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근본적 원인을 치료한다는 개념으로 주목받은 바이오젠의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이 최근 부작용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국내 치매 신약 개발에 희소식으로 작용될 지 주목되고 있다.

아두헬름은 단순 증상 관리에 치중된 이전 치료제들과 달리 근본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등장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처방받은 환자들이 사망하는 등 안전성 우려가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치매 치료 신약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 / 바이오젠
치매 치료 신약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 / 바이오젠
제약바이오 업계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부작용 보고 시스템(FAERS)에 따르면 최근 아두헬름을 복용한 알츠하이머 환자 3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지난해 11월에는 75세 캐나다 여성 1명이 사망하는 등 아두헬름 FDA 승인 이후 최소 4명의 알츠하이머 환자가 사망했다.

아두헬름은 아밀로이드 베타 불용성 단백질을 뇌 조직 내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해 병의 진행을 억제하는 새로운 기전의 치매 치료제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승인 과정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치매환자들의 인지 저하 둔화와 관련이 있다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유효성 논란이 일었지만, 가까스로 승인을 획득한 바 있다.

게다가 승인 이후에 약가가 초기에 5만6000달러(6600만원)로 책정되면서 고가약 논란에 시달렸고, 이후 약가가 절반가격으로 낮아지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또 최근 공적 의료보험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관리하는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CMS가 임상시험에 등록된 환자에 한해 보험 급여를 적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매출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사망자들은 대부분은 아두헬름 부작용으로 알려진 ARIA(뇌영상 비정상 소견) 증상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ARIA는 일시적인 뇌부종 현상으로, 아두헬름을 투여한 환자에서 가장 흔하게 보고된 이상반응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사망원인을 아두헬름 투여로 발생한 ARIA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이번 사망사례가 아두헬름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 우발적인 것인지를 구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의학계의 판단이다.

바이오젠 측은 질환의 특성상 고령자들이 많고 다른 심각한 질병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들며, 최근 사망자들이 아두헬름과 관련성이 적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울러 임상시간 동안 심각한 ARIA가 발생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경증 또는 중증도였으며, 치료과정 초기에 발생해서 임상적으로 관리가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아두헬름을 투여한 사망자 세명 중 한명은 86세로 당뇨병과 심장병을 앓고 있었으며, 또 다른 한명은 74세로 보행장애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 환자에 대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바이오젠의 이와 같은 주장에도 아두헬름 불신 여론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상황에서, 치매 치료제를 개발 중인 국내 바이오기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젬백스앤카엘이 지난달 알츠하이머 치료 신약의 임상 3상에 진입한 데 이어 아리바이오는 올해 미국 임상 3상 계획을 앞두고 있는 등 국내 치매 치료제 공개가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1월 젬백스앤카엘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중증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GV1001’의 효과를 확인하는 국내 임상 3상을 승인받았다.

GV1001은 인간 텔로머라제에서 유래한 16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펩타이드(peptide)이다. GV1001은 췌장암 치료제로 허가받은 '리아백스주'와 동일한 성분의 약이다. 현재 용도를 변경해 치매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GV1001은 중증 알츠하이머병 환자 9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2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한 바 있다. 도네페질을 단독으로 투여한 대조군은 중증장애(SIB) 점수가 7.23점 감소한 반면 GV1001 1.12㎎을 투여한 시험군은 0.12점 감소했다. SIB점수는 많이 감소할수록 치매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바이오는 올해 알츠하이머 치료 신약 후보물질 ‘AR1001’의 하반기 미국 임상 3상 진입을 준비 중이다.

AR1001은 앞서 미국에서 진행한 임상 2상을 통해 치매환자의 인지기능 저하를 늦추는 효과를 확인했다. 아리바이오에 따르면 미국 내 21개 임상센터에서 환자 210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실시한 결과, AR1001 저용량(10㎎) 또는 고용량(30㎎)을 투여받은 환자군 모두에게서 치매의 진행속도를 늦추고 인지기능을 향상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 제약사인 일동제약과 현대약품도 치매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동제약은 알츠하이머 신약후보물질 ‘ID1201’을 개발하고 있다. ID1201은 멀구슬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천연물기반 의약품이다. 일동제약은 2019년 알츠하이머 환자 1449명을 대상으로 효과를 확인하는 ID1201 국내 임상 3상을 승인받았다. 최근 임상 3상이 종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약품은 기존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처방되는 도네페질과 메만틴 성분을 합친 복합제 ‘BPDO-1603’를 개발 중이다. 현재 임상 3상 단계가 진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라이릴리의 ‘도나네맙’과 로슈의 ‘간테네루맙’가 FDA로부터 혁신 신약으로 지정 받고 아두헬름의 차지한 왕좌를 노리기 위한 공격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며 "국내 개발 치매치료제들 대부분이 글로벌 기준에서도 혁신 신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개발만 성공한다면 치매 치료제 판을 뒤흔들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김동명 기자 simal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