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매매시장 진출을 타진해온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가 승부수를 띄웠다.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앞두고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며 해당 사업 진출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현대차의 발빠른 행보에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는 불쾌감을 드러냈다.

현대차는 7일 중고차 사업 비전과 방향을 공개했다. 현대차는 5년 10만㎞ 이내 자사 브랜드 차량 중 200여개의 품질검사를 통과한 차량만을 선별한 후 신차수준의 상품화 과정을 거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인증중고차 전용 하이테크센터 구축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그간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판매자와 소비자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기 위해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도 구축한다. 통합 포털을 통해 ▲중고차 성능·상태 통합정보 ▲적정가격 산정 ▲허위·미끼 매물 스크리닝 ▲중고차 가치지수 ▲실거래 대수 통계 ▲모델별 시세 추이 ▲모델별 판매순위 ▲트렌드 리포트 등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가상전시장 가상현실 시승체험 콘셉트 / 현대자동차
가상전시장 가상현실 시승체험 콘셉트 / 현대자동차
또 가상전지상 중심의 판매채널을 통해 상품 검색부터 배송까지 구입 전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온라인 원스톱 쇼핑을 구축하고 전국 주요 거점지역에 대규모 전시장과 함께 도심 랜드마크 딜리버리 타워를 순차적으로 구축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와 상생을 위안 방안도 마련했다. 현대차가 제시안 상생안에는 ▲5년 10만㎞ 이내의 자사 브랜드 중고차만 판매 ▲인증중고차 대상 이외 매입 물량은 경매 등을 통해 기존 매매업계에 공급 ▲연도별 시장점유율 제한 ▲중고차 통합정보 포털 공개 ▲중고차산업 종사자 교육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올해 시장점유율 2.5%를 시작으로 2023년 3.6%, 2024년 5.1%까지 자체적으로 시장점유율을 제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련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관련 발표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중고차 판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관련 사업 계획을 발표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2013년 중고차 판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이 불가능해졌다. 2019년 2월 중고차 판매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만료된 이후 중고차 매매업계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다.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도 법정기한인 2020년 5월까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중기부는 1월 중고차 판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를 개최했지만 여기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3월 대선 이후에 결정하기로 했다.

만약 3월 이후 열리는 심의위에서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경우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무산된다.

대기업 중고차 소매시장 진출 저지 및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촉구 집회 /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대기업 중고차 소매시장 진출 저지 및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촉구 집회 /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대한 높은 불만과 개선 요구를 발판삼아 선제적으로 승부수를 띄웠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이후 소비자들이 중고차 정보를 확인하기 어려워졌고 허위매물, 사기 등의 피해가 속출했다. 이로 인해 기존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중고차 시장 개방 요구가 높아졌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연맹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중고차 관련 소비자 피해가 5165건으로 집계됐다. 성능상태점검표 발급 의무화에도 불구하고 중고차 성능상태 불량 피해가 2447건(47.4%)으로 가장 많았으며 사고이력 미고지 588건(11.4%), 허위·미끼매물 피해 235건(4.5%) 등 순이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리서치 전문기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2021년 전국 20~60대 성인남녀 1000명에게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중고차시장에 대한 인식을 묻는 질문에 79.9%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완성차업계에서도 중고차 시장 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수입차 브랜드가 국내에서 인증 중고차 사업을 전개하며 자사 브랜드 차량의 잔존가치를 높이고 있고 인증 중고차가 국산 신차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중고차 시장 진출을 위한 현대차의 발빠른 움직임은 정치 이벤트와도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3월 대선 이후 곧바로 6월 지방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또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결정이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결정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사업 방향 등을 제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중고차 시장에 지금 당장 진출해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상생을 위해서 기존 업계와 협의를 이어왔던 것이다"며 "생계형 적합업종에 지정될 경우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수 없게 되지만 현대차가 어떤 식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해당 내용을 발표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벌기 위해 이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다"며 "브랜드 가치 제고, 중고차 업계의 자정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는 현대차에 발표에 대해 당혹감과 함께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기존 업계는 일부 업체들의 일탈을 업계 전체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자정 노력을 통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대기업의 매물 독점 및 가격 통제의 우려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현대차의 발표에 대해 별도의 입장문 등은 내지 않을 계획이다"면서도 "상생안이란 것은 합의가 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과거 을지로위원회의 중재로 만났을 당시 교감이 있었던 내용을 상생안이라고 넣어 놓은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본인들에게 유리한 내용만 집어 넣은 것이다"며 "우선 심의위를 잘 준비하고 심의위 결과를 보고 향후 행보를 논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조성우 기자 good_sw@chosunbiz.com