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6년 전 인수한 하이엔드 가전 브랜드 ‘데이코’의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진다. 데이코는 최근 출시된 프리미엄 가전 제품군 ‘비스포크 인피니트’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데이코는 삼성전자가 2016년 9월 1억5000만달러(1600억원)에 인수한 미국 고급 빌트인 브랜드다. 글로벌 빌트인 시장 진출 과정에서 초기 투자 부담을 절실히 느낀 윤부근 삼성전자 CE담당 사장(現 고문)이 인수를 주도했다. 2018년 4월 국내에도 선보였지만, 가격 대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수년째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대치동 삼성디지털프라자 데이코 쇼룸 / 이광영 기자
서울 대치동 삼성디지털프라자 데이코 쇼룸 / 이광영 기자
1일 서울 대치동 삼성디지털프라자 데이코 쇼룸에서 확인한 냉장고 가격은 2600만원대, 김치냉장고 1800만원, 와인셀러 1500만원, 인덕션·오븐·식기세척기는 각각 300만원대다. 가전 풀세트만 7000만원대에 이르며, 함께 전시된 가구를 그대로 구입할 경우 2~3억원대에 육박한다. 반면 비스포크 인피니트 풀세트는 3000만원대로 구성 가능해 소비자 접근성에서 차이가 크다.

삼성디지털프라자 한 직원은 "데이코 제품은 국내용으로 별도 제작하지 않아 전기용량이나 활용성에서 국내 주방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며 "이정도 가격대에서는 밀레, 지멘스 등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에 일부러 데이코 제품을 찾는 고객은 드문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스포크 인피니트 라인은 데이코 대비 가격이 절반 이상 저렴하거나 성능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데이코의 판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삼성전자는 2019년 5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데이코 쇼룸’을 처음 개관한 데 이어 2020년 2월 갤러리아 광교점에 데이코 매장을 마련했다. 하지만 데이코 갤러리아 광교점 매장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고, 같은해 신규 라인을 입점한 셰프컬렉션으로 교체됐다.

갤러리아 광교 삼성디지털프라자 한 직원은 "현재 데이코 제품은 진열하지 않고 있으며, 이곳 매장에서는 구매 요청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사장)이 2월 17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삼성 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2022년형 비스포크 홈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삼성전자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사장)이 2월 17일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삼성 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2022년형 비스포크 홈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국내시장에서 비스포크 가전의 매출 비중을 최대한 끌어올릴 계획이다. 앞서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사장)은 1월 6일 ‘CES 2022’에서 기자와 만나 "2021년 국내 가전 매출의 80%를 비스포크에서 내겠다는 목표를 달성했다"며 "올해는 85~90%까지 목표를 높일 수도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비스포크의 가치는 유지하면서도 프리미엄 경험을 강조한 인피니트 라인의 출시를 통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는 이 사장의 자신감이 담겼다.

가전업계는 과거 초고가 빌트인 가전을 원하는 ‘리치 마켓’에 데이코를, 바로 아래 ‘프리미엄 마켓’에 셰프컬렉션을 활용하려던 삼성전자의 전략이 사실상 비스포크 올인 전략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한다. 비스포크 인피니트 라인의 과감한 확장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시장에서도 데이코의 영향력은 약화할 전망이다.

이재승 사장은 2월 17일 미디어 행사에서 "주요 시장으로 공략하고자 하는 미국과 유럽,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전체적인 생산시스템과 판매·공급 시스템을 완벽히 갖췄다"며 비스포크 인피니트의 글로벌 시장 확장을 예고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