 기업 주식 등 각 증권의 속성을 블록체인 상의 토큰과 연계한 증권형토큰(STO) 발행도 염두에 둘 수 있다"며 "소유자에게 수익배당이나 의결권, 지분권 등의 권리를 부여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보수적인 문화를 가진 시중 은행과 최첨단 메타버스와의 교집합이 디지털 생태계 확장으로 이어질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게임하는 수단으로 메타버스 플랫폼을 활용할 뿐 아직까지 메타버스 은행지점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경영진이 시켜서 하는 메타버스 유행 따라가기 보다, 기존의 틀을 버리는 좀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끌어들이는게 좋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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