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 사용료 지급을 두고 SK브로드밴드와 갈등을 벌이는 넷플릭스가 내달 16일 항소심을 앞뒀다. SK브로드밴드에 망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확인하는 소송 1심에서 패소했지만 이를 뒤집으려는 행보를 보인다.

그 사이 SK브로드밴드를 포함하 글로벌 통신 사업자의 망 사용료 지급 요구가 점차 확산하는 분위기다. 넷플릭스는 이같은 요구에도 적극적인 대응을 피하고 있다. 국내에서 3월 대선 이후 망 사용료 지급을 의무화하는 법안 추진이 본격화해 국회를 통과하면 결국 이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넷플릭스 로고 / IT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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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사용료 두고 갈등하는 SKB-넷플릭스, 3월 16일 항소심 진행

코로나19 확산 이후 콘텐츠 수요가 급증하면서 넷플릭스와 구글(유튜브) 등의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트래픽(데이터양)이 급증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단위로 이같은 현상이 발생하면서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의 부담이 증가한 상황이다.

한국에선 ISP 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와 갈등을 지속한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 트래픽이 급증하다 보니 전용회선 설치 등의 투자 규모가 늘었다며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넷플릭스는 CP로서 콘텐츠 제공 의무만 있다며 망 제공은 ISP 몫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이같은 갈등이 지속하자 2021년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망 사용료 지급 의무가 없음을 확인하는 소송을 진행했다. 인터넷망 서비스 과정에서 모든 콘텐츠를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내용의 망 중립성 원칙을 근거로 트래픽 발생에 따른 비용이 발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이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1심 패소 판결을 받았다. 넷플릭스는 이에 내달 16일 항소심을 준비 중이다.

넷플릭스 지적한 레이턴 박사 "인터넷 사업자 비용 회수와 통신망 투자 보장해야"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소송이 ISP와 CP 간 갈등의 대표 사례로 꼽히다 보니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는다. 그간 여러 외신에서 해당 소송을 언급한 데 이어 최근에는 네트워크 분야 석학인 로슬린 레이턴 덴마크 올보르대학교 박사가 미 경제 매체 포브스에 관련 기고문을 올렸다.

레이턴 박사는 ‘2300만 한국인은 500만 넷플릭스 가입자를 위해 왜 더 많은 인터넷 요금을 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내 망 사용료 관련 소송을 언급했다. 소수의 글로벌 콘텐츠 업체가 네트워크 용량의 8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인터넷 사업자가 공정한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CP가 버는 스트리밍 수익 1달러당 통신사는 0.48달러를 지급하고 있다는 주장도 더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 예고편 이미지 / 넷플릭스 홈페이지 갈무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 예고편 이미지 / 넷플릭스 홈페이지 갈무리
그는 "한국의 인터넷 가입자는 2300만명 정도지만 넷플릭스 가입자는 500만명에 불과하다"며 "넷플릭스 제안에 따르면 인터넷 사업자는 콘텐츠 저장과 처리, 전송비를 넷플릭스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가입자에게 전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넷플릭스 OCA는 일부 인터넷 사업자에게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며 "인터넷 사업자의 비용 회수와 통신망 투자를 보장하고자 콘텐츠 사업자와 협상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는 ISP에 망 사용료 대신 자체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 기술인 오픈커넥트 어플라이언스(OCA)를 제공해 트래픽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항소심에서도 이를 내세울 예정이다. 하지만 OCA가 자칫 통신사에 더 많은 유지보수 등의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게 레이턴 박사 판단이다.

GSMA에 독일·프랑스·영국·스페인까지 망 사용료 지급 요구
"넷플릭스, 국내 법안 통과하면 망 사용료 낼 수밖에 없다"

28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2’에서도 글로벌 CP를 상대로 한 망 사용료 지급 요구는 이어진다. SK텔레콤과 KT를 포함해 세계 750개 통신사가 모인 연합체로서 MWC를 주최하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이번 MWC에서 글로벌 CP를 상대로 망 사용료 지급 안건을 논의한다.

앞서 독일 도이치텔레콤과 프랑스 오렌지, 스페인 텔레포니카, 영국 보다폰 등 유럽 통신 사업자 역시 글로벌 CP를 상대로 비용 지급의 필요성을 역설한 상태다. 이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14일(현지시각) 공동 성명을 내고 "동영상 스트리밍과 게임, 소셜미디어 회사가 수십억 유로를 투입한 인터넷 인프라에 편승한다"며 망 증설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오스트리아 통신 사업자와 프랑스통신사업자연맹(FFT) 역시 최근 유사한 내용의 주장을 더해 각각 공동명성과 대선 정책 제안문을 발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CP가 망 사용료 지급 요구에 침묵하는 사이 글로벌 단위의 압박이 점차 거세지는 분위기다.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2021년 11월 국내에서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넷플릭스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2021년 11월 국내에서 기자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 넷플릭스
국내에선 세계 최초로 CP의 망 사용료 지급을 의무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국회에 여럿 발의된 상태다. 3월 대선 이후 법안 추진에 속력이 붙을 예정이다. 세계 첫 사례인 만큼 국회가 법안 통과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전망이 있지만 글로벌 단위 이슈인 만큼 여야 이견 없이 통과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소송을 진행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OCA 지원으로 ISP 트래픽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 망 사용료 지급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되면 그땐 행보를 달리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이번 MWC에서 GSMA가 망 사용료 지급을 언급한다고 해도 넷플릭스가 크게 입장을 바꿀 것 같진 않다"며 "아마 국회에서 법이 통과하면 망 사용료를 납부할 수밖에 없기에 그땐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 등 넷플릭스 본사 임원은 망 사용료 이슈가 확대하자 2021년 11월 방한해 국회를 찾기도 했다. 가필드 부사장은 그달 진행한 국내 기자 간담회에서 망 사용료 지급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이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