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사망으로 넥슨이 목표로 했던 ‘아시아의 디즈니’, ‘종합 엔터테인먼트'로의 진화가 추진력을 잃은 모양새다. 방향성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실행 속도가 이전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넥슨의 사업은 김정주 창업자가 직접 진두지휘하며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해 온 만큼 그의 부재가 아쉬운 상황을 연출하게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 / 넥슨
김정주 넥슨 창업자 / 넥슨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디즈니 되겠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김 창업자는 생전 넥슨을 게임사를 넘어선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진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공표해왔다. 그는 2015년 자서전 ‘플레이'에서 "게임은 재밌는 콘텐츠지만 누군가에겐 ‘불량식품’이다"라며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디즈니를 롤모델로 삼아왔다"고 말했다. 세대를 막론한 모두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게임 사업을 활용해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도약이 필수라고 봤다.

이에 넥슨은 디즈니 출신을 회사로 영입하는 한편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적극 투자해 왔다. 지난해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는 디즈니 최고전략책임자(CSO) 출신인 케빈 메이어를 사외이사에 선임했다. 케빈 메이어 이사는 디즈니와 픽사에서 마블엔터테인먼트와 루카스필름, 폭스 등 인수를 이끌어 낸 인물이다. 같은해 7월에는 디닉 반다이크 수석부사장을 총괄로 영입했다. 그는 디즈니와 액티비전 블리자드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홍콩디즈니랜드 홈페이지
/홍콩디즈니랜드 홈페이지
종합 엔터테인먼트 변화를 위해 수조원 투자

넥슨은 게임, 영화, 만화 등 콘텐츠 관련 엔터테인먼트 사업 투자에도 수조원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3월에는 ‘건담·원피스·팩맨·러브라이브·가면라이더·호빵맨’ 등의 IP를 보유한 반다이남코와 ‘코나미·소닉·뿌요뿌요’ 등을 제작하고 ‘유희왕·악마성시리즈·위닝일레븐·메탈기어’ 등의 IP를 갖고 있는 세가, 미국 유명 완구업체인 해즈브로 등에 총 1조원을 투자했다.

‘어벤져스:엔드게임’ 등을 연출한 루소 형제의 영화제작사 AGBO에 약 4억달러(약 4800억원)을 투자해 지분 38%를 확보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1억달러(약 12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YG엔터테인먼트, 네이버, 위지윅스튜디오, 엔피 등과 협력해 YN C&S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국내 주요 엔터테인먼트 기업 협력도 이어졌다. YN C&S는 각 사가 보유한 IP, 서비스 플랫폼, VFX(시각효과)와 XR(확장현실) 기술력을 결합한 미래형 콘텐츠 제작 시설 'I-DMC(Immersive Digital Media Center)(가칭)'를 ‘의정부리듬시티'에 조성하고 있다. 이에 앞서 2020년에는 주요 MCN기업인 샌드박스네트워크에도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YN C&S 부분 조감도 / 넥슨
YN C&S 부분 조감도 / 넥슨
경영구조 안정화까지는 시간 걸릴 듯

이같은 넥슨의 방향성 자체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디즈니를 롤모델로 삼아왔다"는 김 창업자의 유지와는 별개로, 넥슨 내부에서 종합엔터테인먼트 기업 진화가 필요하다는 공감이 이뤄진 상태라서다.

위정현 중앙대학교 교수는 "게임은 본질적으로 ‘융합 플랫폼’이다"라며 "게임사가 보유한 핵심 IP 등을 활용해 다양한 엔터 사업으로 확장하는 것은 글로벌 게임 업계의 주요 흐름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넥슨 내부에서도 이같은 방향성에 공감과 합의가 이뤄져 왔다"고 덧붙였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도 지난 1일 김 창업자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이 회사를 글로벌에서 누구나 알만한 회사로 만들어 달라며 환하게 웃던 그의 미소가 선명하다"며 "넥슨 경영진은 그의 뜻을 이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더욱 사랑받는 회사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 / 넥슨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 / 넥슨
문제는 속도다. 업계는 넥슨이 추진해 온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추진력이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간 엔터테인먼트 기업 확장을 위해 굵직한 M&A를 단행하고 이끌어온 핵심 의사결정을 김 창업자가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그 동안 넥슨 그룹은 모회사격인 NXC가 적극적인 M&A와 해외 투자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중심 결정을 해왔다. 넥슨코리아나 일본 넥슨은 이를 뒷바침하는 결정을 해왔다. NXC는 오너 일가가 100% 지분을 소유한 형태의 구조인데 이 중심에 있던 인물이 별세하면서, 주요 의사결정에 공백이 발생해 당분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위정현 교수는 "(김 창업자의 공백으로 인한) 지배구조나 경영구조가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굵직한 결정은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